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를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한 김에 어른이 되어보자
짧은 시간 내에 꼽아본 세 곳의 후보 중에서 계약할 곳을 정했으니, 계약서를 한 번 작성하러 가보자. 부모님과 동행하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남겨둘 점이 있던 경험이었다.
갑자기 아파트 사는 과정 제2단계: 계약서 작성
계약서를 작성하는 당일 부동산 중개업자분을 만나기 전에 뜻밖의 일을 경험했다. 내가 구입하려는 동이 위치한 단지는 좀 넓어서 동선을 체크해 보려고 돌아다녀 보는데 나의 매물 호수가 새겨져 있는 우편함이 상당히 어수선했다. 그 집에는 아직 월세 세입자가 살고 있었기에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삐죽 튀어나와 있는 가스 요금 명세서에는 그곳에 실질적으로 살지 않는 집주인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알고 보니 그 세입자는 전입 신고를 하지 않은 채 사는 중이었고, 그 아파트는 집주인이 2년간 실거주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곳이었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날짜가 되어서까지 우리 가족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다. 우리는 등기부등본 을구가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분양 주택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그런 요소를 한 번도 고려한 적이 없어서 생긴 맹점이었다. 우편함이 왜 꽉 차 있느냐, 세입자가 살고 있다면서 왜 가스 요금이 집주인 앞으로 되어 있느냐고 중개업자에게 물었더니 위와 같은 사실을 귀띔해 주었다. 아.. 찝찝했다. 가뜩이나 등기부등본 을구가 너저분한 것도(우리 가족 기준이긴 하다, 요새 대출 안 낀 집이 있어야 말이지) 마음에 안 드는데 그냥 가계약금 날릴까...? 잠깐 생각했다... 아무튼 2년이 지나 양도소득세가 중과세되는 기간이 지난 주택을 구입할 때 집주인의 실거주 의무가 있는지 앞으로 확인해 보면 좋겠다. 한편으로 세입자는 하자보수 등에 신경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집주인이 실거주 의무가 없는 곳이더라도 집주인이 살았던 곳을 매매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보통 하자보수 접수 및 처리 기간도 2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 계약서를 쓰러 갔다. 가계약금을 걸면서 매매 계약 조건에 관한 서류를 작성했었는데(이 때는 내가 가지 않았다), 거기에 매도인이 현 임차인을 책임지고 명도해주기로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현재 집주인이 세입자를 책임지고 내보내겠다는 뜻이다. 거기에 집주인 측에서 세입자에게 퇴거 확약서를 미리 받아와서, '그래요 당신들이 반드시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속으로 결정했다. 나는 가계약금을 걸고 쓴 매매 계약 조건서에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부동산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자, 일단 여기서 등기사항전부증명서 aka 등기부등본에 관한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나도 남들이 아는 만큼만 알고 있긴 하다. 갑구에는 소유자에 관한 사항이 들어가고, 을구에는 저당 잡힌 내용 등등이 들어간다. 그러니 가급적 을구는 깔끔해야 한다. 갑구에 적혀 있는 소유자가 정말 집주인이 맞는지 신분증과 얼굴 확인 등을 통해 꼭 확인하자. 등기부등본은 주소지만 알면 누구나 뽑을 수 있는 서류라서 보통 소유자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까지는 나오지 않고, 집주인이나 중개업자 등 뒷자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 그걸 입력해서 발급했을 때 나온다. 보통 갑구는 깨끗한 편인데 압류, 가처분 같은 글자가 쓰여 있다? 당장 도망쳐!!!
이제 을구에 대한 이야기다. 보통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으므로 근저당권설정, 채권최고액 등 좀 무시무시하고 어려워 보이는 글자들이 많을 것이고 나도 그랬다. 내 경우는 집주인이 두 군데에서 돈을 빌린 상태였다(으으, 싫다). 전세권이 설정되어 있다면 그 사실 역시 을구에 적혀 있을 거고, 만약 세입자로 들어가게 된다면 이 부분을 더 꼼꼼하게 봐야 할 것이다. 이전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임차권등기명령이 걸려 있진 않은지 보고, 갑구에 적히는 내용이긴 하지만 집주인이 세금을 체납한 흔적이 있는지도 봐야겠다(국세청은 언제나 우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새는 집주인의 사전 허락 없이 미납된 국세가 있는지 열람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고 하니 참고). 집을 사는 사람이라면 저당 잡힌, 즉 대출받은 금액이 매매 계약을 체결한 금액보다 클 때 상당히 껄끄러울 터다. 그런 상황의 거래가 없지는 않겠지만, 일단 내 경우 집값이 더 비쌌기 때문에 현 집주인이 잔금을 받으면 대출을 모두 갚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뭐가 됐든 '신탁'이라는 말이 보인다면 안녕히 계세요! 를 외치도록 하자.
