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에 난 아이

by 심지훈

엊그제 산모가 아이를 낳은 뒤 하룻밤 사이 식물인간이 되고 그 가족들이 병원을 상대로 7년간 의료소송을 벌인 끝에 패소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산모와 그 가족은 이제 모든 소송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자신들을 위해 쓴 비용은 둘째치고 병원 측이 제시한 비용은 엄청날 것이다. 게다가 법원은 소송을 건 산모는 물론 갓난아이(이젠 6세)도 원고인 바, 병원에 소송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원 판결문은 드라이(dry)할 것이다.


이건 결과론적 이야기고, 그 과정은 참담하여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다. 산모의 남편과 부모는 전사적으로 간병을 위해 달라붙었다. 남편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막노동부터 아르바이트로 호구책을 마련해야 했다. 아마도 직장을 다니면서는 간병과 소송을 동시에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장인은 택시운전과 경비로 나섰고, 장모는 주방 일을 하거나 전단을 돌려 간병비를 보탰다. 그리 매월 300~400만원이 간병비로만 나갔다. 7년이 흐르면서 모아놓은 돈은 바닥났고 대출로 겨우 버티는 상황이다. 기사문 역시 드라이했다.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는 말, 인생은 하룻밤 사이에도 뒤집어질 수도 있다는 말, 지은 죄는 1 당한 죄는 9라는 말, 이런 말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병원에선 아내가 이상하다는 남편의 말에도 “물을 많이 마시고 운동을 좀 해라(간호사)”는 말과 “곧 나아질 것(의사)”이라는 말만 했을 뿐이다.


내가 만약 그 남편이었다면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을 것인가, 생각하면 이런 상황에선 정말이지 어쩌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다 일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오늘은 우리 막둥이 바론이가 태어난 날이다. 바론이는 늦더위가 물러간다는 기분 좋은 처서(處暑) 아침에 태어났다. 7시 23분, 3.27kg. 제 형보다 1시간 33분 늦게, 좀더 건강하게 태어났다.


바론이는 영민하게 태어났다. 또래 남자아이들은 물론 여자아이들보다도 학습능력이나 생활능력이 달리지 않는다. 주관이 분명하며 욕심이 많다. 요즘은 그 욕심 때문에 아빠한테 곧잘 혼이 난다. 그 욕심을 주체하지 못하면 살아가는데 큰 애로가 될 것이라고 아빠는 판단한다.


다 지난 일이라 그렇지, 바론이가 태어나던 해는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시름을 앓던 때였다.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쏟아낸 ‘관세 폭탄’을 분석한 <관세 전쟁>이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를 분석한 <거대한 가속>을 보니 여전히 우리 삶은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있다 싶다. 인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졌다.


미국은 하루 1,000명씩 죽어나갔다. 인구수가 전 세계 인구의 5%를 차지하는 미국에서 전 세계 코로나 감염자와 사망자의 25%가 발생했다. 지난(2020년 기준) 10년 동안 미국에서 창출된 일자리는 2,000만 개였는데 10주 만에 4,000만 개가 사라졌다. 200만 명이 넘는 Z세대가 다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실시간 통계 사이트인 ‘월드오미터(World O Meter)’는 코로나19 팬데믹 사망자가 약 72만 명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전체 인구는 약 3억 3천만 명으로, 이는 미국인 500명 가운데 1명이 코로나와 관련해 목숨을 잃은 것을 뜻한다.(2021.10.2.일자 뉴스 인용)


앞선 2개 전쟁과 비교해 보면 코로나19 팬데믹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알 수 있다.


미국은 3년 8개월 동안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40만 7,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19년간 전투를 치르면서 2,312명의 병사를 잃었다. 이 분쟁은 전 세계로 비회되어 수십만 명의 민간인 사망자를 냈다.


트럼프가 재집권 후 기다렸다는 듯이 전 세계를 향해 행한 ‘관세 융단폭격’은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닌가도 싶다. 트럼프가 말하는 “불공정 무역 시정”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미국과 미국인 보호를 위한 대통령의 용단인 것이다. 관세 전쟁은 한마디로 ‘미국의, 미국을 위한, 미국에 의한 전쟁’이다. 불가피한 전쟁인 것이다.


