작가 앤디 위어의 단편 번역
- 2015년 9월 번역본. 음성 녹음 자료가 있어 과거에 했던 번역본을 그대로 옮김.
- 원문: 여기
THE EGG
Written by. Andy Weir
당신이 죽던 순간, 당신은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원인은 교통사고였어요. 특별한 점은 없었지만 사고는 치명적인 수준이었죠. 당신은 아름다운 아내와 두 명의 자녀를 남기고 죽었어요. 죽음은 고통스럽지 않았습니다. 구급대원들은 당신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소용없었고요. 당신의 시신은 아주 크게 손상되었으므로 거기에 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그렇게 당신은 나와 만났습니다.
"이게 무슨..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당신이 물었어요. "여긴 어디죠?"
"당신은 죽었어요." 나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서술하듯이 말했다. 점잔 빼는 말을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트럭이... 트럭 한 대가 옆으로 미끄러졌었죠."
"네." 내가 말했죠.
"내가.. 죽었다고요?"
"맞아요. 그렇지만 기분 나쁘게 생각하진 말아요. 사람은 누구나 죽어요." 내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이곳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과 내가 존재할 뿐이죠."
"여긴 대체 뭡니까?" 당신이 물었어요. "이게 사후 세계입니까?"
"대충 그래요." 내가 말했어요.
"당신은 신인가요?" 당신이 물었습니다. "네." 내가 대답했죠. "난 신이에요."
"내 자식들.. 내 아내는.." 당신이 말했어요.
"그들이 왜요?"
"모두 괜찮을까요?"
"보기 좋네요." 내가 말했어요. "당신은 방금 죽었는데 당신의 가족을 우선적으로 걱정한다는 거죠. 좋아요."
당신은 나를 흥미롭게 바라보았습니다. 당신에게 나는 별로 신 같지 않아 보이겠죠. 나는 보통 사람처럼 생겼어요. 신이라기보다는 학교의 문법 선생님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지요.
"걱정할 것 없어요." 내가 말했죠. "그들은 괜찮을 거예요. 당신 자식들은 당신을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고 기억할 거고, 당신에 대한 경멸을 키울 새도 없을 겁니다. 당신의 아내는 바깥에서는 눈물을 흘리겠지만 내심 안도할 거예요. 당신의 결혼 생활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잖아요. 이게 위로가 될지는 몰라도 당신 아내는 자신이 안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낄 겁니다."
"오." 당신이 말했습니다. "그럼 이젠 어떻게 되는 거죠? 천국이나 지옥에 가게 되는 겁니까?"
"둘 다 아니에요." 내가 말했어요. "당신은 환생할 거예요."
"아하." 당신이 말했습니다. "힌두교에서 하는 얘기가 맞았네요."
"모든 종교는 그들 나름대로 옳아요." 내가 말했습니다. "같이 걷죠."
우리는 빈 공간을 지나 걸었고 당신은 나를 따라왔습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딱히 정해진 곳은 없어요." 내가 말했습니다. "걸으면서 얘기하는 게 좋으니까요."
"내가 다시 태어나면 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겠군요. 그렇죠? 갓난아기처럼요. 제 모든 경험과 이승에서 했던 모든 일들이 소용 없어지겠군요."
"그렇진 않아요!" 내가 말했죠. "당신은 지난 생애의 모든 지식들과 경험을 당신 속에 갖고 있어요. 당장 기억을 못 하는 것뿐이지요."
나는 걷기를 멈추고 당신의 어깨를 잡았습니다. "당신의 영혼은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아름답고 거대해요. 인간의 정신은 오직 당신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담을 수 있고요. 컵 안의 물이 뜨거운지 차가운지 보려고 당신의 손가락을 넣었다 빼는 것과 비슷해요. 육신 속에 당신의 일부만을 넣었다가, 당신이 그걸 꺼낼 때가 되면 모든 경험들을 얻게 되는 거죠."
"당신은 고작 인간으로서 48년을 살았어요. 그러니까 당신은 당신의 거대한 의식의 일부를 느낄 정도의 수준까지 나아가지 못했단 뜻이에요. 우리가 여기서 오래 어울린다면 당신도 모든 걸 기억하게 될 거예요. 하지만 각 생애 사이에 그런 짓을 할 필요는 없죠."
