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독서 나무를 심은 지 일주일 째. 우리집 독서 나무는 무럭무럭 가지를 뻗쳐 잘 자라고 있다. 라온이가 한 권을 읽으면 바론이가 한 권을 읽고, 바론이가 한 권을 읽으면 라온이가 한 권을 읽어 가지를 친다. 어느 날은 진지하게, 어느 날은 놀이로써 독서 나무가 풍성해진다.
다른 공부는 접고 책놀이와 대화를 중심으로 하되 받아쓰기가 있는 전날은 받아쓰기에만 집중하기로 했는데, 라온이는 그렇게 해서 지난주 5회차 받아쓰기 시험에서 100점을 받았다. 아빠와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했다. 라온이는 오늘 6회차 받아쓰기를 한다. 어젯밤 2번 연습했다. 첫 번째는 60점, 두 번째는 70점을 받았다. 100점을 못 받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라온이는 ‘몫을’ ‘앉아’ 같은 이중받침을 내리 틀렸다. ‘본 적이’ ‘해야 할’ 같은 띄어쓰기는 헷갈려 틀렸다. 모두 틀릴 만한 걸 틀린 것이다.
우리말의 95%는 소리말이고, 5%는 받침말이다. 일반적으로 저학년은 소리말에 강하고 받침말에 약한 반면, 고학년이 될수록 받침말은 강한데 오히려 쉬운 소리말에 약한 현상을 보인다. 이건 그저 내 생각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연구결과다. 소리말은 발음과 직결되고, 받침말은 쓰임과 직결된다. 쓰임과 직결되는 것 중엔 받침말 외에 중성소리가 있다.
왜 이런가. ‘밖’ ‘칡’에서 ‘ㄲ’ ‘ㄺ’ 따위의 이중받침, ‘왜’ ‘웨’에서 ‘ㅙ’ ‘ㅞ’ 같은 중성소리는 논리의 영역에서 판가름 되고, ‘산새 들새’ 같은 것은 직관의 영역에서 판가름 되기 때문이다.
말인즉슨 저학년은 아직 논리력이 서지 않아 직관에 기반하기 때문에 소리말에 강하고, 고학년은 전두엽의 발달로 논리력이 서기 때문에 받침말과 중성소리에 강하다는 말이다. 한편 고학년이 돼서 소리말 쓰기를 곧잘 틀린다면, 저학년 때 또박또박 읽는 연습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자신의 발음이 분명하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띄어쓰기 역시 저학년은 약할 수밖에 없고, 고학년이 돼야 논리적으로 생각해 띄어쓰기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저학년 아이에게 띄어쓰기를 그때그때 지적하거나 알려주지 말라는 까닭이다.
“라온아, 받아쓰기 100점 받으면 기분 좋지. 근데 기분만 좋은 거야. 네가 100점을 받았다고 이걸 다 안다고 할 수 없고, 80점을 받아도 틀린 2개만 모른다고도 할 수 없어.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틀리든 맞든 자신 있게 쓰는 거야. 그렇게 해서 100점을 받으면 아빠랑 ‘잘했다 하이파이브’를 하면 되고, 기대와 달리 50점밖에 못 받았다, 그래도 아빠랑 ‘잘했다 하이피이브’를 하면 되는 거야. 알겠지?”
“응.”
라온이는 오늘 아침 식사를 끝내고 짬을 내 급수표를 자못 진지하게 들여다봤다. 그 자세만으로 이미 라온이는 100점인 것이다.
어제는 참 신통방통한 일이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한글 공부가 한창인 여섯 살 바론이가 하원하면서 우리집 건너편 아파트 벽면을 보고 “가람”이라고 소리 내어 읽더니 “아빠 맞아?”하고 물었다. “맞다”고 하자 “아파트를 다니면서 이름들을 종이에 써보겠다”고 했다.
