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본 이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스포 있음)
줄거리
영화 ‘재심’은 한 소년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영화 속 소년 ‘현우’(강하늘)의 억울하다 못해 정말 영화 같은 누명을 쓰고 10년이란 시간을 복역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하나의 억울함은 또 다른 억울함을 ‘현우’에게 선물한다. 바로 피해자에게 지급된 보상금에 대한 채무가 그것이며, 사천만 원이었던 채무는 이자에 이자를 더해 1억 7천만 원으로 불어난 것이다. 의지할 곳이 없는 ‘현우’(강하늘)의 어머니 ‘순임’(김혜숙)은 무료법률상담을 신청하고 변호사 ‘준영’(정우)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부와 성공만을 위해 변호사란 직업을 선택한 ‘준영’(정우)은 돈이 안 되는 무료법률서비스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현우’의 하소연에서 ‘준영’은 자신의 처지를 역전시킬 기회를 찾게 되는데, 바로 ‘현우’의 결백을 밝혀 얻게 될 부와 유명세의 냄새를 맡은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 영화는 생각의 여지도 고민의 여지도 없는 영화일 수 있다. 그저 억울함에 같이 분노하고 정의와 선의에 감동하며 즐기면 그만일 수 있다. 물론 이 억울함에 자신의 일처럼 같이 분노하고 정의와 선의가 왜 옳은지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정말 말도 안 되는 억울함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 하는 첫걸음 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감동의 끈은 좀 더 이어나가고자 한다. 영화 속 선과 악은 무엇보다 명확하다. 제삼자의 관찰자 입장에서는 대립과 갈등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해 누구나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준영’이 되고 ‘창환’(이동휘)이 되고, 악질 경찰과 검사의 입장이라면 모든 것의 옳고 그름에 대한 질문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가 돼 버린다.
영화 '재심', 내가 즐기는 장르의 영화다. 나에 대한,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 나는 책도 영화도 무엇이든 생각하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 쉽지 않은 질문, 그것을 내 안으로 받아들여 느끼고 해석하며 나만의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즐긴다. 그런 면에서 영화 ‘재심’은 나에게 이 시대의 ‘법’과 그것을 집행하는 ‘인간’에 대해 생각과 질문을 던져 주었다.
영화 ‘재심’이 나에게 던진 질문, 인간이 추구하는 사회적 도덕과 윤리 그리고 양심을 바탕으로 한 법의 길은 명확하다. 이 길은 몰라서 가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왜 이 길을 똑바로 걸어가지 못하는 것일까? 현실과 이상은 다르기 때문인가? 그것은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길이며, 자신의 부도덕하고 정의롭지 못함을 인지한 인간이 자신을 위로하고 관리하기 위해 떠들어대는 것에 불과한 것인가?
Scene #1
'현우'(강하늘) 曰 “법이라는 것이 뭐여? 당신이 씨 부려 싸는 그 법이라는 것이 진짜로 사람 보호하려고 만들 것이여?”
Scene #2
깡패 친구 曰 "요즘에 변호사 만나고 다닌다면서, 가진 놈들이 자기 이익 보호하려고 만든 게 법이여, 너 감방에 처넣은 새끼, 그 새끼는 법 다루는 새끼 아니었어? 어?"
Scene #3
'창환’(이동희) 曰 "너 지나친 무리한 주장 같은 거 하지 말라고 했지. 정확한 증거가 없으면, 그럼 그건 없는 거야. 그게 법이야. 내가 분명히 경고했지. 세상의 상식과 법의 상식을 헷갈리지 말라고”
‘법’이란 무엇인가? ‘현우’의 말대도 이것은 진짜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인가? 아니면 ‘현우’ 깡패 친구 말 대로 가진 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인가?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동안 나에게 ‘법’은 그냥 ‘법’이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어떤 저항도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법’이 무엇이고 나에게 어떤 영향을 어떻게 미치는지 생각도 고민도 해본 적이 없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고 이것의 선택은 가장 합리적이고 공평하다는 생각이 ‘법’에 대한 나의 개념이었다.
'법’의 발자취를 비춰 봤을 때 그것을 절대 완벽하다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고 운영하는데 현존하는 최선의 방법이 ‘법’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이것은 완벽하지 않음이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들을(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되고 남용되며, 이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미치도록 억울한 사람들이 발생한 다는 것이다.
