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자극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이 나라의 공교육 현장에 있는 이들을 폄하하려는 마음은 없다. 공교육 시스템 자체는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누군가에겐 유효할 수 있다. 다만 나는 공교육에서 받은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하고, 초-중-고등학교로 이어지는 공적 의무교육과 대학을 비교하고자 한다.
공교육은 결과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끼친 게 거의 없다. 내가 월급을 받게 해주는 영어 및 한국어 실력은 학교 수업에서 쌓은 게 아니라 언니가 보내줬던 영어 학원 방학 특강, 지적이고 싶다는 욕망에서 비롯된 독서 습관, 나의 오랜 취미인 글쓰기 활동, 내가 개인적인 흥미로 했던 각종 번역으로 탄생했다. 고등학교 때 2등급 초반~1등급 후반대의 성적을 유지했으나 막상 나는 논술 100% 전형으로 대학에 합격했기에 학생부도 수능 성적도 무의미했다. 참고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제대로 된 논술 수업이 없었다. 그 기나긴 공교육 기간을 지났는데도 남는 게 없다.
하지만 교복 입던 시절에 저런 결과가 나올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리하여 나는 친구들이 약간 안타깝게 볼 정도로 모범생 노릇을 하고 다녔다. 아프지 않으면 야간 학습(‘자율’이 아니었기에 그 표현은 뺐다)을 빼먹지 않았고 방학 때도 꼬박꼬박 학교에 나갔다. 해뜨기 전에 등교해서 해가 진 지 한참 뒤에 교문 밖을 겨우 나서는 게 당연했다. 직장을 다니고 있는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학교에 뺏기고 다녔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만나고 싶은 친구들이 많지 않았기에 하다못해 사람조차 남지 않았다.
학창 시절이 내게 준 자산은 딱 두 가지가 있는데, 놀랍게도 여기에 나의 10대를 가장 밀도 있게 가져간 고등학교는 해당되지 않는다. 하나는 초등학교 때 들었던 방과 후 논술 수업이다. 나는 이 수업을 통해 내가 글쓰기에 소질이 있으며 그걸 즐거워한다는 중요한 점을 발견했다. 다른 하나는 중학교 졸업 직전 미술 선생님이 내주셨던 미술관 관람 숙제다. 숙제를 제출하기 위해 갔던 전시회에서 나는 처음으로 렘브란트의 그림을 봤고 그걸 계기로 유화의 위대함, 더 나아가서 예술이 사람에게 어떤 정신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그 덕에 내가 주로 즐기는 문화생활 중 하나가 미술 전시회 관람이 되었다.
반면 대학을 다니며 나는 예상보다 많은 수확을 챙겼다. 학과를 상향 지원하면서 우연히 배우게 된 영문학은 인문학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세상에는 위대한 문장과 사상이 정말 많다는 것, 또 인문학적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얼마나 귀중하며 그게 나를 차별화할 수 있음을 배웠다. 질 좋은 자료를 자주 접하니 내 시각도 넓어져서 영화 하나를 봐도 나름대로 곱씹을 만한 요소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배우지 않고 나 혼자 더듬더듬 책만 읽었다면 이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단언컨대 대학은 내가 다녔던 학교 중에서 가장 훌륭했다.
무의미했던 고등학교와 내게 소중하게 기억되는 학생 시절의 몇몇 기억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지금 생각해 보건대 그 핵심에는 ‘자유 시간’의 유무가 존재하는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나는 오전 8시까지 등교하여 밤 9시 30분에 교실에서 나왔다. 3학년 때 하교 시간은 밤 11시였다. 방학 때도 학교에 가야 했기에 방학이란 건 그야말로 이름, 헛된 개념에 불과했다. 여기에 내가 내 자아를 들여다보고 새로운 것을 느끼고 배울 틈은 절대 존재할 수가 없다. 봄이 되면 교문 안쪽에 유일하게 있던 벚나무 주변만 빙빙 돌면서 감옥도 아닌 학교를 마음대로 나갈 수가 없어서, 벚꽃이 잔뜩 휘날리는 길을 걸을 자유가 없어서 그렇게 슬펐더랬다. 철부지 10대답게 학교도 며칠 빠지고 담도 좀 넘지 그랬나? 그 무렵의 나는 그게 내 존재에 궁극적으로 득이 된다는 걸 몰랐다. 그래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결정적인 시절을 제목처럼 ‘성실하지만 무의미’하게 낭비하고 말았다.
이와는 달리 방과 후 논술 수업과 렘브란트 그림이 있던 전시회는 내가 선택한 것이었고, 그런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했던 건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수업 시간은 고등학교만큼 길지 않기 때문이다. 강제로 학생들을 붙잡아 놓지도 않고 말이다. 내게 가장 좋은 영향력을 행사한 대학교를 다닐 땐 시간 활용이 정말 자유로웠다. 그랬기에 마르크스의 <자본론> 해설 강의를 들으면서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태도를 기를 수 있었고 여행을 다니며 현존하는 순간과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적어도 나의 배움은 강제로 시간을 박탈하는 환경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자유를 뺏고 존재를 한정하는 건 결국 ‘가짜 인생’을 키우며, 이는 개인의 성장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이런 세월을 거쳤기에 나는 가짜로 시간만 채우는 노동과 거기서 탄생하는 거짓된 삶이 진실로 개인을 불행하게 한다고 확언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어서도 안 된다고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