집에 오자마자 바론이는 종이와 볼펜을 식탁으로 가져와 ‘가람’과 ‘햇님’을 쓴 후, 맞냐고 되물었다. 이제 됐겠거니 했는데, 바론이는 기어이 아파트를 직접 찾아가 이름을 보고 쓰고 싶다고 했다.
그 별난 아이디어를 듣고, 그 고집을 보면서 라온이 키우면서는 한 번도 상상 못한 일이라 ‘이 더운 날 이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싶었다. 바론이의 상상력은 아빠의 상상력쯤은 가볍게 뛰어넘는 일이 다반사다. 물건은 물건이겠다 싶다.
바론이를 이길 재간을 궁리하기보다 라온이를 설득하는 쪽이 수월키로 태권도장에서 땀범벅으로 돌아온 라온이를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으로 구슬렸다. 그리 클립보드에 흰종이를 끼우고 볼펜을 챙겨 거리로 나섰다. 라온이는 두발킥보드를, 바론이는 세발자전거를 탔다.
두 아들을 앞세우고 아파트를 나서면서 ‘아파트 이름을 써보겠다고 직접 아파트를 방문하겠다는 바론이의 발상’이 아무리 생각해도 범상찮다 싶어 망실히 녀석들 뒷모습만 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느닷없이 웬 꼬마숙녀가 “엄마를 잃어버렸어요”하며 꺼이꺼이 울며 킥보드를 타고 나타나는 게 아닌가.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
“얘야, 울지마. 아저씨가 엄마 찾아 줄게. 엄마 전화번호 알아?”
“아니오. 꺼이꺼이.”
“몇 살이니?”
“여섯 살. 꺼이꺼이.”
“그래? (바론이를 가리키며) 얘도 여섯 살이야. 친구네. 친구랑 함께 엄마를 찾아보자.”
“어느 아파트 살아?”
“쩌으기, 아파트에서 같이 나왔는데. 꺼이꺼이.”
“아파트 이름은 몰라?”
“네. 꺼이꺼이.”
“그만 뚝. 어느 어린이집 다녀?”
“은빛유치원 다녀요.”
“그래? 그럼 은빛유치원에 가면 엄마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선생님한테 물어보면 돼. 우리 다 같이 은빛유치원으로 고고.”
“고맙습니다. 꺼이꺼이.”
꼬마숙녀는 여자아이라 그런지 우리집 똑띠기 바론이보다도 처신이 차분하고 어른스러웠다. 은빛유치원을 향해 가는데 쩌으기에 선 엄마와 오빠를 보고 세상 무너질 듯 꼬마숙녀 외친다.
“어엄~마! 어엄~마! 엉엉엉 꺼이꺼이. 어디 갔었어? 난 엄마 잃어버린 줄 알았잖아. 엉엉엉 꺼이꺼이.”
그리 ‘식겁한’ 「꼬마숙녀의 엄마찾기」는 ‘싱겁게’ 일단락됐다. 꼬마숙녀는 앞동에 살았다. 그리 만난 숙녀의 오빠는 라온이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아이였다. 아침 등굣길에 오며 가며 자주 마주친 아이였다. 엄마는 처음 봤다.
한바탕 난리를 치른 우리는 가람아파트를 지나 국화아파트로 갔다. 국화(아파트)를 올려다보며 ‘국화’를 쓴 뒤, 공원을 가로질러 한마루아파트로 갔다. 한마루(아파트)를 올려다보며 ‘한마루’를 썼다. 기념촬영도 했다. 바론이의 얼굴에선 뭔가 스스로 했다는 자부심이 드러났다.
들은 게 있는 바론이는 “이제 샘머리로 가자”고 했다. 샘머리아파트엔 바론이 어린이집 친구들이 많이 산다.
라온이가 아빠 심정을 대신 말해주었다. “바론아, 여기서 샘머리는 무지 멀어. 자전거 타고는 못가.” “그래? 그래도 샘머리도 가고 싶은데.” “바론아 거긴 차 타고 가야 해.”