법이 가진 최대의 약점은 이를 집행하고 구현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과 자본주의 사회 속 인간은 ‘돈’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속에서 증폭되는 법의 그늘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는 자들은 인류가 존재하는 이상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Scene # 4
준영(정우) 曰 “당연히 지킬 분만 고객이죠. 로펌은 고객한테 법을 서비스하는 기업입니다. 기업은 최대한에 이익을 추구해야 되고요”
Scene # 5
준영(정우) 曰 "대표님, 언제부터 의뢰인이 범죄자인지 아닌지 따지셨습니까?"
Scene # 6
착한 형사(박철민) 曰 "요즘 젊은 친구들은 요 넘의 나라를 헬 조선이라고 한다면서, 차라리 지옥이 더 공평해. 거기는 죄지은 만큼 벌 받잖아."
이 사회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는 ‘준영’(정우)의 말처럼 우리는 지금 ‘돈’의 많고 적음에 따른 죄의 유무와 경중이 달라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좀 더 좋은 서비스를 위해서는 그만큼의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갖지 못한 자들은 갖지 못해서 소외되고 더 나아가서는 영화 속 ‘현우’처럼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철저히 이용당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이 모든 가치 위에 ‘돈’이 굴림하고 많은 사람들이 ‘돈’을 최우선인 삶을 살게 (하는 악순환의 고리 보여주는 것 같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의지해야 하는가?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지켜나가야 하는 것은 법이 아닌 우리 인간의 마음(양심)이다. 법은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 지켜야 할 마지막 경계선이며, 법은 인간이 자신과 서로를 믿지 못하여 만들어낸 강제적이고 수동적인 보호장치인 것이다. 강제적이고 수동적인 것은 한계가 존재하며, 우리는 이 한계를 인정하고 보완하려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환경만이 자본주의 속 법의 그늘은 걷어낼 수 있으며, 미칠 것 같은 억울함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 조건과 전제가 없는 믿음, 틀 속에 갇힌 사고와 마음이 아닌 대상을 존재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타자의 고통과 입장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마음의 중요함을 인지하고 사회적으로 이것을 '돈'보다 더 가치 있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기 위함이 아닌 서로에 대한 '공감'과 '이해' 그리고 '존중'의 중요성을 먼저 느끼기 가슴에 심기 위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선의'에 눈을 뜨다.
-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현우’(강하늘)의 변론을 결정했던 ‘준영’(정우), 과정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다.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 인가?)
영화 속 실존인물인 ‘박준영’ 변호사, ‘생계’를 위해 시작한 국선변호를 시작했고, “만족할 수 있는 경제적 기준을 확 낮췄더니 억울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말하는 박준영 변호사는 자신을 공익과 개인적 목적의 결합이라 말하고 있다. 처음의 의도가 어떻든 박준영 변호사는 자신의 삶의 충실함 속에 자신만의 정답을 찾고 그 길을 꿋꿋이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 스스로가 믿고 납득할 수 있는 방향을 가졌기에 흔들리지 않고 타협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열려있다면 자신과 우리를 들여다보고 공감할 수 있다면 시작은 그렇지 않아도 과정 속에서 박준영 변호사처럼 무엇이 옳고 그름을, 무엇이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길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라 생각하다.
"선한 연대의 힘을 믿습니다."
선한 연대를 위해 우리가 버려야 할 것
- 선입견과 편견이 초래한 비극 그리고 그것의 두려움
Scene # 7
어머니 순임 (김해숙)
“워메, 학교를 뭘 배워서 다니는가? 사람들 안심시키려고 댕기는 거지, 나도 너와 같은 사람이라고”
어머니 ‘순임’이 아들 ‘현우’(강하늘)의 교복을 사러 간 장소에서 오간 대화다. 우리가 얼마나 뿌리 깊은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지를 적나라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학교는 뭘 배워서가 아니라 사람들 안심시키려 다니는 것이라는 어미니 ‘순임’의 말, 신선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았다. 학창 시절 학교를 다니지 않는 친구들을 바라보았던 우리들의 눈과 마음을 생각했을 때 어머니 ‘순임’의 말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대부분이 쉽게 드러내지 않은 속마음을 시원하게 뱉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 장면을 지켜보는 이들은 중 누군가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속마음을 들켜버려 민망함과 동시에 현실의 민 낯을 직시해야 하는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도 누군가를 억울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친구 '창환'(이동휘)의 배신
Scene #8
‘창환’(이동희) 曰 “돈 버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잖아. 어? 내가 그 친구 새 인생 살 수 있도록 충분히 보상해 줄게. 물론, 재심청구 안 하는 조건으로. 어느 쪽이 의뢰인을 위한 거냐? 확률 없는 재심이냐? 아니면 확실한 돈이냐?