우리 바론이는 그 전쟁통 속에서 태어난 아이다. 식물인간이 된 그 엄마는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은 후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다 조치가 늦어져 끔찍한 상황으로 이어졌다. 내 아내는 마스크를 낀 채 늦더위와 씨름하며 산고의 고통을 온전히 받아냈다.


라온이 날 땐 마취의사가 “체질적으로 무통증주사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2번 시도하다 말아 온몸으로 산고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지만, 같은 병원에서 바론이 날 때 다른 마취의사는 “그런 체질은 없다”고 점잖게 말하며 무통증주사를 단번에 놓았다.


그제야 나는 라온이 낳을 때 멸치대가리처럼 생긴 마취의사가 나를 기만했다는 걸 알게 됐다. 자기 실력이 없음을 산모와 보호자인 내게 전가했다는 걸 3년 만에 안 것이다. 마취를 시도했으니 돈은 청구했을 것이고, 내가 무지했던 탓에 마취의사는 아무 일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병원은 그리 기만전술이 잘 먹히는 곳이고, 야만적인 곳이다.


또 10달 동안 아내 상태를 확인한 담당의사가 출산 때 당연히 아이를 받을 줄 알았는데 직접 개입하지 않는 사실도, 처음에는 당혹스러움과 함께 큰 배신감을 주었다. 담당의사는 당연히 자기가 아이를 받을 것처럼 시종 말했기 때문이다. 기만, 야만의 전선 그곳이 바로 산부인과였다.


산부인과에서 산모와 아이는 의사들의 볼모다. 멸치대가리처럼 생긴 마취의사가 그 새벽에 무통주사를 두 번 실패하자, 분만실을 나서며 뱉은 말을 듣고 나는 정말이지 이성을 잃을 뻔했었다. 마치 재수 없는 환자를 만났다는 투였다. 뒤따라가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았다. 세 번째 시도가 무용할 것이란 판단을 내린 후 젊은 당직의사에게 요모조모를 따져 물은 뒤 고통스러워하는 아내에게 동의를 구했다. 당직의사도 마취는 그만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아내와 나는 멸치대가리처럼 생긴 마취의사에 속아 만약 바론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아내가) 체질적으로 마취가 안 되는 사람’인 줄로만 알고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래도 라온이와 바론이가 무사하지 않느냐는 말과 잘 자라고 있지 않느냐는 말은 너무나도 무책임한 말이다. 하늘이 보살펴 아이들이 건강한 건 감사한 일이지만, 의사들이 한 짓거리는 모두 유무형의 대가를 치러야 할 일임에도 피해간 것이다. 의사가 사기꾼과 다를 바 없다는 확증을 나는 갖고 있다. 해서 나는 병원을 싫어하고, 의사란 인간 자체를 혐오한다. AI로 대체될 1순위가 바로 의사들이다.


사람이 살면서 가급적 멀리하고,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 “지은 죄는 1, 당한 죄는 9”가 성립되는 곳이 이 지구상에 딱 3곳이 있다. 경찰서, 검찰청, 병원이다. 이 속으로 들어가 엮이면 삶이 괴로워진다. 괴롭기만 할까 평온했던 삶이 하루아침에 뒤집어진다.


아무튼 바론이는 기분 좋은 처서에 태어났다. 어느새 노란태권도복을 입고 흰띠를 맨다. 기합소리가 그중 크단다. 지난주엔 어린집에서 다례(茶禮)를 시작했다. 차 우리는 폼이 아주 그럴싸하다. 어린이집에선 모범생, 집에선 장난꾸러기다. 아빠한테 따박따박 말대답을 하고, 형을 툭하면 이겨먹으려 든다. 욕심이 많아 뭐든 많이, 또 자주 가지려 든다. 뜻대로 안 되면 앙앙 울부짖는다. 건강해도 너무 건강하다. 잘 때가 제일 사랑스럽다.


바지런둥이 형 라온이는 아침부터 귀염둥이 깜짝 생일파티 준비에 여념이 없다.


아빠는 오늘도 저 하늘을 보며 감사기도를 올린다. 라온이가 준비 끝났다며 “아빠 이리로 와” 한다. [글밥]도 끝났다.(2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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