맥락 없이 분위기가 전환돼 저들은 경찰이 되고 아빠는 도둑이 되어 경찰도둑놀이가 시작됐다. 그걸 한참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다. 퇴근하는 엄마를 만나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 시간에 라온이가 학교에서 연습한 일기장을 내놓았다. 도서관 갔던 일을 적었는데, 겪은 일을 순서대로, 띄어쓰기, 문장부호 일절 무시하고 나이브하게 적었다. 그걸 보고 아비가 ‘한 수’ 알려주마 싶었다.
“라온아, 이건 오늘 학교에서 쓴 거야?”
“아니, 어제.”
“일기 쓰기 연습을 한 거야? 선생님이 도서관에서 겪은 일을 일기로 써보자고 한 거야?”
“아니. 쓰고 싶은 걸 골라서 쓴 거야.”
“그래. 근데 아빠가 보기에 여기 선생님이 도장을 하나만 찍어줬잖아. 조금 다르게 썼더라면 선생님이 도장을 두 개 찍어줬을 것 같거든. 아빠는 글을 쓰는 사람이잖아. 한번 잘 들어봐봐.”
“응.”
“라온이가 독서장을 쓰든 일기를 쓰든 글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쓰는 거야. 하고 싶은 말 중에도 특별히 엄마나 아빠, 바론이 아니면 선생님이나 친구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을 쓰는 거야. 너 자신한테 꼭 하고 싶은 말도 해당이 돼. 그 ‘하고 싶은 말’은 라온이 나이 때는 기쁜 일, 즐거운 일, 슬픈 일, 화난 일 혹은 부러운 일이 거의 전부일 거야. 기쁜 일, 즐거운 일은 재미있는 일이고. 무슨 말인지 이해했니?”
“응.”
“그럼. 좀 전에 본 엄마 잃은 아이 있잖아. 그 아이에게 우리가 엄마를 찾아주려고 했잖아. 그 일은 특별한 일이잖아. 그 이야기를 일기로 쓰면 어떻게 쓸 것인지 말로 해보자. 아빠가 녹음을 해볼게.”
“녹음?”
“응. 녹음한 걸 다시 들어보면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잖아.”
라온이는 알겠다고 하고선 망설임 없이 육성일기를 시작했다. 도서관에 갔던 일처럼 사실을 나열하는 식이었다. 저학년 글쓰기(=말하기)의 전형이었다. 논리가 좀 맞지 않는 중에 있던 일을 나열하는 방식 말이다.
*라온이의 육성일기
오늘은 바론이와 아파트 이름을 쓰려고 밖에 나갔다. 나는 밖에 안 나가고 싶었지만 바론이가 나가려고 해서 힘들었다. 근데 나는 꽃나무 알레르기가 있어서 더 나가기 싫었다. 근데 어쩔 수 없이 나갔다. 나가서 먼저 가람을 쓰고 그다음에 국화 신동아를 썼다. 그다음에 한마루를 썼다. 그리고 약간 특이한 모양을 가진 의자 위에 올라가서 앉았다. 거기서 경찰과 도둑 잡기 놀이를 아빠와 동생이랑 했다. 정말 재밌었다. 그리고 놀이가 끝나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맨날 ‘엄마는외계인’을 먹었지만 이번에는 그냥 초콜릿을 먹었다. ‘엄마는외계인’은 바닐라맛이 들어가서 조금 덜 달았다. 근데 초콜릿은 초코만 들어가서 너무 달아서 조금 많이 못 먹었다. 그리고 계산할 때 아빠가 싱글레귤러를 시켜야 됐었는데 싱글킹을 시켜버렸다. 그래서 너무 많아서 조금 남겼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엄마를 찾으러 갔다. 우리는 신호등 앞에 서 있고, 엄마는 건너편에 서 있었다. 신호등을 두 개 건너고 왔다. 그리고 동생이 똥이 마렵다고 해가지고 아빠는 뛰어갔다. 그리고 엄마랑 나는 천천히 갔다. 근데 내가 가다가 놀이터에서 짚라인을 봤다. 짚라인이 너무 타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어서. 거기는 너무 나무가 많았다. 그래서 네 번밖에 타지 못했다. 정말 아쉬웠다. 그리고 집에 가서 먼저 씻었다. 씻기 전에 아빠가 변기에 앉아보라고 했다. 오랜만에 똥을 쌌다. 그리고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 새옷은 내복을 입었다. 하트아이스크림 옷이었다. 하트아이스크림에 눈이 달려서 정말 귀여웠다. 그다음에 바론이와 쇼트트랙 놀이를 했다. 정말 재밌었다.
