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지금 내가 놓치고 있는 것

by Trey

바쁘게 산다는 이유로, 또 정신없다는 것을 핑계 삼아 놓치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다. 문득 놓치고 사는 것들이 떠오를 때마다 괜스레 답답해지고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나중에 돌아보면, 사실 놓치고 지나가도 상관없는 것들이 많은데, 왜 그러는지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지난 스승의 날에 편지를 한 통을 받았다. 우리 반 남자아이의 어머니로부터 전해진 편지다. 작은 종이에 손글씨가 가지런히 적혀있는 아주 고마운 편지였다. 처음에는 그냥 보통의 스승의 날 편지처럼 수고하고 있다는 격려와 앞으로에 대한 응원을 담은 내용일 거라 생각했다. 아이들이 모두 하교하고 난, 조금은 여유로운 시간에 그 편지봉투를 열어 내용을 읽고는 정말 많이 울컥했다.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지 말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으로서 지내는 나의 역할이 나의 삶에 전부가 아니니 너무 이 일에만 에너지를 쏟고, 몰두하고, 지쳐가지 말라는 진심 어린 걱정과 조언이었다. 나는 내가 꼼꼼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하루에 필요한 준비를 모두 해 두기 위해서, 그리고 이제는 습관이 되어서 남들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왔다. 가끔은 퇴근을 늦게 하기도 하고, 남들보다 학교를 일찍 가는 것은 이젠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다. 올해만 해도 주말에 하루 이상 학교에 가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오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교사라는 직업이 천직인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매일 지나치게 몰두하며 시간을 소모하는 동안 내가 즐길 수 있었던 나의 시간을 놓쳤다. 주말에 날씨가 좋아도 그 햇살을 느끼며 학교에 갔다. 태풍이 왔던 주말에도 아마 학교에 갔던 것 같다. 그 시간에 나는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었고, 카페에서 여유를 즐길 수도 있었고, 친구를 만나서 가보고 싶었던 맛집에 다녀올 수도 있었을 텐데. 물론 그 덕에 월요일 아침에 해야 할 급한 일들이 반쯤 줄어든다는 성과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런 것들 말고도 요즘 놓치고 있는 것들이 있다. 해야 할 일들을 놓친다. 그리고 해야 할 일들이 나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긴 하지만 내가 느끼는 상황이 그렇다. 나는 무슨 정신으로 지내는지 도통 머릿속에 체계가 잡히지 않는 기분이다. 하루하루를 즉흥적으로 생각나는 순서대로 살아가고 있는 기분이다. 사소한 예를 들어보자면 교사 연구실 프린터를 교실 컴퓨터에 연결해 두었는데, 바로 찾으러 갈 목적으로 인쇄를 10장 해 두고는 몇 시간이 지나 그냥 퇴근을 해 버렸다. 다음 날 아침에 새까맣게 잊고 있던 그 종이들을 보면서 그제야 아차 하는 마음이 들곤 한다. 또 아이들이 일기를 제출하면 확인하고 다시 돌려주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책상 잘 보이는 곳에 두고 퇴근을 하며 ‘내일 아침에 바로 체크해서 나누어 주어야지’라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다음 날 퇴근길에 똑같은 생각을 하는 날이 여럿 반복되고 있다.


나는 예전부터 구글 캘린더를 이용하고 있다. 아이들의 출결, 업무, 수업, 개인 일정 등 세부적으로 기록을 하고 있는 편이다. 물론 습관이 되어서인지 요즘에도 기록을 착실하게 하곤 한다. 그리고 일정에 기록하기 애매한 할 일들은 스마트폰의 리마인더(미리 알림) 앱을 이용하여 항상 적어두곤 한다. 매 시간 해야 할 일을 잊지 않도록 알림을 보내주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캘린더와 리마인더 앱에 빨간색으로 숫자가 쓰인 알림 뱃지가 생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면에 그런 빨간 동그라미 하나 생기는 게 너무 신경 쓰여서 일을 빨리 처리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빨간 뱃지에 쓰인 숫자가 1이 아니라 4가 되고, 5가 되어도 별 마음이 없다. 이러한 상황이기에 내가 일을 놓치는 것도 맞지만 일이 나를 놓치는, 즉 일이 나를 찾아와도 내가 숨어버리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분명 지금 내가 열정 넘치는 그런 보기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내가 지쳐있기 때문이든, 모든 에너지를 소진했기 때문이든, 아니면 내가 원래 이런 성격이었는데 지금껏 숨겨 두었든. 어쨌거나 변화는 학교에서부터 왔을 것이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다시 변화의 답을 찾아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무작정 학교에서만 모든 답을 찾으려고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 학부모의 편지처럼 나는 젊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며, 학교가 전부도 아닐뿐더러, 내 삶이 있는 ‘나’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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