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좋은 석류

by 심지훈

나는 우리집이 좋다. 이 집을 우리집으로 산 걸 좋아한다. 우리집 아파트 이름은 ‘햇님’이다. 라온이가 태어나고 이듬해 이 집을 샀는데, 이름이 ‘햇님’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우리 라온이 빙그레 웃는 모습과 햇님은 둥글고 환하여 닮았다. 이글거리는 햇님 가로 퍼지는 아우라는 라온이의 아우라와 비슷했다. 라온이는 빛나는 아기였다.


내가 우리집을 사랑하는 이유는 셋이다. 첫째가 주방의 광창(廣窓)이요, 둘째가 서재 옆 메타쉐쿼이아숲이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가 화단에 선 석류나무다. 이 셋은 모르긴 해도 햇님아파트에서 자기 집을 가장 사랑하는 주인의 소이(所以)를 주었다.


나는 지금까지 두 편의 석류 시를 지었다. 둘 모두 9월에 지었는데, 첫째는 2014년 9월 2일에 지었고, 둘째는 2024년 9월 19일에 지었다.


우리 낮에도 뽀뽀하고/ 우리 밤에도 뽀뽀하자/ 우리 저 넘실대는 벽물 타고/ 너는 위에서 나는 아래에서/ 두둥실 두둥실 사뿐사뿐 다가가/ 낮에도 뽀뽀하고 밤에도 뽀뽀하고/ 오손도손 알콩달콩 정겨웁게 살자//<문인송 가는 길-석류> 전문


이 시는 결혼할 때 아내 결혼선물이었다. 한글서예가 혜정 류영희 선생님이 글씨를 써주었다. 이 액자는 침실에 11년째 자리해 있다.


이 시는 고향집 황계서실(黃鷄書室)에서 나왔다. 서실 옆집은 내게 먼 아저씨뻘 되는 용길아재집이다. 용길아재집 붉은대문 담벼락엔 높다랗고 실한 석류나무 2그루가 바투 서 있다. 가을이 되면 붉게 영글어 ‘벽물’을 타는 석류들이 주민들을, 더러는 문인송(文人松‧수령 400년 된 멋진 소나무)을 찾는 관광객을 반긴다.


혜정 선생님이 왜 벽물인가 하고 물었다. 석류 2알이 마주보고 뽀뽀하는 모습과 꾸질꾸질 때가 묻은 담벼락이 담긴 사진을 보여드리며 “보시다시피 시골 담벼락은 세월의 흔적 따라 때가 묻어 물결을 이루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초등교사 출신의 여든줄 혜정 선생님은 소녀처럼 깔깔대며 웃었다.


수줍게 영근 석류 두 알/ 파랗고 하얀 높다란 하늘/ 가로 선 감나뭇잎 은근 응원 속/ 대롱대롱 달랑달랑 술래잡기 중//<석류 두 알> 전문


이 시는 작년 아파트 화단에 열린 석류를 보고 낸 것이다. 이때 사진에 담긴 석류 두 알은 위아래로 두 뼘, 앞뒤로 한뼘쯤 떨어져 마치 술래잡기하듯 매달려 있었다.


올해도 화단에는 석류가 주렁주렁 달렸다. 오랜만에 마주보고 뽀뽀하는 석류가 이번에는 나지막이 달렸다. 라온이 눈높이에서 바람이 불면 대롱대롱 흔들린다. 그러면 맞붙은 석류 2알은 열심히 사랑을 나눈다. 아니, 어쩌면 열심히 수다 중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석류 2알을 보면서 11년 전 지은 석류를 떠올린다. 이제 내게는 석류 2알보다 더 어여쁜 두 아들이 있다. 마주보고 뜨겁게 사랑하던 석류처럼 우리 부부는 힘을 합쳐 석류 2알보다 더 단단한 두 아들을 얻었다.


오늘 아침엔 장마처럼 퍼붓는 비를 맞으며 석류 2알이 씩씩하게 매달려 있다. 이제 입을 맞춘 석류 2알은 사랑이 아니라 두 아들을 상징한다. 아무렴 사랑엔 결실이 있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한 녀석은 우리 라온이 같고/ 한 녀석은 우리 바론이 같구나/ 장대비 맞아도 끄떡없이 끄떡끄떡 까딱까딱 끄떡까딱 까딱끄떡/ 한 놈은 우리집 큰애 같고/ 한 놈은 우리집 막둥이 같구나/ 이 비 멎으면 햇님아파트에 둥근 햇님 쨍하고 솟아나겠지/ 그러면 볼그레 뽈그레 두 뺨 붉어져/ 석류 두 알/ 아니 형 석류 아우 석류/ 가을바람 맞으며 대롱대롱/ 의좋게 사뿐사뿐 웃겠지// <의좋은 석류> 전문


그래, 이 시의 제목은 ‘의좋은 석류’라 달자. 대롱대롱 내 마음에 매달자.

/대전글방 궁고재에서 지훈(芝薰) 지음. 202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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