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가끔은 휴식이 필요해

by Trey

오늘 아침에는 왠지 출근을 천천히 하고 싶었다. 보통 여덟 시를 전후로 출근을 해왔다. 유독 이번 주에 이런저런 행사도 많았고, 바로 전날이 공휴일이었던 탓이 큰 것 같다. 집에서 느긋하게 나와서는 드라이브 스루가 있는 집 앞 카페로 향했다. 여러 가지 종류의 커피를 다섯 잔 주문해서 차에 담았다. 집에서 학교까지 워낙 가까운 터라 그 사이에 따뜻한 커피가 식는다거나, 아이스커피의 얼음이 많이 녹아버릴 일도 없는데도 빨리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 급하게 학교에 간 것 같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몇몇 선생님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가장 가까운 1층 보건실로 커피를 사 왔으니 어서 하나씩 가지러 오라고 말이다. 차에서 내려 커피를 들고 보건실로 가는 길에 여러 선생님들을 마주쳤다. 다들 다섯 잔의 커피를 간신히 한 손으로 들고 있는 모습을 보며 힐끔 거리며 인사를 하긴 했지만, 커피에 대해 묻거나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 듯했다. 그저 각자의 일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우리 학교의 한 가지 매력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사실 내가 커피를 다섯 잔이나 산 이유도 참 특이하다. 평소 방과 후에 커피를 자주 모여 마시는 선생님들은 네 명이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런데도 다섯 잔을 가지고 온 이유는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 보건실에 방문할지도 모르는 누군가 때문이다. 다른 선생님일 수도, 행정실의 주무관님일 수도, 교장선생님일 수도 있다. 그 누군가에게까지 오늘은 베풀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 스스로 마음의 여유를 억지로나마 만들고 싶은 날이었다.


결국 내가 있는 동안 아무도 보건실을 다녀가지 않았다. 보건 선생님께 누구든 오는 분께 커피를 드리라고 부탁하고는 계단을 올라가다가 우리 학년 부장님을 마주쳤다. 그렇게 그 커피는 우리 학년 부장님의 손으로 들어갔다. 그 커피 한 잔 덕분인지 오늘은 시작부터 마음이 편안했다. 그렇게 전담시간 하나 없는 오늘의 수업들을 한 시간, 한 시간 이루어나가고 있었다.


2교시쯤 끝났을 때, 문득 오늘 오후도 여유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해야 할 일도 없으며 예정된 상담이나 회의도 없었다. 바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오늘 수업이 끝나는 시간부터 조퇴를 할 수 있도록 신청을 했다. 조퇴를 하고 학교를 나서면 무엇을 해야 할까 벌써부터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해야 했지만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한 없이 미뤄두기만 했던 일들이 생각났다.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와야 했고, 몇 주 전부터 한쪽 타이어에 공기압이 부족하다며 경고등을 밝히던 자동차를 정비해야 했다.


아이들을 집에 보내고 여유롭게 교실을 정리한 뒤, 1층으로 내려간다. 신발을 갈아 신고 차량 5부제에 해당되어 학교 바깥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를 찾아 걸어간다. 하늘도 맑고 바람도 선선하고 기분도 좋아진다. 속으로 혼자 생각했다. ‘아 이게 진짜 얼마만의 여유로운 오후인가’ 정말 2학기 개학을 하고 이번 주 까지 단 하루도 여유로운 날이 없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행사들과 업무와 상담과 회의들이 지겨울 만큼 계속되었다. 작년까지는 이런 여유를 그래도 종종 즐기곤 했는데, 올해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한가득 커졌다가 다시 사라진다. ‘이런저런 생각 하지 말고 그냥 여유로움을 즐기자’고 생각했다.


언제나 그렇듯 학교 바깥에서의 시간은 정말로 잘만 흘러간다. 어느새 네 시가 지나가고, 어느새 퇴근 시간이다. 그래도 나는 오늘 하고자 했던 일을 모두 다 해냈다. 병원에 가서 긴 시간을 기다려서 약을 받아오는 데 성공했고, 카센터에 가서 타이어 공기압을 점검하고 채워 넣었다. 그리고 편안히 엎드려 글을 쓰고 있다. 작년과 올해의 나의 교직 생활은 너무나도 다르다. 너무나도 지쳐가는 것이 느껴지고, 정말 힘들어졌다. 아마도 이런 여유로운 휴식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끔이라도 조금은 내려놓고 나를 위한 휴식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짬을 내서 일을 처리하고, 무언가를 준비하고 잘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앞으로는 짬을 내서 휴식을 취하고 여유로움을 생각하고 즐기는 시간을 만들려 노력해야겠다. 그게 그 어떤 자기 계발보다도 효과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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