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9세가 지났다는 이유로 우리는 얼마나 잔혹하게 내던져지는가
한국은 아주 오랫동안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1년을 산 것처럼 취급해 왔다. 자녀 돌봄을 여성에게만 강요해 온 여성혐오적 역사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당연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돌봄의 필요성과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어떻게든 제도적으로 그 책임을 여성에게 떠넘기려 한다. 그 때문에 조부모나 보모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부모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녀를 보육 기관에 맡긴다. 나이가 두 자릿수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학교 안만 떠돈다. 개인의 자아는 자극적일 뿐 영양가 없는 숏폼으로 도배된 인터넷과 학교, 학원 주변으로 한정된다.
그럼에도 만 19세가 되면 나라는 개인을 성인으로 인정해 주고 그걸 빌미 삼아 많은 이들이 다방면에서 방임된다. 너 이제 성인이잖아, 네가 알아서 해. 성인이 됐으면 이 정도는 참아야 하는 거 아냐? 성인이 됐으면 이런 건 받아들일 줄 알아야지. 그들이 원하는 '성인'이 될 기회가 사실상 없었던 이들에게 경제 사정부터 정서적 존중에 이르기까지 모든 걸 편하게 떠넘긴다. 마치 만 19세가 되면 인간의 몸과 정신이 단번에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진화를 이뤄내는 것처럼 군다. 그 기준 역시 인간의 발명품에 지나지 않는 태양력을 기준으로 하고 있음에도.
우리가 태어나서 보낸 20년은 정말 충분히 만족스럽고 보람되며 자아가 성숙할 수 있는 기회가 곳곳에 존재하는 그런 비옥한 시간이었을까? 대부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구조적인 이유로 요새 아이들은 부모의 손길을 느낄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을 테고, 지금의 청년층은 의식주만큼 더 중요한 부모의 감성적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던/못했던 부모 밑에서 자랐을 확률이 높다. 그들의 부모인 장년층 자체가 제대로 된 정서적 지지와 돌봄을 해주지 않았기/못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나의 부모님은 초등학교 교육조차 다 마치지 못한 채 일터에 뛰어들었다. 그런 분들에게 사랑을 느끼고 의식할 순간이 있기는 했을까.
아마 그 탓인 것 같다. 기성세대와 사회 시스템 속에 묘하게 성인을 기계처럼 취급하는 생각이 녹아 있다. 생존과 육체적 성장부터 해야 하는 미취학 유아기만 5년은 된다. 그러나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면 끝이라는 것처럼, 고등학교까지 나오고 요새는 대학까지 거의 다 졸업하는데 못 할 일이 뭐고 미성숙할 까닭이 뭐가 있냐는 듯이, 인간이 임의적으로 만들어낸 기준에 불과한 것으로 개개인을 재단하려 든다.
성인이든 어린아이든 우리는 그런 딱지가 붙기 이전에 사람이다. 정서의 깊이와 예민함의 범위, 개인이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사랑과 경험의 정도, 무엇을 더 사무치게 느끼는지, 하다못해 특정 호르몬 생성과 관련된 유전자의 발달 및 존재 여부 등 모든 게 다르다. 그런데도 이 사회는 마치 핸드폰이 제조사에서 배포한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내려받듯이 사람도 어느 순간 모든 것에 강해지고 무뎌지고 상처도 안 받고 슬픔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처럼 여긴다. 실상 그들이 원하는 성인의 모습을 갖출 기회와 시간을 주지도 않고서 말이다.
최근에 상담사로부터 내가 부모의 역할과 책임을 무의식적으로 떠안았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동안은 나에게 그런 점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는 부모(특히 엄마)의 일상과 정신을 의식적으로 챙기고 확인한 반면 내가 자녀로서 받아야 했을 칭찬이나 온정, 애정이 깃든 기억이 거의 없다.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한 번도 받아보지 않은 나는 산타를 믿은 적이 없다. 초등학교 때 글을 잘 써서 상금 20만 원을 받기도 했으나 글 쓰는 직업을 가지라는 응원은 듣지 못했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반 1등을 했을 때도 가족 내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고, 언니가 4년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했었다는 이유로 졸업까지 총 500만 원 남짓 들어간 내 대학 생활은 자랑거리가 되지 못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일이었다.
상담사의 표현에 따르면 나에겐 '나는 부모에게 존재만으로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의식이 없다.
나의 인생뿐 아니라 세상 곳곳에서 사랑의 사다리가 군데군데 끊겨 있는 광경이 보일 듯하다.
우리 모두는 그토록 부족하게 성장했다. 자녀가 되기 전 장녀가 되고 사람이 되기 전 성인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체감한 이들은 나름대로 도전하고 투쟁하고 숙고하면서 사람이 되고자 한다. 원래 슬픔을 느꼈어야 하는 일에 비로소 슬퍼해보고 화를 냈어야 하는 일에 분노한다. 한편으로는 행복을 발견하는 법을 배워간다.
나는 정말이지 이러한 노력이 '멘탈이 약하다', '성인답지 못하다', '나잇값을 못한다'는 등의 매우 얄팍하고 통찰력도 없는 표현으로 평가절하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당신이 아니다. 과거가 아니다. 유전자의 고유함과 신비로움, 독자성은 인정하면서 왜 그것의 집합인 사람에게는 같은 시선을 보내지 못하는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이 성인이기 이전에 사람인 순간을 오늘 한 번이라도 경험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