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히 확장되진 못하겠지만, 분명 배울 점이 존재합니다
이 글은 패션 산업의 디지털 혁신을 위한 컨퍼런스&미디어 플랫폼 [디토앤디토]에 기고한 글입니다
확실히 불황은 맞는 것 같습니다. 초저가 균일가 매장 다이소가 연일 유통가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기 때문인데요. 시작은 식품이었습니다. 햇반과 라면, 심지어 과자마저 슈퍼마켓이나 편의점보다 저렴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다이소의 가격 전략이 새삼 주목받게 되었는데요. 이어서 비록 용량은 다르지만, 올리브영에선 3만 2,000원(50ml)에 판매하는 VT 리들샷(12ml)을 다이소에선 고작 3,000원에 살 수 있다는 것이 이슈화되면서, 언론에서는 다이소를 올리브영의 대항마로 띄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이소는 패션까지 그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무려 5,000원짜리 플리스와 발열 내의를 출시하며, 유니클로를 비롯한 SPA 브랜드를 겨냥하고 있거든요.
당연히 다이소가 이렇게 파격적인 가격으로 상품을 만들 수 있는 건, PB(Private Brand) 상품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PB 상품은 제조사가 아닌 유통사가 직접 기획하여 만든 것을 뜻하는데요. 유통 수수료가 들지 않기에 일반적으로 더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다이소 플리스 정도 되면 단순히 PB만으로 만들 수 있는 가격이 아니긴 합니다. 이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에 가능했던 프라이싱이었는데요.
우선은 다이소가 매우 큰 유통업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다이소는 전국 1,500여 개에 달하는 매장에서 연간 3조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요. 이렇게 체급이 되면, 규모의 경제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생산량이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서면 평균적인 비용이 떨어지는 것을 규모의 경제라 하는데요.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비해 가격 경쟁에서 유리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다이소 역시 이제는 이 정도 레벨에 올랐다고 볼 수 있고요.
더욱이 균일가라는 판매 방식 덕분에, 이를 맞추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유통채널보다 저렴한 가격 책정이 가능해집니다. 다이소는 여전히 모든 상품을 500원, 1000원, 1500원, 2000원, 3000원, 5000원 등 6가지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데요. 애매하면 보통은 낮은 균일가에 맞춰 판매하기 때문에 가격이 쌀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제조사들이 유통채널에 지불하는 판매촉진비를 받지 않는 것도 다이소 가격의 비밀 중 하나라고 하는데요. 다이소는 판촉비를 받기보단, 차라리 낮은 납품가를 제품을 공급받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추가적으로 가격을 인하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는 거죠.
그런데 다이소가 패션 상품을 만들 땐, 이러한 강점들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패션 브랜드들은 유명 연예인을 기용하는 등 브랜딩에 상당 비용을 지출하곤 하는데요. 다이소는 광고 등 마케팅 비용이 지불할 필요가 없기에 훨씬 프라이싱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됩니다. 이는 어차피 다이소는 방문하는 고객들의 추가 구매를 유도하는 것을 주 전략으로 삼고 있기 덕분에 가능한 일이고요.
또한 재고 상품에 대한 할인을 상정하고, 프라이싱을 하는 일반적인 패션 브랜드와 달리, 다이소는 아마도 노세일을 각오하고 가격을 정한 걸로 추정됩니다. 기본적으로 패션 상품은 재고가 발생될 수밖에 없고, 이를 세일로 최대한 소진하려 하니, 막판에는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일도 종종 생기게 됩니다. 이를 감안하여 가격을 책정하면, 최초 가격은 원가 대비 배수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요. 다이소처럼 굳이 할인을 할 생각이 없다면, 낮은 배수로도 충분한 이익을 낼 수 있는 거죠. 이렇듯 여러 요소들을 감안하면, 5,000원이라는 가격이 조금은 현실적으로 다가오긴 합니다.
