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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드 Feb 14. 2023

내가 '만들어진'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

사진 작가 안드레아스 거스키와 마리아 스바르보바

  예전에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들의 전시회를 보고서 크게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대체로 미국적이며 정말 운이 좋아서 포착된 것 같은 사진들이 어째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 전시회를 보면서 이게 미국이 펼치는 문화제국주의의 증거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이후로 나는 한동안 사진 전시회를 괄시했으며 왜 정통 서양 유화 전시가 자주 열리지 않는지 한탄하곤 했다.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 (Chicago Board of Trade III)'


  그러다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렸던 안드레아스 거스키 전시회를 감상하고 난 뒤 나는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그의 사진은 운과 우연에 기댄 게 아니었고, 말 그대로 작가의 수고가 들어가 있었다. 어떤 자리에 인내심 있게 머무르며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 셔터를 누르는 그 이상의 수고 말이다. 


  해당 전시회에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거스키의 사진은 그 규모가 웬만한 유화보다 훨씬 크고, 작가가 사진을 합성하거나 재배치하는 등의 추가적인 작업을 한 흔적이 다 보인다. 작가가 촬영과 현상 외의 다른 작업을 많이 거친 만큼 사진이 거대해지고 캔버스에서도 볼 수 없는 장면이 나타난다. 나는 그의 작품을 통해 충분한 공력과 연출을 들인 사진은 단순히 우연에 기댄 복제품이 아닌 진정한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배우게 되었다. 


'Swimming Pool' 시리즈를 통해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마리아 스바르보바


  아직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사진 전시회에서도 비슷한 감상을 얻었다. 그의 일부 사진에서는 강한 보정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색이 나타나기도 하며(주황색을 강조하느라 백인 모델의 피부에서 주황색이 발견되기도 한다), 누가 봐도 인위적으로 연출되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사진도 많다. 


  위의 사진만 봐도 그렇다.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는 두 사람, 거울처럼 흔들림 없는 수면을 모두 확보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순간이 얼마나 될까? 또 요새 수영장에는 저렇게 식물이 놓여 있는 법이 없다. 사진 속에 있는 화분은 작가가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와 대비되는 근검절약의 정신을 표방하기 위하여 습기가 많은 수영장에 화분을 놓고 따로 물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일부러 가져다 놓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작가가 이렇게 자신의 사진에 무언가를 열심히 해 놓았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사진은 정말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내가 하늘이 선택한 듯한 자연스럽고 순간적인 사진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연출된 사진을 더 좋아한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을 때, 어쩌면 이것이 내가 지향하는 삶의 양식과도 닿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운 좋게 역사적인 현장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누구나 인정할 만한 세계의 중심지에 살지도 않고 그런 곳을 찾아다니지도 않는다. 객관적으로 신이 나를 중요한 존재로 선택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나는 그저 살아갈 뿐이다. 나에게는 전인류적인 사명 같은 게 없다. 


  즉 내 인생의 뷰파인더로 포착해내는 어떤 시점이 그 자체로 상을 받을 만한 작품이 될 확률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순간을 연출하고 합성하고 보정하는 법은 배울 수 있을지 모른다. 어느 날 내가 서 있는 지점을 위해 정성과 공을 쏟을 수는 있다는 뜻이다. 사실 그런 일은 좀 번거로울 거고, 어쩌면 거기에도 내가 애초부터 가지겠다고 선택할 수도 없는 많은 요소가 뒷받침되어야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 삶에서 운 좋은 위대함보다는 만들어진 사진을 갖는 게 가능성이 높다는 기분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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