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스스로 다스리기 제일 힘든 것은 ‘자기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10년 전 묘한 체험을 한 일이 있습니다. 신문사를 그만 두고 나와 보름도 안 돼 온몸에 힘이 쫙 빠지는 걸 느낀 게 첫 번째 체험입니다. 그 길로 시름시름 우울증을 앓았죠. 그런 저를 살린 건 제 아버지였습니다.
두 번째 체험은 10개월 뒤쯤 아버지와 마주앉은 막걸리상 앞에서였습니다. 가슴 한복판으로 뜨거운 무언가가 훅하고 들어오자 온몸에 힘이 바짝 서는 것이었습니다.
우울증을 앓아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죠. 그런데 한 번 무너진 몸은 원상태로 회복되지 않습니다. 재작년에 이어 작년에 우울증이 3~4개월씩 이어졌습니다.
올해는 다시 깨어난 몸뚱어리를 갖고 봄부터 자전거를 타고, 영양제를 챙겨 먹고, 수시로 산에 올랐죠. 매년 10월에서 11월부터 가라앉기 시작해 이듬해 봄까지 이어지는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 생각해 낸 고육책이었습니다.
우울증이 오면 가장 심각하게 흔들리는 게 마음입니다. 그 다음 심각한 게 급격한 기억력 감퇴입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의 경우는 그렇습니다. 마음과 기억력에 문제가 생기면 누구에게나 치명타겠지만, 글을 쓰는 사람에게 이 두 가지는 대단한 장애를 유발합니다.
표면적으로는 기억력이 더 큰 문제로 보입니다. 기억력이 무너지면 말과 글의 앞뒤 논리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특히 일상 속에서 달변은 눌변이 되고 눌변이 심해지면 단어조차 입 밖으로 뱉어지지 않게 됩니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면 마음의 병이 더 깊어집니다. 주변사람에게 짜증을 내기 일쑤고, 일상사가 엉망이 됩니다.
재작년과 작년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내였습니다. 제 짜증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으니까요. 저는 궁금했습니다. 운동과 영양제를 챙겨먹는 것은 그것대로 하되, 대체 이 병의 근원은 무엇일까.
처음에는 스트레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대체로 불만, 불평, 불안 등 3불(不)을 그때그때 뱉어내는 스타일이라 스트레스가 심한 편은 아닙니다. 일단 뱉고는 그걸 다시 꽁하게 담아두는 스타일이 아니라 저에게 ‘3불을 뱉는다’는 건 일종의 배설과 같은 것입니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트라우마였습니다. 과거 겪었던 우울증에 대한 트라우마. 다시는 오지 않기를 바라는 절대적인 마음.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훅훅 다가오는 우울증. ‘절대’ ‘반드시’ 같은 강조 부사들은 인생살이에서 참 경계하며 사용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세상살이에는 절대도, 반드시도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20대는 강경한 절대와 반드시 -주의자였습니다. 그 습관이 강력한 우울증 트라우마를 만든 것 같습니다. 차라리 ‘또 겪을 수 있지’라고 마음의 끈을 좀 풀어놓았더라면 제 마음이 우울증을 극복하겠다고 강한 반발도, 대항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올해도 어김없이 10월이 오고 곧 11월이 오겠지요. ‘우울증’이란 단어만 떠올려도 뒷목이 쭈볏쭈볏 서늘해집니다. 하나 올해는 ‘또 올 수 있지’라고 마음먹기로 했습니다. 대신 다른 차원의 마음을 다스려 보기로 했습니다. 오늘 글 제목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달았는데, 뭔가 그럴싸해 보입니다.
실은 우울증을 겪고 영 잃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컨디션이 좋을 때, 일을 해나갈 때, 글을 써나갈 때- 이럴 땐 그 병의 흔적들이 제 육신에 인처럼 박혀 단단한 버팀목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울증을 앓을 때 만난 꽃과 나무와 새들은 그저 꽃과 나무와 새가 아니라 영성(靈性)이었고, 그것들이 제 마음에 들어와 앉았다는 생각이 곧잘 듭니다.
컨디션이 좋을 때, 일을 해나갈 때, 글을 써나갈 때- 이럴 땐 확실히 이전과 달리 마음이 너무나도 평화롭습니다. 제가 있는 자리 그 어느 곳이라도 낙원이란 느낌을 받습니다.
이제 제가 할 일은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도 그런 낙원을 감지하는 것입니다. 사람마음은 하루에도 열두 번이 변합니다. 해서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제 마음도 모르는데 타자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는가. 제 마음도 불안하기 짝이 없는 자가 누구에게 일갈하고 가르치려 드는가. 요즘 제 화두는 ‘40대를 멋지게 살자’입니다. 어떻게 하면 멋지게 살까.
쉬이 목소리를 높이고, 컨디션이 안 좋으면 짜증을 내는 지금 상태로는 멋지게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멋반안멋반’의 삶은 그 어떤 멋도 없는 삶이 될 테니까요. 역시 마음부터 다스릴 일입니다.
저는 성과가 나오기 전까지 온전히 제 마음찾기에 몰두해 보겠습니다. 외부의 작은 파장에도 쉬이 동요되는 마흔 심지훈의 리셋을 다짐하며, 기존의 나쁜 습을 바꾸고, 바루고 온전한 제 마음을 찾겠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모두에게 영성이 깃들기를.
*이 글은 부친 기일에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