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으로 일 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그동안 만나서 가르친 학생들을 세어보면 벌써 꽤 많은 수가 되었다. 첫 해에 6학년을 맡았었는데, 그 아이들이 벌써 고등학교 3학년을 앞두고 있으니 말이다. 군 복무를 위한 휴직으로 인해 첫 학교에 발령을 받은 지 6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근무를 하고 있는 특이한 상황 덕분에 졸업한 학생들을 거의 매일 마주치다시피 하고 있다.
오늘 수업이 모두 끝나고 우체국에 볼일이 있어서 다른 한 선생님과 다녀오던 길이었다. 저 멀리서 걸어가고 있는데 횡단보도 쪽에 오토바이 한 대가 멈춰 섰다. 신호를 기다리는 듯했고, 오토바이에는 남자 두 명이 타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고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다가갔을 때 오토바이에 탄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바로 내가 첫 해에 가르쳤던 두 학생이었다.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이 된 그 아이들이다. 종종 학교에 찾아와서 이야기도 나누고 하던 낯이 익은 아이들이라 바로 인사를 했다.
그 아이들이 먼저 물었다. “쌤, 학교 안 가세요?” 우체국에 볼 일 있어서 다녀오는 길이라고 이야기를 하며 이 시간에 학교에 안 가고 왜 여기에 있는지 물었다. 학교가 일찍 끝난 건지, 시험기간인 건지, 무슨 이유인지 가볍게 물어보았다. “때려치웠어요” 그 대답을 듣고 딱히 해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웃어넘기며 다음에 보자는 이야기를 하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아직도 그 두 학생이 초등학생이었던 때가 생생하게 생각난다. 두 학생은 같은 반이었고 엄청난 장난꾸러기였다. 오토바이 뒤에 타고 있던, 나에게 학교에 왜 안 가냐고 질문을 했던 그 학생은 종종 말썽을 피우기는 했지만 특유의 친화력으로 모두에게 살갑게 대해주는 학생이었다. 재치가 있고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선생님들에게도 잘 다가왔었던 기억이 난다. 오토바이 앞에 타고 있던 학생은 물론 장난꾸러기였다. 게다가 수업을 진행하려는 선생님들의 시도를 번번이 방해하고, 모둠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도록 흐름을 끊어버리던 학생이었다.
학교로 돌아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예전 그 아이들 모습이 생각나기도 했고, 왜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잘 되었다거나 잘 못 되었다는 판단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판단할 수도 없는 일이고 말이다.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무슨 일이 있었겠지 하며 그냥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럼에도 쉽사리 마음이 안정되지는 않았다.
우리 반 아이들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10살짜리 우리 반 아이들도 언젠가는 5학년이, 6학년이,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또 만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지금 개교 준비를 하고 있는 새 학교에 2년 뒤에 가서 근무를 할 계획인데, 아이들이 그 학교로 상당수 전학을 갈 예정이라 거기서 지금 아이들을 다시 만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때의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 있을까. 그때의 아이들은 얼마나 성장하고, 얼마나 달라졌을까.
1년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선생님이 아이들의 모든 것을 알 순 없다. 아이들이 그 후에 어떻게 변하게 될지 알 수 없으며, 아이의 자라나는 길과 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 당장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책임감을 항상 지닌 채 아이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아이들이 변화하고 성장하면서 길을 결정하게 되는 아주 조그만 조약돌이 될 수도 있고, 큰 발구름판이 될 수도 있다. 선생님으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촉매제로서, 조력자로서 지녀야 하는 마땅한 것이 아니다. 혹시라도 내가 아이들의 결정에, 아이들의 선택에 미세하게나마 영향을 주어 성장의 방향을 조금씩 틀어 놓을 가능성이 있다는 긴장감과 무거움 때문에 가져야 하는 그런 것이다.
오늘 우리 반 아이들을 보며 해 주고 싶은 말을 마음속으로만 되뇌었다. 얘들아, 잘 살자. 지금 하는 대로 앞으로도 하나씩 선택을 해 나가며 살자. 그리고 그렇게 살며 자라서 다시 만나자. 얼굴에 남은 앳된 모습이 아니라, 선택의 모습과 생활의 모습을 보며 “아 너구나!”하며 반가워할 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