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리집 거실에 나무를 심었다. ‘독서 나무’ 네 그루다. 79×109cm짜리 빳빳한 전지를 샀다. 거기에 라온이 바론이가 독서 나무를 그렸다. 나무 위로 햇님도 그리고 구름도 그렸다. 아이들 얼굴엔 생기가 흘러넘쳤다. 라온이는 나무마다 이름도 붙여주었다. ‘멋진 바론이꺼’ ‘라온이 귀요미꺼’ ‘예쁜 엄마꺼’ ‘똑똑한 아빠꺼’. 바론이 파스넷(크레용의 일종)으로 나무, 구름, 햇님, 별님에 색칠을 했다. 그걸 거실 벽면에 좀 높게 붙였다. 아내는 좀 낮게 붙여야 한다고 했지만, 아이들이 의자를 가져다가 높은 나무에 붙여야 재미가 있겠다 싶어 좀 높게 붙였다. 나무는 높아야 우러러보는 법이 아니던가. 우러러보는 중에 경건함을 갖는 게 아니던가.
그다음 ‘책잎’으로 가지치기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전날 읽은 책 제목을 ‘라벨지’에 쓰도록 했다. 아직 한글이 덜 익은 바론이는 네임펜을 쥐게 하고 아빠가 도와줬다. 각자의 나무에 첫 번째 ‘책잎’을 붙이도록 했다. ‘책잎’을 붙일 때 ‘독서 나무’를 그릴 때처럼 얼굴에 생기가 가득했다.
라온이 바론이가 자기 전에 책을 읽겠다고 1권씩 골라 왔다. 각자 고른 책을 ‘다 함께 읽었다’는 이유로 책잎 2장을 붙여야 한다고 했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이거야말로 ‘독서 나무 효과’가 아닐까 싶었다. 라온이 바론이 독서 나무엔 벌써 책잎 3장이 나란히 움텄다.
이 일은 지난주 토요일 가족회의 결과의 일환이었다. 며칠 전 아내와 8시간 대화를 통해 아이들 교육을 전면 제로(0)에서 검토하기로 했고, 아이들에게 주말 의사를 물었다. 바론이는 아빠 말을 이내 지겨워했지만, 라온이는 제법 진지했다. 태권도와 피아노를 끊는 문제는 라온이의 의사를 존중해 유지하기로 했다. 미리 준비한 동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0~12세까지 아이들의 뇌 발달 과정을 보여주며 학습 방향을 알려주는 전문가의 짧은 강연이었다. 라온이는 이 영상을 보면서 뇌 구조를 보고, 변연계, 해마, 편도체, 전두엽 같은 고급 어휘를 접하게 됐다.
“라온아, 봐봐. 이 선생님이 그러는데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변연계라는 걸 갖고 태어난대. 변연계에 이 해마가 있고 편도체가 있다는 거야. 해마는 정서와 기억력을 담당하고, 편도체는 고통을 담당한다는 거야. 라온이는 어려서 엄마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았니 안 받았니?”
“많이 받았지.”
“그래. 맞아. 그래서 네가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거야. 그럼, 너 기억력이 좋아, 안 좋아?”
“좋지.”
“그렇지. 넌 한 번 들은 건 잘 안 잊어버리잖아. 그러면 넌 해마가 잘 자랐다는 거야.”
“너 강아지 무서워하지?”
“응.”
“그건 이 뇌 아래쪽 편도체가 주는 신호라는 거라. 해마와 편도체는 0~6세까지 발달하는 거래. 아빠가 보기에 넌 해마도 편도체도 잘 자란 것 같아. 문제는 전두엽인데. 너가 유튜브를 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이 전두엽과 관련이 있어.”
“전두엽?”
“응. (그림을 그려 보이며) 전두엽은 이 뇌의 앞부분이야. 이 그림을 보고 생각해 보자. 자, 여기 엄마, 바론이, 아빠, 라온이 중 누가 전두엽이 가장 클 것 같아?”
“나?”
“아니. 아빠가 보기에 전두엽은 엄마가 가장 클 것 같아. 엄마는 우리 넷 중 머리가 가장 크잖아. 그래서 공부를 잘한 건지도 몰라. 그런 식이면 그다음 누가 전두엽이 클 것 같아?”
“아빠?”
“응. 지금은 아빠 머리가 너네보다 크니까 전두엽이 클 것 같지만, 아빠가 보기에 엄마 다음에 바론이가 전두엽이 클 것 같아. 바론이는 엄마를 닮아 머리가 크잖아. 라온이는 앞뒤 짱구형이라 전두엽은 좀 작지 않을까 싶어. 이건 그냥 뇌 그림을 보고 아빠가 생각해 본 거야. 그렇다고 해서 라온이가 머리가 나쁘다거나 나쁠 거라는 얘기는 아니야.”
“전두엽이 유튜브랑 무슨 상관이 있어?”
“응. 이 선생님 말씀이 전두엽은 12살까지 왕성하게 자라는데 이때까지 전두엽이 잘 자라야 논리적 사고, 과학적 사고가 잘 된대. 쉽게 말해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거야. 열두 살이면 태권도장 박성진 형의 나이잖아.”
“응.”