이제 부동산 계약서를 쓸 시간이다.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그렇지 않다면 원하는 특약 사항을 빠짐없이 넣고 이것저것 확인할 타이밍이 왔다. 참고로 계약서를 쓰러 갈 때 다소 구식이지만 도장을 챙겨가자. 계약서에 간인을 찍기 때문인데 접힌 종이에 사인을 하자니 좀 불편하다. 나는 계약서를 쓸 때는 도장을 가져가지 않았고 사인을 했으나 잔금을 치를 땐 등기 과정에서 필요하니 도장을 가져오라는 말을 들었다.
기본적으로 계약서에는 '매매 계약을 체결한 이후 매도인(현 집주인)이 해당 물건에 대해 담보물권, 제한물권을 설정하지 않기로 한다' '잔금일에 매도인이 채권최고액(대출금)을 전액 상환, 말소한다' 등의 말이 특약 사항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상황에 따라서 넣을 사항이 있다면 추가한다. 우리는 집주인이 받았던 퇴거확약서를 언급하면서 세입자를 책임지고 내보내겠다는 내용을 더했다. 집을 사는 사람, 파는 사람의 인적 사항이 잘 들어가 있는지 확인하면서 기타 금액, 날짜 등 다른 곳에 오탈자가 있다면 반드시 이야기하고, 이때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중개사에게 질문하자. 도장이나 사인이 찍혀야 하는 곳도 잘 채워지는지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몇 번 질문을 했고 숫자가 틀린 점도 발견했었다. 중개사분이 계약서를 비롯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서류를 아예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으므로,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면 더욱 꼼꼼히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매매 계약서 외에 토지대장, 건축물대장, 토지이용계획서 등도 볼 기회가 있었다. 사실 나도 이것들에 관해서 잘 알지는 못한다(...) 다만 건축물대장에도 소유자 정보는 나오기 때문에 여기에 이상이 없는지 슬쩍 확인해 보자. 이러한 서류들을 보면서 해당 물건의 면적이 어떻고 어떤 설비가 갖추어져 있는지, 심지어는 중대 하자 여부도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부동산 중개비용도 이때 알 수 있었다.
서류에 이상이 없고 마음이 정말 정해졌다면 계약금을 부쳐야 한다. 보통 n천만 원이 될 거라서, 혹시라도 모바일 OTP가 아니라 따로 발생기를 이용하는 분들이라면 챙겨 와야 한다. 엄마가 딱 그 부분을 잊어버려서, 소액으로 취급되는 500만 원을 몇 번 나누어 보내는 거로 계약금을 송금했다. 매도인이 계약금을 잘 받았다고 하면 중개사가 영수증을 끊어주는데, 이 영수증에도 모든 사람들의 도장이 잘 찍히는지 살펴보는 게 좋겠다. 매매 계약서에도 계약금을 잘 받았다는 매도인의 도장이 찍혀야 한다.
이렇게 절차 종료! 중개사가 계약서를 비롯한 서류를 파일에 챙겨줄 것이다. 마지막에 나는 처음 보는 서류가 있어서 물어보니(아마 이름이 '공제증서'였던 것 같다) 중개사들이 필수로 가입해야 하는 보험 증권이라고 하셨다. 전세 사기 등이 하도 많아져서 보험금도 올라갔다나. 어떤 부동산을 계약하든 중개사가 반드시 줘야 하는 서류라고 하니 참고하자.
이제 잔금일 전까지 돈을 준비하면 된다. 사실 모두에겐 이게 제일 문제지만 잘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어떻게 해든 해야 한다... :Q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만, 내 경우에는 잔금일에 아빠가 대출을 상환하는 은행에 같이 가겠다고 했고 아마 나도 따라가게 될 것 같다. 중개사들이 함께 일하는 법무사가 다 있기 때문에 내가 개인적으로 법무사를 고용할 필요는 없었다. 은행에서도 같이 일하는 법무사가 다 있다. 아마 때가 되어서 보내줄 서류를 안내받으면 법무사 비용과 함께 전달하면 될 듯하다. 대출금을 잘 냈다는 영수증, 추후 등기 변경 사항 등을 잘 챙겨야겠다.
나는 사실 이사를 갈 날이 한 달도 안 남았다. 이렇게까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해도 되는 건가 싶지만(...) 내 존재여, 그렇게 되었도다. 혹시 이 부동산 초보이자 나이만 먹은 어른이에게 주실 말씀이 있다면 댓글 부탁드린다. 그럼 잔금일 이후에 포스팅을 잇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