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은 초등학교에서 종소리를 없애고 있는 추세다. 수업을 시작하는 종소리는 그대로 두더라도 끝나는 종소리를 치지 않도록 변경하는 학교들이 많다. 사실 종소리에 따라 수업의 흐름이 시작되고 끝나버리는 것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루에 총 13번의 종소리를 듣는 입장에서, 올해 내가 신경 써야 할 수많은 업무 중에 종소리 관리가 포함되어 있는 입장에서 종소리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수업 시작하는 종소리는 언제 들어도 반갑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아이들에게는 더욱 압박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밝고 또랑또랑한 10초 남짓 음악이 이어지는데도 전혀 기쁘거나 신이 나지 않으니 말이다. 수업 시작하는 종소리에 모든 것을 맞추도록 교사들은 요구하고, 아이들은 요구받고 있다. 모든 아이들은 수업 시작하는 종소리에 맞추어 화장실의 모든 볼일을 끝내도록 요구받고, 모든 책들이 펴져 있기를 요구받고, 1층 도서관에서부터 출발하여 정확히 자리에 도착해 있기를 요구받는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다. 쉬는 시간 틈을 내서 하던 학년 회의는 수업 시작 종소리에 맞추어 끝이 나있어야 하며, 나누던 대화도 급하게 단절되고 서로가 교실을 향하여 바쁘게 걸어가야만 한다.
어른들에게도 정확히 제 시간을 지켜가며 10분을 온전히 사용하기는 힘든 일이다. 3층 맨 구석에 위치한 우리 교실에서 1층 반대편 건물에 있는 도서관까지 아이들 걸음으로 다녀오는 왕복 시간만 10분 조금 안 되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쉬는 시간이 3분 남았을 때 화장실에 갑자기 가고 싶게 될 수도 있다. 상담실에 다녀오는 아이들, 어딘가에서 춤 연습을 하다 오는 아이들, 다른 반 친구를 만나서 놀이터에 다녀오는 아이들. 10분의 쉬는 시간은 충분히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시간이다.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도 가끔은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나도 내가 모든 수업을 정확히 40분에 맞추어 운영하고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교사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능력이, 좋은 선생님이 되는 필수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요에 따라서 가끔은 3분을 더 활동하고자 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5분 일찍 활동과 정리가 끝나는 수업도 있을 수 있다. 3분을 더 활동하고자 하더라도 아이들은 이미 마음이 들떠있다. 10분이라는 그 짧은 쉬는 시간이 점점 더 짧아져가기 때문이다. 간절한 눈빛으로, 표정으로, 몸짓으로 빨리 마무리하고 쉬게 해 달라는 표현을 쉬지 않고 보낸다. 수업이 5분 정도 일찍 마무리된 날에도 사실은 애매한 상황이 많다. 끝나는 종소리만을 기다리고 있는 학교의 다른 나머지 반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교실 안에서 그 5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든 소비해야만 한다.
조금은 유연하게 생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말을 어떤 사람들은 무작정 수업 시간을 줄이겠다는 뜻으로 이해하곤 한다. 전혀 아니다. 그냥 상황에 맞추어 수업을 하면서도 기계음 종소리에 눈치를 덜 보고 싶다는 말이다. 왜 점차 많은 학교에서 종소리를 서서히 없애가는지 요즘 들어 이해가 된다. 선생님이 온전히 스스로의 수업을 구성하고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아이들이 그 수업에 온전히 집중해서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하나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나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우리 학교를 떠난다. 재량휴업일이 없다느니, 종소리가 없었으면 좋겠다느니 불만을 자꾸 말한 탓에 학교가 싫어서 떠나려고 한다는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어느 정도는 맞기도 하지만, 틀리다. 나는 더 있고 싶어도 우리 학교에 있을 수가 없다. 첫 학교에서 너무 많은 해를 보내버렸다. 이 학교, 저 학교를 거쳐가면서 나의 생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어느새 나도 납득을 한 채 무난하게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고, 고민 걱정 없는 학교를 만나서 지내게 될 수도 있다. 그저 아직 첫 학교 밖에 겪어보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한 선생님이 아쉬워서 투덜대는 투정으로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