"그럼 전 얼마나 많이 환생했던 겁니까?"
"오, 많이요. 정말 많이요. 그 일생들은 각각 달랐고요." 내가 말했습니다. "이번에 당신은 540년 중국 소작농의 딸로 태어날 거예요."
"잠깐만요, 뭐라고요?" 당신은 말을 더듬었지요. "절 옛날 시대로 돌려보내신다고요?"
"엄밀히 따지자면 시간은 당신의 우주에서나 존재하는 거잖아요. 내가 온 곳이랑은 다르지요."
"당신은 어디서 왔는데요?"
"오, 물론 나는 다른 어딘가에서 왔죠. 나 같은 존재들도 더 있고요. 당신이 이 세계에 대해 궁금해할 거란 건 알지만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내가 설명했어요.
"오." 당신은 조금 의기소침해져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기다려봐요. 만약 내가 다른 장소, 다른 시간대에서 환생을 하게 된다면 어느 점에선 제 자신과 만날 수도 있겠군요?"
"그럼요. 매번 일어나는 일이죠. 그리고 각자의 시대를 살고 있는 당신의 생명들은 그런 일이 벌어진 줄도 모르지만요."
"그럼 이게 다 뭘 위해서인 겁니까?"
"정말 그럴 건가요?" 내가 물었습니다. "진심으로요? 나한테 인생의 의미에 대해 묻는 거예요? 너무 진부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말이 안 되는 질문은 아니잖아요." 당신은 고집을 부렸어요.
나는 당신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인생의 의미, 내가 이 모든 우주를 만든 건 당신의 성숙을 위해서예요."
"인류를 말하는 건가요? 인류가 성숙하길 원한다고요?"
"아뇨, 당신 한 사람이요. 나는 당신을 위해 이 우주를 만들었어요. 새로운 인생과 함께 당신은 성장하고, 더 크고 위대한 지성이 됩니다."
"저 하나요? 그럼 다른 사람들은요?"
"다른 사람은 없어요." 내가 말했습니다. "이 우주엔 나와 당신뿐이에요."
당신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어요. "하지만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당신이에요. 당신의 다른 생애인 거예요."
"내가 '만인'이라고요?!"
"이제 좀 이해를 하는군요." 나는 축하한단 뜻으로 당신의 등을 치며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인간이라고요?"
"앞으로 살아갈 모든 인간이기도 해요."
"내가 에이브러햄 링컨이었어요?"
"또 당신은 존 윌크스 부스(John Wilkes Booth; 링컨 대통령을 암살한 인물)였죠." 내가 덧붙였습니다.
"내가 히틀러였어요?" 당신은 끔찍해하며 말했어요.
"그리고 당신은 히틀러가 죽인 수많은 사람들이었죠."
"내가 예수님이었고요?"
"예수를 따랐던 모든 사람들이기도 했지요."
당신은 침묵했습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희생시킬 때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희생시키고 있었어요. 당신이 했던 모든 친절한 행동들도 당신에게 한 일이었고. 인간이 경험한, 그리고 앞으로 경험할 모든 행복하고 슬픈 순간들도 당신에 의해 경험될 거예요."
당신은 오랫동안 생각에 빠졌어요.
"왜죠?" 당신이 나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런 일을 하는 거죠?"
"언젠간 당신이 나처럼 될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게 당신이라는 존재니까요. 당신은 나와 같아요. 당신은 나의 자식이에요."
"와우." 당신은 믿지 못해 하면서 말했어요. "내가 신이라고요?"
"아직은 아니죠. 당신은 태아나 마찬가지예요. 아직 자라는 중이죠. 모든 시간을 거쳐서 모든 인간들의 삶을 살게 되면, 당신은 충분히 자라난 상태가 될 거예요."
"그럼 이 모든 우주가 그저..."
"일종의 알 껍질이죠." 내가 대답했어요. "자, 다음 생을 살 시간이에요."
그리고 나는 당신을 보냈습니다.
본 단편을 바탕으로 한 단편 영화: 유튜브 링크
본 번역을 읽어주신 유명 성우 구자형 님의 넷텔링 낭독: 유튜브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