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에는 장난꾸러기들이 참 많다. 이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을지 적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때 아이들은 장난꾸러기여야 한다. 장난을 친다는 것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또 사회 속에서 누군가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며, 적당한 관심을 주고받기를 희망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아이들은 누구나 장난꾸러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장난의 정확한 사전적 의미가 무엇일까? 찾아보니 ‘주로 어린아이들이 재미로 하는 짓’이다. 사전적 뜻에서도 아이들은 언제나 장난꾸러기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나는 아이들이 장난꾸러기여야 한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귀여운 장난을 보면서 세상을 행복하게 살자거나, 우리도 웃음을 되찾자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장난의 정도에 대해 조금은 솔직하게 이야기해보고 싶다.
나뿐만 아니라 전국 모든 선생님들이 수도 없이 이야기하는 말일 것이다. “장난은 혼자만 재미있을 때 장난이 아니다. 함께 하는 친구도 재미있어야 장난이다. 그렇지 않으면 폭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즐겁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귀찮거나 불편함을 표시하는 데도 지속한다는 것은 더 이상 장난으로 보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보자. 행복이가 웃음이를 자꾸 뒤에서 찌른다. 앞뒤로 앉아있는 자리 배치에서 매 수업 시간, 매 쉬는 시간을 쫓아다니면서 쿡쿡 찌른다. 웃음이는 자꾸 뒤를 돌아보며 짜증을 내게 되고, 하지 말라고 경고를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는 결국 화를 내고 싸우게 된다. 물론 선생님은 수업 시간 내내 투닥거리는 그 아이들을 보며 수 차례 지도를 했을 것이다. 또 쉬는 시간까지 이어지는 두 아이의 다툼을 지켜보면서 따로 또 같이 수 차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행복이는 그저 장난이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다시 한번 어디까지가, 또 어떤 조건에서만 장난이 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 준다. 쉽게도 이야기하고, 다음번에는 또 단호하게도 이야기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행복이랑 웃음이가 수 차례 약속을 정하고 지키도록 했을 것이며, 학급의 규칙을 이리저리 재어보며 행복이를 변화시키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상황이 지속되면서 선생님은 행복이의 부모님과도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누고 해결책을 찾으려 말 그대로 애썼을 것이다.
참 슬픈 상황이지만 행복이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보자. 그저 자기가 재미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자기만의 ‘장난’을 친다. 웃음이는 정말 과격한 표현까지 써 가면서 싫어한다. 행복이가 우리 반에 없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행복이의 부모님도 선생님에게 아이가 힘들어하고 있음을 수 차례 표현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사가 과연 어떤 해결책을 내려야 하며, 어떤 지도를 해야만 할까?
정확히 이 일이 지난 한 학기 내내 우리 교실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개학을 한 지금 어김없이 이어지고 있다.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정말 수 십 번의 상담을 하고, 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함께 약속을 정하기도 했고, 상담 선생님과 함께 아이를 이해해보려 노력도 해보았다. 같은 학년을 맡은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해결책을 찾아보려고도 했고, 하다못해 교장선생님에게서 도움을 찾아보고자 찾아간 적도 있다. 그 결과는 앞에서 이야기한 그대로다. 참 슬픈 상황이지만 행복이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늘 학교에서 여전히 행복이는 자기만 즐거운 ‘장난’을 친다. 행복이가 변하지 않은 것은 슬프다. 하지만 그런 행복이를 보면서 딱히 내가 교사로서 더 이상 시도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는 그 순간들이 더욱 슬프다. 열심히 다시 시도해봐야지, 다시 차분하게 이야기해 봐야지.. 하는 시도들이 픽픽 꺾여나갈 때마다 정말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지금 선생님과 행복이와 웃음이는 수 십 갈래의 길을 따라 함정과 장애물을 피해서 여기에 왔다. 우리 앞에는 아직 가보지 않은 더 많은 갈래의 길이 있다. 그리고 그 길은 지금 뿌연 안개로 덮여있어 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글의 맨 처음에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반에는 장난꾸러기들이 많다. 그리고 아이들은 모두 장난꾸러기여야만 한다는 생각 또한 변함이 없다. 우리 반 우리 아이들이 정말 ‘장난꾸러기’로 행복할 수 있기 위해선 내가 안개를 쓸어가며 밝은 빛이 나올 때까지 많은 길을 가 보는 방법뿐이지 않나 싶다.
슬픔과 무기력 틈새에서 책임감과 기대감이 싹트는 참으로 이상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