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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드 Sep 21. 2023

해리슨 버거론(Harrison Bergeron)

커트 보네거트의 1961년작 단편 소설

Harrison Bergeron

Originally written by. Kurt Vonnegut

원문은 여기





  2081년, 모두가 마침내 평등해졌다. 신과 법 앞에서만 평등해진 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모든 측면에서 평등했다.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똑똑하지 않았고, 잘생기지도 않았으며 힘이 세거나 더 빠르지도 않았다. 이러한 모든 분야에서의 평등성은 수정헌법 제211조, 제212조와 제213조, 그리고 끊임없이 사람들을 감시하는 미국의 종합적 핸디캡 기구(United States Handicapper General) 소속 요원들 덕분이었다. 


  그런데도 삶에서 몇몇 부분은 아직까지 올바르게 조정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4월에는 사람들이 아직도 봄이 되지 않았다고 미쳐 날뛰었다. 그리고 그 불쾌한 4월에 핸디캡 요원들은 조지와 헤이즐 버거론의 14살짜리 아들 해리슨을 데려갔다.


  비극적인 사건이었지만 조지와 헤이즐은 그 일을 깊이 생각할 수가 없었다. 헤이즐은 아주 완벽하게 평균적인 지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말인즉 그녀가 생각을 오래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조지의 지성은 평균보다 꽤 많이 높아서 정신적 사고에 영향을 주는 작은 핸디캡 라디오(mental handicap radio)를 귀에 끼고 있었다. 조지는 법에 따라 그걸 늘 착용하고 있어야 했다. 라디오는 정부의 송신기에 의해 제어되는데 매 20초마다 송신기가 날카로운 소음을 보내어, 조지 같은 사람들이 불공평하게 정신적 이득을 누리지 못하게 했다.


  조지와 헤이즐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헤이즐의 뺨에 눈물이 흘렀지만 그는 왜 자신이 눈물을 흘렸는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발레리나들이 등장했다.


  라디오의 소음이 조지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그의 생각은 경보기 소리를 들은 노상강도처럼 질겁하여 날아가버렸다. 


  "정말 멋진 춤이에요. 방금 발레리나들이 춘 춤 말이에요." 헤이즐이 말했다. 


  "허." 조지가 말했다.


  "저 춤도요. 멋지네요." 헤이즐이 말했다.


  "응." 조지가 말했다. 조지는 발레리나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보려 했다. 그들이 아주 뛰어나지는 않았다. 어쨌든 모두가 다른 누구보다 나을 수는 없었다. 발레리나들은 추와 탄약 뭉치를 짊어지고 있었고 얼굴은 가면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래서 누구도 타인의 예쁜 얼굴이나 우아하고 자유로운 몸짓을 보면서 자신이 추레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조지는 발레리나들이 핸디캡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희미하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내 또 다른 소음이 귓가를 찔렀고 그는 생각을 더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


  조지가 움찔하고 놀랐다. 발레리나 여덟 명 중 중 두 명도 그랬다.


  헤이즐은 조지가 놀라는 걸 보았다. 정신적으로 제어를 받고 있지 않은 그녀는 가장 최근에 들었던 소음이 어떠했는지 조지에게 물었다.


  "누가 망치로 우유병을 때리는 것 같아요." 조지가 말했다.


  "재미있을 것 같아요. 계속 다른 소리를 듣는다는 거요." 헤이즐이 조금 질투하면서 말했다. "정부에서 고안한 모든 것도."


  "음." 조지가 말했다.


  "내가 만약 요원이라면 뭘 할 것 같아요?" 헤이즐이 말했다. 헤이즐은 사실 다이애나 문 글램퍼스(Diana Moon Glampers)라는 핸디캡 기구 소속 요원과 아주 닮았다. "내가 다이애나라면, " 헤이즐이 말했다. "일요일에는 종소리를 내보낼 거예요. 종교를 기리는 의미에서요."


  "만약 그 소리가 종소리라면," 조지가 말했다.


  "아마도 엄청 크게 내야겠죠." 헤이즐이 말했다. "난 괜찮은 요원이 될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만큼 괜찮겠지." 조지가 말했다.