“잘했어. 근데 라온이가 한 건 바론이와 있었던 일을 말한 거잖아. 아빠는 라온이가 엄마 잃은 아이 이야기를 일기로 써보면 좋겠다고 한 거고. 다시 한번 해 볼래. 우선 어떻게 쓸지 생각을 해봐.”
이 대목은 아주 중요하다. 라온이는 아빠의 의견을 무시한 게 아니고 직관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한 것이다. 바론이와 아빠와 하는 일상은 쉽고 자연스럽지만, 생판 모르는 아이의 엄마 찾아 준 일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버거운 것이다.
“준비됐니?”
“아직.”
곰곰 생각하더니 조금 뒤,
“이제 해 볼게.”
*라온이의 두 번째 육성일기
오늘은 아빠와 동생과 아파트 이름 쓰기를 하려고 했다. 내가 태권도장을 다녀와서 아빠가 반겨줬다. 반기고 나서 손을 씻었다. 손을 씻고 준비도 했다. 밖에 나갔다. 나는 킥보드를 타고 바론이는 자전거를 탔다. 바론이 자전거를 꺼내고 우리가 출발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무슨 여동생이 달려와서 엄마를 잃어버렸다고 울었다. 그리고 아빠가 어디 사는지 물었다. 근데 뭔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어디 다니냐고 아빠가 물었다. 은빛유치원이라고 했다. 은빛유치원으로 가서 선생님한테 물어보려고 했다. 근데 은빛유치원으로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엄마가, 걔 오빠가 나왔다. 그래서 생각보다 빨리 찾았다. 빨리 찾아줘서 뿌듯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데로 아파트 이름 쓰러 출발했다.
두 번째 육성일기는 라온이 고민의 결과물이다. 직관에 생각의 물꼬를 터준 것이다. 이른바 ‘넛지(nudge) 글쓰기’다.
어제는 ‘하고 싶은 말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말을 첫 문장에 두면 네 생각이 훨씬 명료해지고, 그런 생각엔 선생님이 도장을 두 개를 줄 것이다’는 말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
첫 문장을 무엇으로(혹은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글의 골이 훨씬 멋지게 패인다는 사실만 알아도 글쓰기의 8할은 터득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작술(作述)의 시작이다. 리드문의 힘이다. 리드문은 생각, 상상, 어울림의 조합이다. 반듯한 논리와, 촘촘한 설명은 리드문이 적실하게 놓이면 직관적으로 따라붙게 돼 있다. 전거가 풍성할수록 직관력은 펄떡인다. 직관력은 저학년 때 왕성한 태생적 힘이다.
“글은 쓰는 게 아니라 써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태생적 힘이 적재적소에 조화를 부리지 않으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는 걸 함의한다. 저마다의 글엔 보이지는 않으나 느낄 수는 있는 기(氣)란 게 녹아 있다. 이 사실이야말로 글쓰기의 알파요 오메가다.
리드문을 적실하게 놓는 게 글쓰기의 시작이라면, 정기(精氣)를 감각적으로 운용하는 건 글쓰기의 점정(點睛)이다.
아이들의 글쓰기는 아직 시작까지도 요원한 바, 어떤 글이라도 썼다면 추어주는 게 으뜸이다.
“정말 대단해.” “정말 잘했어.” “역시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