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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경이 May 29. 2023

피지(Fiji)에서

태평양횡단 크루즈

새벽에 잠에서 깨었다. 전날 너무 일찍 잔 것 같다. 발코니에 나가니 날은 흐리고 멀리 섬들이 보인다 피지는 300개가 넘는 섬들로 이루어진 나라다. 여기는 남반구, 그리고 동양이다. 

 배는 피지의 수바 항구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을 먹고 육지로 나갔다.


건장하게 생긴 피지의 원주민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배에서 연결해 주는 관광상품은 값이 비싸고 자유롭지 못해 이번에는 모험 삼아 밖에 나가 자유 여행을 해 보기로 했다. 배가 자정까지 머무를 예정이라서 시간은 넉넉하다.

입구에는 각종 차들이 배에서 내리는 사람을 기다린다.

몇 사람에게 물어본 후 내가 원하는 곳에 데려다줄 택시를 대절했다. 

 몬트리올에서 온 부부와 일인당 40불씩 내기로 하고 합승을 했다.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던 이 나라는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다.

여기는 대통령 궁, 술루를 입은 군인이 지키고 있다.

  3200년 전 아주 먼 아시아에서 배를 잘 만들던 사람들이 조그만 배를 타고 노를 저어 여기까지 왔다. 1800년대 유럽사람들이 더 큰 배를 타고 와서 이 섬을 지배하며 머리를 자르게 하고 이 사람들이 입던 옷도 술루(Sulu)라는 옷으로 바꾸어주었다. 

바닷가에 오래된 호텔도 보고. 


나무조각상이 있는 공원에 갔다. 방금 결혼식을 했다는 무척 행복해 보이는 신혼부부를 만났다. 곧 예쁜 아기가 결혼 선물로 태어날 것 같다.

피지는 아름다운 바다가 있어 전 세계에서 신혼여행 오는 사람도 많고 부룩쉴즈가 나오는 블루 라군, 톰 행크스의 캐스트 어웨이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원주민들이 사는 민속촌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커다란 고동 소리가 난다.

환영한다는 뜻과 안쪽에 손님이 왔다는 걸 알리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 여인이 다가와서 목에 꽃을 걸어 준다. 예쁘기도 하고 향기도 좋았다.


여기는 집집마다 문패를 달아 놓았다.

옛날에 우리도 집마다 문패가 있었는데.. 


걸어서 들어가는데 마을사람들이 모여 앉아 노래를 불러준다. 정말 환영받는 느낌이다.  

아이들은 다 예쁘다. 

'카바'라는 술을 준비해 손님을 환영한다.  카바 세리머니가 시작되었다

술 한잔을 들고 손님에게 다가온다.  


나는 술을 못 마셔 사양했다.

내 앞의 사람이 술을 받기로 했다.   

술을 다 마실 때까지 앉아서 기다린다.   

그리고 그들의 춤이 시작된다. 


그다음에는 손님들과 함께 춤판을 벌렸다.   

나도 합류하고 싶을 만큼 신나는 한판이었다. 


이들은 이렇게 여기서 3000년 전부터 살아왔다.


음식을 준비해 놓았다.

커다란 생선을 바나나 잎에 싸서 땅속에서 익힌 것이라 했다. 

열대 지방의 나뭇잎은 정말 보자기만 하구나.  

폭포가 있다 해서 걸어 내려갔다.  

폭포는 약 10미터 정도 언덕에서 흘러내렸다.  하긴 섬에서는 이 정도도 큰 폭포다. 


그래도 오는 길에  본 열대림이 좋았다.  

잘 보면 커다란 잎 저 안쪽에 이렇게 예쁜 꽃이 숨어있다. 

호숫가에 있는 카페에 장승이 서있다.

혀를 내민 것은 무섭게 보이기 위해서다. 

이 사람은 나도 아는 사람이다.

피지 출신 세계적인 골프 선수, 비제이 싱이다. 


비제이 싱이 골프를 쳤다는 골프장이다.

한 사람이 두 손을 번쩍 들며 환영해 준다.

그런데 거기서 놀랍게도 골프를 치고 있는 한국사람을 만났다. 반가웠다.

세상은 넓고 한국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오후에 시간이 남아 걸어 나가서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어딜 가나 걸어 다녀야 더 보고 더 느낄 수 있다.


지도를 보고 걸어서 피지 국립박물관까지 갔다.   

피지는 1억 5천만 년 전 화산이 폭발해서 만든 330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3500년 전쯤 먼 곳에서 이런 사람들이 배를 타고 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이 나라 사람들은 그 후에도 배를 잘 만들었다.  

파푸아 뉴기니 쪽에서 남동쪽으로 내려와서 

어떤 사람들은 뉴 칼레도니아로,

또 어떤 사람은 통가를 거쳐 사모아로, 조금씩 멀리 퍼져 나갔다. 



박물관에는 3000년 전에 그들이 만들었던 토기와 그릇들, 여러 모양의 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방에 들어가니 이런 사람들도 있다. 

특별하게도 이 방만 냉방시설이 되어있다.

박물관 전체가 좀 후덥지근하던 차에 몸도 식힐 겸 전시된 사진들을 보았는데 이 분들이 왜 피지의 국립박물관 안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한국 사람 같은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인 모양인데 왜 나는 모르지??

덕분에 시원한 방에서 쉬고 나왔다.   


피지에는 

17세기에 화란인들이, 18세기에 제임스 쿡이, 그 후로  유럽인들이 왔다. 19세기에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1870년 미국의 남북전쟁으로 유럽으로 가던 목화가 줄어들자 영국은 일 년에 3파운드씩 주고 3년 계약으로 인도노동자들을 데려왔다. 3년 후에 자비로 고향으로 가라고 했지만 고향까지 갈 뱃삯이 없던 인도 사람들은 다시 3년 계약을 하고 일을 했다.   지금 피지에는 그들의 후손 인도사람이 38퍼센트나 살고 있다.


1871년에는 2000명이 6파운드에 노예로 팔려갔고 1875년 영국인이 가져온 홍역으로 피지 원주민 3분의 1(약 4만 명)이 사망했다.

1970년  독립이 되었지만 그 후 여러 차례 쿠데타가 일어나고 아직도 정세는 불안하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숫자는 원주민이 많지만 경제는 유럽인, 중국인, 인도인들이 거의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은 그런 것 상관하지 않고 밝아 보인다. 

시장에 갔다.

이 아가씨는 생선 팔 생각은 하지 않고 스마트 폰만 들여다본다.

이렇게 큰 생선이 3~5달러라고 한다.

싸지만 사갈 수는 없다.  

수박이 크기에 따라 3불, 4불, 5불.. 

대파도 있고.. 

토마토와 가지도 있다.

배에서 아무리 잘 먹여 주어도 시간이 지나니 한국 음식이 그립다.

여름이면 밥 위에 쪄서 쭉쭉 찢어 무쳐 주시던 엄마의 가지 나물이 생각난다. 

이 아이들은 나를 쫄쫄 쫓아다녔다.

사진을 찍으니 보여 달랜다.

보여 주니 더 찍어 달랜다. 아이들의 표정에는 역사의 슬픔 같은 것은 없다. 


갑자기 장대 비가 쏟아졌다. 

 배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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