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 라온이가 일주일에 한 번 보는 받아쓰기 4회차 시험에서 80점을 받아왔다. 1학년 땐 곧잘 100점을 받았는데 2학년 들어선 1, 2회차 빼곤 지난주 90점, 이번주 80점을 받았다.
속상해하는 라온이에게 속상해하지 말 까닭을 일러주고 내기게임을 했다.
1학년 1학기 받아쓰기 시험 중 100점 맞은 걸 즉석에서 선택해 재시험을 봐 70점 이상 받으면 맛있 걸 사먹는 게임.
라온이는 이 게임에 제 좋아하는 치즈돈가스와 계란덮밥을 걸었다.
라온이는 내기를 위해 잠시 받아쓰기 급수표를 보았다. 자못 진지했다.
결과는 90점. 기대이상. 라온이의 가벼운 승리.
라온이가 틀리는 건 어른들도 곧잘 틀리는 것들이다.
1.
두 단어 같은데 한 단어인 것ㅡ날갯짓, 모래밭으로
2.
발음대로 써야 바른표기인 것ㅡ자라더니
3.
발음과 다르게 써야 바른 표기인 것ㅡ맺었구나. 있을까?
4.
문장부호 확인ㅡ다.(마침표) 까?(물음표)
※문장부호가 안 들어갈 것 같지만 들어가는 것ㅡ
기다려도 안 열려.
아침 식사 때 이걸 정리해 줬는데, 라온이가 '있을까?'를 '있쓸까?'로 잘못 썼다. 연습시험 5번까지 합치면 내리 6번을 잘못 쓴 것이다.
또 '덩굴손'을 '덩쿨손'으로 잘못 썼다.
그러나 나는 라온이의 현재 상식을 인정한다. 마땅하다고 보는 것이다.
80점 라온이는 80점이지만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있쓸까' '덩쿨손' 둘 모두 9세 라온이로선 '있을까'와 '덩굴손'에 비해 상식에 더 가까운 것이다.
라온이가 틀린 것은 비상식적이어서 틀린 게 아니라 상식적이어서 틀린 것이다.
법칙 전에 상식이 먼저 와닿는 건 불문가지다.(※이런 관점과 잣대는 어린 학동에게만 가능하다는 것도 불문가지다.)
이 점을 나는 간과하지 않는다. 그저 흐뭇하게 본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비상식도 상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폭을 넓힌다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그런 심폭(心幅)이 넓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아비인 나는 라온이의 상식을 지지한다. 동시에 라온이의 심폭을 응원한다.
'있을까'를 언제까지 몇 번이나 더 '있쓸까'로 쓸까. 나는 100점보다 그것이 기대되는 바다.
'있쓸까'가 아니라 '있을까'를 스스로 인지하고 쓰기 시작할 때, 라온이는 상식의 세계에서 비상식으로 세계로, 아이의 세계에서 어른의 세계로 심폭을 조금 넓혀 들어온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