그렇다면 다이소는 플리스를 시작으로 정말 패션업계의 새로운 메기로 떠오를 수 있을까요? 사실 다이소가 이러한 초저가 의류를 만들어온 건 올해가 처음은 아닙니다. 이미 작년 5월에 의류 및 용품 20여 종을 새롭게 출시하면서 패션 확장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고요. 이러한 시도들이 최근의 고물가 이슈와 겹치면서, 더 화제가 되었던 겁니다. 하지만 아마 진짜 패션 시장에서 유의미한 영향을 주긴 어려울 걸로 보입니다. 다이소의 현재 균일가에 맞추려면, 할인 없이도 재고를 소진할 수 있도록 유행을 타지 않는 특정 품목 정도만 운영할 수 있고요. 이를 넘어선 상품의 경우, 실제 품질과 상관없이 오히려 소비자들의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를 잘 보여준 사례가 이미 존재하기도 하는데요. 한때 국내 SPA 브랜드 중 1위로 알려져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이마트의 데이즈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마트의 PB 브랜드 데이즈가 던진 충격파는 현재 다이소 플리스 그 이상이었습니다. 2009년 론칭 이후, 가성비 의류로 인기를 끌더니, 정점을 찍은 2016년에는 무려 4,680억 원이라는 엄청난 실적을 기록합니다. 당시 기준으로 SPA 브랜드 매출 순위는 유니클로에 이어 2위였고요. 1조 원 매출이라는 목표를 제시할 정도로 기세가 대단했습니다.
데이즈는 이러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진행합니다. 정용진 부회장이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들겠다며 직접 홍보에 나서기도 했고요. 이어서 하남 스타필드에 첫 단독 매장을 오픈하기도 했습니다. 패션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해, 브랜드 리뉴얼을 단행하고, 해외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와 협업도 진행했습니다. 연예인을 홍보 모델로 기용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노력들이 이어진 2016년 이후 데이즈는 거짓말처럼 하락세에 접어듭니다. 2017년 매출은 4,450억 원으로 소폭이지만 오히려 감소하더니 이후 실적은 발표조차 안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심지어 브랜드 철수설까지 돌고 있고요.
이렇듯 데이즈의 꿈이 좌초된 건, 패션 브랜드를 만드는 것과 가성비 좋은 옷을 만드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사람들이 데이즈에 기대했던 건, 브랜드 의류가 아니었는데요. 어설픈 브랜드로의 변신은, 기존의 강점이던 가성비만 희석시켰습니다. 다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마트가 예전의 명성을 지켰다면, 데이즈 역시 철수를 고려할 정도로 몰리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데이즈라는 브랜드를 가능케 한 본진 마트 사업이 흔들리니, 데이즈 역시 지속될 수 없었습니다.
다이소 의류 역시 같은 길을 걸을 겁니다. 다이소 의류가, 식품이, 그리고 화장품이 연일 화제가 되는 건, 다이소 자체가 최근 불경기 트렌드 덕분에 더욱 흥하고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아마 다시 경기가 회복되고, 사람들이 지갑이 열리면서 다이소를 찾는 것이 조금 뜸해지면, 열풍도 금방 식을 거고요. 그렇다고 다이소가 새로운 패션 브랜드를 만들 수도 없을 겁니다. 사람들이 다이소에게 그런 기대를 하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패션 브랜드로의 변신을 선언하는 순간, 5,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은 불가능해질 테니 말입니다.
다만 다이소가 실질적인 경쟁자가 될 가능성은 적더라도, 패션 업계가 다이소에게 배울 점 또한 분명 있다고 봅니다. 우선은 다이소의 제조 및 기획 역량은 정말 대단하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5,000원짜리 플리스로 이익을 내며 매장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원가 관리를 통해 저가임에도 나쁘지 않은 품질을 구현했다는 점, 마지막으로 세일 없이도 재고를 모두 소진할 수 있는 판매 능력까지, 이러한 점들을 체화할 수 있는 브랜드라면 하나의 무기를 더 가지게 되는 셈이니까요.
특히 시장의 변화에 맞춰, 고객이 원하는 걸 정확히 캐치하는 능력이야 말로 다이소가 가진 가장 큰 무기가 아닐 듯싶은데요. 다이소는 소비가 늘어나던 시기에는, 유행을 선도하는 곳으로 포지셔닝했다가, 최근에는 다시 가성비를 가장 큰 차별점으로 다시 내세우고 있습니다. 여기에 맞춰 대표 상품들도 바뀌고 있고요. 이러한 기민함이야 말로, 다이소가 부침 없이 꾸준히 성장해 온 비결일 겁니다. 우리가 다이소에게 주목해야 할 진짜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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