'준영'(정우) 曰 “너 나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창환’(이동희) 曰 “나한테 그랬잖아. 변호사는 사과하지 않는다고."
Scene #9
'준영"(정우) 曰
"사람답게 살려면 살인 누명을 벗겨줘야 한다고”
'창환’(이동희) 曰
“사람답게 살려면 돈이 필요한 거야. 준영아"
초반의 '준영'(정우)가 나타내는 가치관을 대변하는 '창환'(이동휘), 조목조목 정우의 과거 발언들을 들먹이며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고 반박하는 장면에서 현실과 이상의 대립을, 과거의 정우와 지금의 정우의 대립이 이어진다. 우리는 이 장면들에서 또 한 번의 갈등을 경험한다. 법에 대한 짜증과 분노, 그리고 그것에 기생하는 버러지들, 더 짜증 나는 것은 돈 앞에서 배신하는 정우 친구를 완벽하게 비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과연, '창환'(이동휘)와 같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250억이 넘는 돈과 정의(진실)...... 이 부분에서 영화 '더 킹'의 한 장면이 오버랩된다.
영화 '더 킹'의 조인성 역시 욕망을 위해 자신의 소신과 정의를 내려놓는다. 제자를 성폭행한 빽 있는 선생의 죄를 덮는 대가로 검찰 내 요직으로 발령, 진정한 권력을 선택한다. 합의금이 5백에서 5천으로 바뀐 것에 자신을 위로하고 합리화하며, 자신의 도덕적 양심의 상처와 죄책감을 가슴에 한 켠에 묻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과연 실제로 두 인물과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고민과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경영이 마지막으로 정우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
'필호'(이경영)는 본능적으로 느낀 것 같다. 자신의 안위와 이익보다는 누군가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정의 편에 서는 것이 당연해져 버린 '준영'(정우)를 발견한 것이다.
들여다보고 싶은 인물 ‘준영’(정우)
Scene # 10
‘준영’(정우) 曰
“아 여러분 우리 이쯤 되면 솔직해 집시다. 막말로 비싼 돈 들여가지고 어렵게 공부한 이유가 뭐예요? 돈 많이 벌고 싶어서 아니었나? 저는 그래요.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돈 많이 벌고 싶었어”
‘준영’의 이 대사는 영화 ‘더 킹’의 한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정우성 曰
“우리 제발 정의나 자존심 따위는 버리자. 촌스럽게 왜 그러냐? 무슨 애야? 내가 또 역사 강의해야 돼? 그냥 권력 옆에 있어 자존심 버리고.”
현실과 이상의 갈등에서 일찌감치 정의와 사명감이 아닌 ‘돈’을 선택한 인물들을 통해 이 사회의 현실을 조금은 불편(씁쓸)하게 하지만 그래서 더 가슴에 와 닿게 전달하고 있다. 절대 쉽지 않은 질문, 고민 그리고 숙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겪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죽을 때까지 수없이 겪게 되는 현실과 이상의 대립, 이 갈등 속에서 누군가는 처음부터, 누군가는 죽음을 앞에 둔 순간에서야 현실보다 이상을, 이상보다는 현실을 또는 평생을 왔다 갔다 하며 살아갈 것이다. 이 둘 사이에 어느 지점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자신이 가장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균형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에 맞추어 사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이 균형점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상당히 깊이 들여다보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책, 영화, 드라마 그리고 내 삶 속 수많은 대립점들이 던져 주는 질문들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당신은 ‘돈’과 대립되는 여러 가치 중 무엇을 얼마나 선택하며 살고 있는가? 어떤 선택이 당신을 가장 만족스럽게 하며, 그 선택에 후회는 없는 것인가?'
영화 관련 글이기에 굳이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적어 보자면,
좋은 점
- 위 글을 적어 내려갈 수 있는 생각거리를 던져 준 점
- 현실과 본질을 꽤 뚫는 명대사와 장면
- 배우들의 연기, 말한들 뭘 할까
- 이동휘의 깨알 같은 웃음 포인트
아쉬운 점 (완벽함에 기준을 둔 아쉬움일 뿐)
- 정우의 가치관의 변화의 계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전환이 너무 극적이다. 현실감이 떨어진다. ‘준영’(정우)의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한 장면, 대사, 설정들이 자연스럽게 묻어나기보다는 조금은 투박하고 거칠게 그래서 너무 뻔하게 흘러 간 부분이 아쉽다.
- 권선징악, 선의 승리는 악에 대한 철저한 응징으로 완성된다. 경찰과 검사 그리고 정우 친구에 대한 심판 및 응징 과정이 줄 수 있는 카타르시스가 조금은 부족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