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너에게 운동이란?
진짜로, 정말로 하기 싫지만 ‘체단실(직원을 위한 체력단련실)’로 간다. 밤 10시에 운동을 시작해서 마무리 샤워까지 하면 12시가 넘게 되므로 다른 센터로 가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사실 이동할 힘도 없다. 꾸역꾸역 걷고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아주 느린 템포로 호흡한다. 눈은 감으면 안 된다. 잠들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칭이 끝날 무렵이면 몸이 조금 풀린다. 이대로 잠들면 좋으련만 애써 뿌리치고 어기적어기적 아령을 들어 올린다. 수업을 마친 선생님들이 하나둘 모인다. 말도 없다. 각자 자신의 몸에만 집중한다. 그래도 혼자보다는 낫다.
모든 운동이 끝나면 오히려 개운해진다. 한 자세로 오랫동안 있으면서 굳어있던 근육이 풀리고, 약간의 땀이 나면서 부어있던 다리가 가벼워진다. 하루종일 얕은 숨만 쉬다가 운동으로 큰 호흡을 하고, 심박수가 올라가야만 알 수 있는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느낌을 즐긴다. 운동 참 재미없다. 혼자서 하는 웨이트는 더 재미없다. 하지만 다음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운동한다.
서울에 산 지 10년이지만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지옥철을 타 본 적도 없고 러시아워가 뭔지도 모르고 지냈다. 이르면 새벽 6시에 첫 수업이 시작되고, 퇴근 후 운동하려는 회원들이 몰리는 시간이 끝나면 저녁 10시다. 트레이너들의 하루는 그렇게 지나간다. 점심시간과 저녁 식사시간도 따로 빼두지 않으면 못 챙길 때가 다반사다. 진짜 문제는 개인 운동시간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우리끼리 말로 몸 만들어 입사하고 근육을 주고 월급 받는다고 한다.
트레이너들은 개인 운동을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우리도 각자 체성분이 다르고, 성별과 연령대가 달라 단언하기 어렵지만, 나의 경우에는 주 4회, 1시간 30분 정도가 일반적이다. 20대에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나는 운동이 체질이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몸이 좋아했고, 근육량도 빠르게 늘었다. 식사량을 줄이는 것보다 잘 먹고 운동하는 것이 다이어트도 더 잘됐다.
그런데 수업이 점점 많아지고 근무 외 시간까지 수업을 하면서 몸이 상하기 시작했다. 보통 3주쯤 운동을 못 하면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몸의 표면이 약한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가렵다. 목이나 무릎에 통증이 생기고 몸에 탄력이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손아귀에 힘이 떨어져 덤벨이나 바벨을 드는 순간 무게감이 벌써 다르다. 그러면 직감한다. ‘근육이 빠지는 중이구나. 운동해야겠다.’ 한다. 얼굴에는 살이 빠지지만 배는 더부룩하고 부풀어 올랐다. 그런 달은 어김없이 생리통도 심해졌다. 하지만 트레이너들은 장시간 서 있고, 말을 많이 한다. 계속 시범을 보이고 회원들의 동작에 코멘트를 단다.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렇게 하루를 보낸 후 퇴근하면 내일 출근에 쫓겨 잠들기 바빴다.
이런 패턴의 생활은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근육량이 엄청나게 빠지고 그 자리가 지방으로 채워진다. 하물며 운동을 지속해서 해온 사람의 경우에, 원래 마른 체질인 사람들은 운동을 그만두면 더 마르게 되고, 통통했던 사람들은 다시 살이 찐다. 나는 전자에 가까운 후자였다. 운동을 멈추면 근육량이 줄어 겉보기에는 말라간다. 하지만 사실은 체지방이 그 자리를 메운다. 결국 ‘나만의 슬픔’이 된다.
눈 한 번 딱 감고 ‘체단실’에 가기만 하면 다음 날의 보상이 너무 크다. 아침에 눈이 번쩍 떠지고, 뻐근한 근육통이 오히려 몸의 무게중심을 잡아 주는 것 같은 안정감이 느껴진다. 종일 활력이 돌고 기분이 ‘업’ 된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는 효능감과 다음날 쏙 들어간 배는 상상 이상으로 뿌듯하다. 피곤하고 귀찮아서 체단실을 못 본 척 지나치고, 나에 대한 보상이라며 야식과 술을 마시고 자는 날보다 훨씬 행복하다. 나도 조금이라도 더 쉬고, 30분이라도 더 자고, 마음대로 먹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그보다 더 큰 보상의 달콤함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트레이너도 운동하기 싫다. 정말로 좋아서 하는 시기는 보통 트레이너 1~2년 차 안에 끝난다. 꿈도 일이 되면 의무가 된다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 하지 않으면 아프니까, 몸이 나빠지는 것을 너무 민감하게 느끼니까 한다. 맛있는 거 먹고 잠 좀 더 자는 것보다 그게 더 싫어서 한다. 내일도 오늘과 같이 수업도 하고, 글도 쓰고, 활기차게 보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운동 가방을 싼다.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