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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드 Nov 27. 2023

6. ‘갓생’과 ‘과로’에 차이가 있어야 한다


생각해 보건대 개인이 살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곳은 학교와 직장, 가정인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일단 공교육의 커리큘럼에서 나 자신에 관한 발견을 얻지 못했다. 가정, 그러니까 집은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곳이지만 평일에는 사실상 샤워하고 잠자는 호텔방이나 다름없어서 나의 의식을 들여다보기엔 어렵다. 남은 건 직장인데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직장에서 자아실현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직장’과 ‘자아실현’을 함께 검색어에 집어넣고 구글에 돌려보더니 ‘한국인에게 일이란 호구지책이다’, ‘먹고살려고 일해요’, ‘회사는 자아실현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직장인 절반 이상이 현재 자신의 직업은 돈을 벌기 위해 선택’, ‘자아실현은 직장에서 번 돈으로 다른 곳에서’ 등등 대체적으로 현실적이고 암담한 말이 잇따라 나왔다. 그 와중에 요새 MZ세대가 일을 태하는 태도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엿보인다면서(마르크스는 ‘인간이 일하는 이유는 단순히 생계유지를 넘어 자기 계발과 자기실현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런 직업관을 가진 인재들을 포용하는 방법을 논하는 칼럼도 등장했다. 하지만 현실 조건이 뒷받침해주지 않기에 이런 생각을 품고 있는 MZ들도 보통 퇴근 후 자기 계발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이른바 ‘갓생’을 사는 거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질문하고 싶다. 이 나라에서 말하는 ‘갓생’과 ‘과로’에 차이가 있긴 한가?


명백한 비교를 하기 위해 과로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 단어가 뜻하는 바는 한 마디로 ‘무리하는 삶’이다. 한 사람이 신적인 삶을 살 수가 있기는 한 건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거야말로 자기 수명을 깎아가는 무리한 삶은 아닌지 나는 확인해보고 싶다. 갓생을 산다는 사람들은 운동, 공부, 명상 등 귀중한 자기 계발 및 자아에 관한 투자를 출근 전, 퇴근 후, 혹은 점심시간을 쪼개서 한다. 이런 구조는 결국 수면 시간을 줄이고 밥을 후다닥 대충 먹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사람들을 만날 시간이 부족해 사교 범위가 줄어들고 고립될 것이다. 그런데 과로하는 직장인도 그런 방법을 택한다. 순간 이동 능력이 없는 한 수면과 식사가 아닌 다른 범주에서 시간을 끌어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사회에는 순간 이동 능력 대신 부동산이라는 것이 존재하여, 교통 입지가 좋은 곳에 살거나 회사 바로 옆에 살 수 있다면 무리하지 않고도 갓생을 살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진다. 대신 이 부동산은 아주 비싸다. 많은 일자리가 강남권, 중구 일대, 인공적으로 조성된 산업 단지 등에 있는데 주거 시설 자체가 거의 없는 사무실 특화 지역도 많고 수요가 늘 공급보다 높아서 가격이 내려가는 법이 없다. 그래서 나중엔 출퇴근 시간을 단축하게 하는 자본의 차이, 혹은 물려받은 ‘수저’의 차이가 누군가는 갓생을 살게 하고 누군가는 과로로 쓰러지게 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렇기에 안전하게 나를 챙기는 삶, 자본주의에 패배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갓생, 물리적으로 피곤하지 않은 자아실현의 지름길은 근로 시간의 단축으로 이어진다. 결국 갓생과 과로의 차이는 근로 시간 단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회사에서 나와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더 확보해야만 나를 위하는 삶과 나를 죽이는 삶이 구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을 다 했으면 그냥 퇴근하게 해 주자. 회사에 엉덩이를 판 사람은 없으므로 우연찮게 일이 없게 된 능력자들을 집으로 보내주자. 근로자들이 올바르게 갓생을 살 수 있게 하자. 젊은 지혜가 마지막까지 믿고 있는 ‘자아실현의 장’이 정녕 그렇게 될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라도 넉넉하게 자아실현을 할 수 있게 하자.


나는 정말이지 근로자가 사람다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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