“이 뇌(그림)를 보면 복잡한 선이 보이지. 이게 뉴런이라고 하는 건데, 너가 어떤 걸 경험하고 어떤 걸 배우고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에 따라 이 뉴런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거야. 이런 뉴런이 우리 뇌에 100억 개나 만들어진대. 이런 거미줄 같은 줄이 100억 개나 우리 뇌에 자란다는 거야. 근데 이때 너가 유튜브를 보면 뉴런이 그만큼 안 자랄 수 있다는 거지. 100억 개가 자라도 너가 어떤 뉴런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어떤 뉴런은 죽고 어떤 뉴런은 더 단단해진 거야. 여기 줄과 줄 사이가 이어지잖아. 이건 하나의 뉴런이 다른 뉴런과 이어지는 건데, 이 지점을 시냅스라고 한대. 이 시냅스가 많아야 건강한 뇌가 된다는 거야. 좀 어렵지?”
“응.”
“이 뇌 그림을 다시 보자. 이 전체가 우리 뇌라는 거고. 이 뇌 아래 부분이 해마와 편도체가 있는 변연계, 그다음 이 앞쪽이 전두엽이라는 거야. 이건 쉽지?”
“응.”
“아빠는 라온이가 6살 때까지 해마와 편도체가 건강하게 잘 자랐듯이 이제 12살이 될 때까지 전두엽이 잘 자라도록 돕고 싶어. 그러려면 아빠 생각엔 유튜브 대신 엄마아빠와 노는 게 좋을 것 같고, 엄마아빠와 함께 다양한 책을 읽고 많은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 12살 이후엔 사춘기라는 게 오기 때문에 그땐 엄마아빠가 함께 하자고 해도 잘 안 될 거야. 그전까지 네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싶은 거야. 지금까지는 엄마랑 연산, 교과수학, 영어, 국어를 의무적으로 했잖아. 이제부터는 엄마아빠랑 읽기 놀이, 박물관 구경하기, 다양한 체험하기, 엄마아빠랑 대화하기 이런 거 중심으로 하는 게 어떨까 싶어. 라온이는 어떤 게 좋을 것 같아?”
“2번.”
“2번? 엄마아빠랑 놀이하기?”
“응.”
“그러면 이제부터 유튜브 보는 것도 금할 거야. 할 수 있겠어?”
“응.”
“그래, 일단 한 번 해보자. 해보고 안 되면 또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아빠가 일단 ‘독서 나무’를 마련할 거야. 아주 큰 나무를 준비할게.”
쿠팡에서 독서 나무를 검색했다. A4 사이즈거나 그것보다 조금 큰 사이즈에 열매를 연상케하는 동그란 번호 스티커를 붙이는 식이었다. 이것 갖고는 아이들이 흥미도 능률도 못 느낄 것 같았다. 얇은 전지를 떠올렸다. 문구점에 갔더니 내가 어릴 땐 없었던 빳빳한 전지가 있었다.
당초 나무는 큰 나무 한 그루를 그리고 가족 수대로 가지를 4개 쳐서 라벨지를 ‘책잎’으로 삼아 독서 나무를 장식하면 되겠다 싶었다. 나무 그림은 아내의 재주를 빌릴 참이었다. 그런데 전지를 거실에 펼치자 아이들이 서로 자기가 꾸미겠다고 달려들었다. 그리 아이들이 나무 네 그루를 그리고 각각의 나무에 이름도 붙였다. 햇님, 별님, 구름으로 장식한 뒤 색칠까지 했다. 그리 우리집 독서 나무가 탄생했다.
나는 생각한다. 나무가 멋지게 가지를 뻗으려면 기본적으로 넓은 공간이 필요하듯, 인간도 멋지게 커가려면 넓은 자율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공간과 자율을 재단하며 멋진 나무, 멋진 인간으로 자라길 기대하는 건 참으로 난망한 일이다. 공간과 자율을 마련해준 다음에라야 나무는 물과 햇빛이, 사람은 수학과 영어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세상 많은 부모, 특히 엄마들은 이 환경을 제멋대로 뒤집어놓고 산다. 세상 엄마들이여, 당장 엄마의 말을 되짚어 보라. 아이가 초등 1학년만 돼도 전에 없던 성기고 날선 당신들 말이 아이의 가슴팍을 후벼판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이를 위한다는 이유로 말의 폭력을 서슴없이 휘두르는 것이다. 그건 은밀히 말해 아동학대 다름 아니다. 그러는 사이 아이 뇌는 문드러지고 아이 얼굴의 생기는 시든 프리지아처럼 쭈글해진다.
내가 ‘독서 나무’를 준비하면서 우리나라 소아신경학의 권위자 김영훈 교수가 쓴 <4~7세 두뇌 습관의 힘>을 읽고 경천동지할 만한 사실을 접했다. “우리 뇌속에는 독서를 인지하는 유전적인 시냅스가 없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부모가 독서를 즐긴다 해도 아이들이 그걸 물려받을 확률은 유전학적으로 제로라는 것이다. 결국 ‘독서 DNA’란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말한다. “독서든 외국어든 탁월한 수준에 도달하려면 최소한의 연습량을 확보해야 한다.” 난 이 대목을 읽고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도 의무적이거나 강제적으로는 안 된다. 놀이로써 독서 주춧돌을 놓아야 한다.’
오늘은 라온이가 받아쓰기 시험을 보는 날이다. 어제 라온이에게 앞으로 받아쓰기를 앞둔 날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했다. 통상 집에서 연습하는 2회를 준수하되 집중하자고 했다. 그동안은 의무적으로 다른 공부까지 하는 바람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100점을 꼭 맞을 필요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건 중요하다고 알려주었다. 라온이도 그게 좋겠다고 했다. 라온이 바론이는 요즘 엄마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서 신명이 절로 나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최고는 단연 엄마아빠다. 유튜브는 엄마아빠가 안 놀아줘서 찾는 고육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