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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사 이목원 Aug 19. 2021

[사별 12년] 11번째 아내 기일을 보내며

[사별 12] 11번째 아내 기일을 보내며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으랴, 사는 것도 한순간이오. 우리가 만나고 헤어지는 것도 한순간이 아닌가. 먼지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구나!”

8.18일, 어제는 아내 기일이었다. 아내 기일을 맞아 삶이 한순간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새벽 4시 30분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 여느 때처럼 노트북을 펼치고 글을 적는다. 풀벌레 소리가 귓가를 통해 온몸을 자극하고 있다. 무덥던 한여름의 기운이 가고 나니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초가을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새벽이다. 자고 나면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1년이 초고속으로 가는 세상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은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아내를 사별한 지 벌써 12년이 되었다. 눈을 감으니 그때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생생하게 스쳐 지나간다.

2010년 7월 미국 샌디에고에서 우리 가족은 1년간 행복했던 생활을 마무리하고 귀국했다. 정확히 말해 내가 1주일 먼저 귀국했고 아내와 아이들은 1주일 뒤 귀국했다. 그 당시 아버지가 몹시 편찮은 이유도 있었고, 미국 생활에 적응한 아내는 조금 더 있고 싶은 생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소방공무원이었다. 미국에서 귀국 후 일선 소방서에 복직했고 꿈같은 미국 생활의 행복한 여운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아내가 귀국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날 무렵, 2010. 8. 20일 (음력 7.11), 아내는 두 아들을 남겨 두고 홀연히 저세상으로 떠났다. 큰아이는 중학교 2학년, 둘째 아이는 유치원생이었다.

아내를 사별한 지 벌써 12년째가 되었다. 기일로 치면 11번이 지난 셈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모든 것이 변했다. 부모님도 저세상으로 가셨다. 중학생이던 아이가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교 3학년이 되었고, 둘째 아이는 작년 고등학교를 입학했으나, 코로나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를 중단했다. 최근 고졸 검정시험을 봤다. 세월은 모든 아픔, 슬픔 고통을 용해 시키는 힘이 있었다. 용해되지 않았다면 폭발해도 몇 번이나 폭발했을 것이다. 용해된 아픔, 고통이 삶의 성장 재료가 되었다.

세월에 풍화되지 않거나, 용해되지 않는 것은 없다. 육체적 슬픔도 세월 따라 이제는 메마른 슬픔이 되어 가슴 한구석을 애닳게 적신다.

아내는 대구 인근 공원묘지에 잠들어 있다. 기일이 되면 매년 아내가 있는 공원묘지를 애들과 함께 찾는다. 2018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모든 제사를 없앴다. 대신, 기일 날 산소에서 제사 겸, 성묘를 하는 것으로 간소화했다. 돈만 주면 아내와 부모님 제사를 모실 수도 있었지만, 시대 변화에 맞게끔 변화를 준 것이다.

지난주 일요일 기일을 3일 앞두고 애들이랑 아내가 잠들어 있는 공원묘지를 찾았다. 살아서도 사람들은 아파트에 모여 살고, 죽어서도 영혼들은 공원묘지에 모여 있었다. 공원묘지에 잠들어 있는 혼령들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와 흡사해 보였다.

술을 따르고 아내에게 절을 올렸다. 두 아이도 절을 올렸다. 메마른 슬픔이 가슴을 무한히 적셨다. 아이들 앞에 눈물을 보이지 말아야지, 이렇게 지낸 세월이 10년이 넘었다.

‘엄마한테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한 마디씩 해봐’. 아이들은 말이 없다. 아마도 표현을 잘 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제사를 지내고 돛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으면서 하늘과 멀리 낙동강을 바라보았다.

‘유인경주0씨00지묘’ 아내가 잠들어 있는 비석에 글씨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묘비 뒤에 새겨진 두 아이 이름도 바라본다. 

10년 후 내 모습, 아이들 모습, 20년 뒤의 모습이 그려졌다. ‘열심히 살아야지’,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야지’, ‘인생 1 막은 추락해도 2 막은 추락하지 말아야지’. 이런 마음이 아로새겨진다. 아내를 사별하고 인생 최악의 위기를 견뎌낸 힘이었다.

인생 2막 좋든 싫든 우리는 배우자를 먼저 보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내가 출간한 책 1장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어쩌면 내가 먼저 갈 수도 있다. 가는 것은 순서가 없기 때문이다. 내밀한 삶을 살기 위해 배우자 사별을 통한 정신 무장을 할 필요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닥칠지도 모를 큰 충격에도 대비할 수 있고, 인생을 더욱 알차게 살 수 있는 동기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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