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 신념 이념의 헛됨에 대하여

by 심지훈

축적의 힘과 함께 나는 요즘 관념, 신념, 이념 따위의 념(念)의 헛됨을 숙고한다. 관념, 신념, 이념을 갖는다는 것은 “무지(無智)의 소산”이란 깨달음이 묘연히 일어난 것이다.

관념, 신념, 이념은 각기 조금 다른 의미인데, 내가 무지의 소산으로서 하려는 말속엔 이 세 가지와 그 이상의 념(念)이 모두 들어있다.

-어떤 일에 대한 견해나 생각 혹은 추상적이고 공상적인 생각을 이르는 관념,
-굳게 믿는 마음의 신념,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생각인 이념(달리 사상)

이것들은 모두 개인이 어떤 생각을 강하게 가짐을 뜻한다. 관념, 신념, 이념을 뚜렷하게 가진 이가 시류를 타면 “지조 있다” “소신 있다” “의리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지조, 소신, 의리는 넓게는 그 시대를, 좁게는 주변 환경을 배경으로 한다. 각자가 가지는 관념, 신념, 이념은 결국 어울림 속에서 의도해서 만들어지고, 시나브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시대가 흐르고, 환경이 바뀌면 어울림도 바뀌기 때문에 이전의 관념, 신념, 이념은 역사로 남거나 아지랑이처럼 잠시 피었다가 사라지는 일장춘몽에 불과하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지만 그건 허울 좋은 말일 뿐 대개 역사는 과거의 죽은 삶뭉치에 지나지 않는다. 죽은 삶덩이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다.

일시적 현상은 지나고 보면 그게 그렇게 고수하고 집착했을 일인가 하고 후회로 수렴된다. 아니면 그런 일이 있긴 했던가 하고 능청스러움의 능청으로 남는다.

(내가 보기에 한국인 특유의 정서로 보이지만) 우리는 대개 나이가 들면 신념, 사상을 가지는 걸 은근 당연시하며 자랑스러워까지 한다. 지혜로운 삶을 지향하는 철학을 가졌다 착각한다.

개인의 신념, 사상은 살아온 짬밥(연륜과 경륜)을 벼리로 한다.

예컨대 보수를 지지하든, 진보를 지지하는 식이다. 기독교 신자가 되든, 천주교 신자가 되든, 통일교 신자가 되든, 불교 신자가 되는 식이다.

혹은 이삿날과 생일엔 꼭 면을 먹어야 하는 것도 신념과 사상의 발로다. 또 혹은 상갓집에 가서 조문하기 전 꼭 화장실을 들르는 것과 조문 직후엔 깨끗이 몸을 씻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뿐이랴. 아이들 영어공부는 다섯 살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도,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학원을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도, 심지어 학원은 불필요하다는 것도 모두 개개인의 관념, 신념, 이념의 소산이다.

(옳은 바가 아니라) 자기가 옳다가 믿는 바를 겉으로 소신껏 드러내면 해방전야 때처럼 –주의자가 된다. 주의자는 nationalist(민족주의자), democrat(민주주의자), socialist(사회주의자), anarchist(무정부주의자)만 주의자가 아니다. 생활신념이 강해도 능히 –ist가 된다.

그런데 이런 주의와 주의자가 과연 유용한가. 작금의 한국사회를 보면 주의와 주의자가 나라를 망치는 주범 같다. 양아치 집단도 보이기 힘든 행태를 정치 집단이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나 시정잡배보다 못하다. 주의와 주의자의 폐단을 우리는 지금 목도 중이다. 이래서 구한말 조선이 망했구나, 싶은 심정을 갖는 것이다.

나라만 그런가. 크고 작은 조직과 가정도 엉뚱하고 유별나고 시원찮은 주의와 주의자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

한국엔 지금 4~6세대가 공존한다는 분석이 있다. 과거 1세대는 30년을 기준 삼았다. <예기(禮記)>를 보면 30년을 ‘일세(一世)’라고 했다. 조상의 ‘한마디’란 뜻이다. 평균수명이 짧아 이때쯤이면 가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평균수명이 늘어나 평균 3세대가 공존한다. 그런데 4세대는 그렇다 쳐도 5~6세대가 함께 산다는 건 무슨 뜻인가. 문명과 기술의 발달로 아비투스가 빠르게 쪼개진 걸 말한다. 공존한다고 해서 같거나 비슷한 습관과 습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소설가 김훈은 여적 몽당연필을 갖고 원고지에 글을 쓴다. 상당수는 컴퓨터 한글문서로 글을 쓴다. 10년 전엔 패드 문서작업이 대세였다. 요즘은 패드도 사용하지 않는다. 뭘 갖고 글을 쓰는지, 글을 쓰긴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런 격차를 세대로는 규정할 수 없다.

대우그룹을 이끌었던 고 김우중 씨 말대로 ‘세상은 참 넓고 할 일은 많다.’ 그리고 ‘함께 할 기계도 참 많다.’ 나만 해도 부모님과 내 아비투스는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지금은 환경적으로 조부모, 부모, 자식, 손자 간에 정서적 교집합이 별로 없다. 각기 따로국밥이다.

아래로 내려가면 갈수록 자유 민주주의의 실상은 아주 버라이어티하다. 고 이어령 같은 선생은 통섭과 융합, 비빔밥 문화의 극치라고 추어올리겠지만, 너무 많은 주의와 주의자가 내 눈엔 그저 혼란으로만 보인다. 무지의 극치로 보인다.

사회가 급변하고 혼란하고 다양할수록 “돌다리도 두들겨 보라”는 속담을 곱씹어야 한다. 신념, 이념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 뒷면엔 아집(我執)과 아상(我相)이 자리해 있다. 주의와 주의자는 야누스의 얼굴이다.

나이가 들수록 신념, 이념을 허물어야 할 까닭이다. 구태, 꼰대가 되지 말자. 뇌 리셋이 필요하다. 리셋은 신념, 이념을 갖는 것보다 몇 곱절은 힘이 든다. 리셋은 곧 개벽이다.

생(生)과 지(知)의 축적은 건축과 달리 잘못 축적하면 다시 쌓기는커녕 허무는 것 자체를 상상하기 힘들다.

궁리컨대 주의자는 과거에도 틀렸고 현재도 틀린다. 회색분자(灰色分子)가 맞고 옳다. 인간은 언제나 회색지대, 회색시대에 살아야 한다. 중용(中庸)의 도는 삶에서 중하디중한데, 회색에 살아야 실천하기 요용하다.
/대전글방 궁고재에서 지훈(芝薰) 지음. 2025.9.24.

keyword
작가의 이전글축적의 중함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