  "평범하다는 걸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헤이즐이 말했다.


  "맞아요." 조지가 말했다. 그는 지금은 감옥에 갇혀 있는 그의 비범한 아들인 해리슨에 대해 어렴풋하게 생각해보려 했지만, 이번엔 예포 소리가 그를 방해했다.


  "세상에!" 헤이즐이 말했다. "방금 소리는 정말 특이했군요?"


  소리는 너무나도 특이해서 조지는 하얗게 질려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붉은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발레리나 여덟 명 중 두 명이 스튜디오의 바닥에서 넘어지면서 얼굴을 부여잡았다.


  "갑자기 많이 피곤해 보이네요, 당신." 헤이즐이 말했다. "소파에 편하게 누워요. 장애 도구를 베개에 댈 수 있게요." 그는 조지의 목에 둘러진 21kg짜리 탄약이 들어 있는 천 자루를 말하는 것이었다. "잠깐 쉬면서 가방을 내려놔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 나와 잠시 동등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조지가 손으로 자루를 들었다. "이건 괜찮아요." 그가 말했다. "더 이상 의식하지도 않는걸. 그냥 내 일부가 되어버렸으니." 


  "당신 최근에 많이 피곤해 보여요. 지친 것처럼요." 헤이즐이 말했다. "만약 자루에 작은 구멍을 뚫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탄약을 조금 덜어낼 수 있을 텐데요. 정말 조금요."


  "하나 뺄 때마다 2천 달러 벌금에 징역 2년이에요." 조지가 말했다. "손해 보는 장사죠."


  "일하고 집에 왔을 때 몇 개만 빼면 되지 않겠어요?" 헤이즐이 말했다. "내 말은, 여기서는 누구와 경쟁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냥 집에 있는 건데."


  "내가 핸디캡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라도 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런 행동을 할 거예요.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린 다시 암흑시대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요. 모두가 서로 싸우는 시기 말이에요. 그걸 원하진 않잖아요?"


  "정말 싫죠." 헤이즐이 말했다.


  "그러니까요." 조지가 말했다. "틈 날 때마다 사람들이 법을 속이려고 하면, 이 사회에 무슨 일이 벌어지겠어요?"


  만약 헤이즐이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조지가 대답을 대신할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사이렌이 울렸기 때문이다.


  "무너져 내리겠죠." 헤이즐이 말했다.


  "뭐가요?" 조지가 멍하니 물었다.


  "사회 말이에요." 헤이즐이 자신 없게 대답했다. "당신이 말하려던 게 그거 아니었어요?"


  "글쎄." 조지가 중얼거렸다.


  방송 중이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갑자기 속보에 의해 중단되었다. 처음엔 무슨 일인지 확실치 않았다. 아나운서가 다른 모든 아나운서들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언어 장애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약 30분 간 아나운서는 잔뜩 초조한 상태로 '신사 숙녀 여러분'이라는 말을 하려고 애썼다.


  결국 아나운서는 말하기를 포기하고 발레리나에게 뉴스를 읽게 했다. 


  "저건 괜찮아요." 헤이즐이 아나운서를 두고 말했다. "아나운서는 노력했어요. 그게 중요한 거라고요. 그는 신이 자기에게 준 재능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했어요. 열심히 노력한 대가로 상을 받아야 해요."


  "신사 숙녀 여러분," 발레리나가 뉴스를 읽으며 말했다. 마스크가 아주 끔찍한 모양이었으므로 그 발레리나는 틀림없이 무척 아름다울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댄서들 중에서 가장 근력이 좋고 우아한 동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명백했다. 그녀가 핸디캡으로 들고 있어야 하는 자루가 90kg는 되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발레리나는 맨 처음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 사과했다. 그의 목소리는 아주 불공평했다. 따뜻한 음성에, 반짝거리며 변함없는 음률이 있는 목소리였다. "죄송합니다."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를 완벽히 경쟁력이 없는 상태로 만들고 나서 다시 말했다.


  "14살의 해리슨 버거론이," 그녀가 꽥꽥거렸다. "조금 전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해리슨 버거론은 정부 타도를 꾀한 혐의로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천재적인 두뇌와 뛰어난 운동 신경을 가졌으며 핸디캡 장비를 착용한 상태이지만 굉장히 위험합니다."


  해리슨 버거론의 몽타주 사진이 화면의 상하좌우를 왔다 갔다 했다. 사진에는 해리슨의 신장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213cm나 되었다.


  해리슨의 나머지 외양은 거의 핼러윈 분장이나 다름없었다. 누구도 그렇게 무거운 핸디캡 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는 정부 요원이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핸디캡 장비를 장착하고 있었다. 귀에 끼는 작은 라디오 대신에 그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이어폰을 착용했고, 아주 두껍고 무거운 렌즈가 끼워져 있는 안경도 낀 모습이었다. 그 안경은 해리슨을 반쯤 장님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두통까지 유발하는 물건이었다. 


  고철 덩어리들이 그의 몸을 칭칭 두르고 있었다. 보통 힘이 센 사람에게 착용해야 하는 핸디캡 장비는 군대식 깔끔함을 갖춘, 특정한 균형을 이루는 편이었다. 그렇지만 해리슨은 걸어 다니는 고물상 같았다. 여생 동안 그는 136kg를 짊어져야 했다. 그리고 그의 준수한 외모를 깎아내리기 위해 정부는 코에 빨간색 고무공을 계속 끼우고 있을 것, 눈썹을 계속 밀어버릴 것, 그리고 고르고 하얀 치아엔 이리저리 난 뻐드렁니에 쓰는 검은색 덮개를 씌울 것을 요구했다.


  "만약 이 소년을 보시거든," 발레리나가 말했다. "절대로- 반복합니다. 절대로 그를 설득하려고 들지 마세요."


  갑자기 문이 덜컹거리며 뜯겨나갔다.


  깜짝 놀란 비명과 울음소리가 텔레비전 세트장에서 터져 나왔다. 마치 지진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추듯 해리슨 버거론의 사진이 화면 위를 뛰어다녔다. 


  조지 버거론은 정확하게 그 진동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의 집이 똑같은 굉음으로 들썩거린 때가 너무도 많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세상에." 조지가 말했다. "해리슨이야!"


  그 깨달음은 조지의 머릿속에 울려 퍼진 자동차 충돌음에 의해 즉시 폭발해 사라졌다.


  조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해리슨의 사진은 사라지고, 진짜로 살아 있는 해리슨이 화면에 나타났다.


  철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광대 같은 모습으로 해리슨이 스튜디오 중앙에서 일어섰다. 뽑혀나간 스튜디오의 문짝 손잡이가 아직도 그의 손아귀에 있었다. 발레리나들, 기술자들, 악사들, 아나운서들이 죽음을 예감하며 해리슨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황제다!" 해리슨이 부르짖었다. "내 말이 들리는가? 내가 황제다! 모두 내가 말한 바를 따라야 할 것이다!" 그가 발을 구르자 스튜디오가 진동했다.


  해리슨이 고함쳤다. "내가 비록 여기 절름발이에, 묶이고 역겨운 상태로 있으나 나는 존재했던 그 어떤 인간들보다 위대한 통치자다! 내가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 똑똑히 보아라!"


  해리슨이 젖은 휴지 조각을 떼어 내듯 그를 짓누르고 있던 벨트를 뜯어냈다. 벨트 하나당 2200kg는 넘게 지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리슨이 두르고 있던 고철이 바닥에 쿵 떨어졌다. 


  해리슨은 머리에 채워져 있던 자물쇠 막대도 엄지로 밀어냈다. 자물쇠가 힘없이 부러졌다. 해리슨이 헤드폰과 안경을 벽에 대고 주먹으로 부쉈다.


  마지막으로 그가 코에 있던 고무공을 떼자, 천둥의 신도 경외할 만한 인간이 나타났다.


  "이제 내 황후를 선택할 것이다!" 해리슨이 웅크린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왕좌를 주장하고자 대담하게 일어나는 사람을 나의 여인으로 맞을 것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발레리나 한 명이 버드나무처럼 흔들리며 일어났다. 


  해리슨이 발레리나의 귀에 있던 핸디캡 장비와 그를 신체적으로 억누르는 물건들을 모두 제거했다. 마지막으로 해리슨이 그의 마스크를 벗겼다.


  발레리나는 눈이 멀 정도로 아름다웠다.


  "자," 해리슨이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제 사람들에게 춤이라는 말의 의미를 보여주도록 할까? 연주해!" 그가 명령했다.


  악사들이 간신히 자리로 돌아갔다. 해리슨은 그들이 착용하고 있던 핸디캡 장비도 다 떼 버렸다. "최선을 다해 연주하라고." 그가 악사들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면 너희들을 귀족으로 만들어주지."


  음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형편없다는 점에서 보통 수준을 유지했지만 해리슨이 악사 두 명을 잡야채서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노래하듯이 지휘봉처럼 흔들었다. 해리슨은 악사 둘을 쾅 소리가 나게 의자에 다시 앉혔다.


  음악은 다시 흘렀고,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해리슨과 그의 황후는 잠깐동안 단지 음악을 듣고만 있었다. 마치 음악과 그들의 심장 박동이 하나가 된 듯했다.


  그들이 발끝에 무게를 실어 움직였다.


  해리슨은 커다란 손을 여인의 얇은 손목에 올려놓았고, 여인은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가벼움을 느꼈다.


  두 사람은 폭발하는 환희와 우아함 속에서 위로 튀어 올랐다.


  지상의 법칙과 중력의 법칙, 운동의 법칙마저 모조리 무시되었다.


  그들은 경쾌하게 뛰어다니면서 이리저리 돌고 춤을 추었다. 달에 사는 사슴처럼 뛰어오르기도 했다. 스튜디오의 천장이 9m 정도였는데도 두 사람은 매번 천장 가까이까지 뛰어올랐다.


  그들이 천장과 맞닿으려는 게 명백해졌다. 두 사람은 천장과 입을 맞추었다.


  순수한 의지와 사랑으로 중력을 무력화하면서, 그들은 천장에서 고작 몇 인치 떨어진 공중에서 정지한 채 아주 오랫동안 서로에게 키스했다.


  그때 핸디캡 기구 요원인 다이애나 문 글램퍼스가 10발을 쏠 수 있는 2연발식 샷건을 들고 스튜디오로 난입했다. 다이애나가 두 발을 쐈고, 황제와 황비는 바닥에 부딪히기 전 숨을 거두었다.


  다이애나가 총을 다시 장전했다. 그녀는 악사들에게 총을 겨누고 10초 안에 핸디캡 장비를 착용하라고 명령했다.


  버거론네 집의 브라운관이 타버린 것은 그때였다.


  헤이즐은 조지에게 정전이 됐다고 얘기하려 했다. 하지만 조지는 맥주 한 캔을 가지러 주방으로 간 상태였다. 


  조지가 맥주를 가지고 돌아오다가 귀를 찌르는 신호에 잠시 멈춰 섰다. 곧 그가 자리에 앉았다. "당신, 울고 있어요." 그가 헤이즐에게 말했다.


  "맞아요." 그녀가 말했다.


  "왜 울어요?" 그가 말했다.


  "잊어버렸어요." 그녀가 말했다. "텔레비전에서 아주 슬픈 일이 벌어졌던 것 같은데."


  "그게 뭐였는데요?"


  "뒤죽박죽이 되어버려서 모르겠어요." 헤이즐이 말했다.


  "슬픈 건 잊어버려요." 조지가 말했다.


  "난 맨날 그래요." 헤이즐이 말했다.


  "그래야죠." 조지가 말했다. 그가 움찔했다. 이번에는 대못을 박는 소리였다.


  "이런, 이번 소리는 특이했나 봐요."


  "맞아요." 조지가 말했다.


  "정말이에요." 헤이즐이 말했다. "정말 특이한 소리였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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