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온이와 자전거

by 심지훈

올가을엔 자전거를 많이 탔다. 일주일에 3~4일은 10~20km씩 탔다. 그 덕분에 허벅지가 딴딴해졌다. 운동을 위해 탄 것은 아니고, 당근마켓으로 책을 사러 자전거로 다녔다. 고질적인 손목터널증후군은 아침 라온이를 배웅하면서 공원 철봉 매달리기로 완화했다. 덕분에 위도 편하고, 아래도 편한 채 잘 지내고 있다.


나는 결혼해 대전에 살면서 자전거로 대전 지리를 속속 익혔다. 처음에는 아내보다 대전을 잘 몰랐지만 지금은 아내도 모르는 대전을 나는 알고 있다. 도심은 자전거로 가나 차로 가나 같은 시간이 걸리고, 체증이 일면 자전거가 좀 더 빠르다. 게다가 자전거는 차(車)이면서 차가 아니라 정해진 교통신호도 융통성 있게 조절할 수 있다.


내가 대전에서 처음 탄 자전거는 7만원 주고 산 재활용자전거였다. 대전정부청사 마당에서 판매행사가 열렸고 나는 그중 하나를 사왔다. 그걸 3년 타다가 비닐도 안 뜯은 새 자전거를 당근마켓에서 14만원인가 주고 샀다. 그걸 8년째 타고 있다. 남들은 고가의 자전거가 좋다지만, 나는 14만원짜리 내 자전거에 만족한다. 7만원짜리 재생자전거에 비하면 BMW급이기 때문이고, 그 자전거로도 계족산을 오르내르기에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좋은 자전거를 우리 라온이가 태어난 이듬해부터 애호했다. 그전까지 내 자전거 이력은 초등학생 때가 전부였다. 중학교 때부터 타지 않던 자전거를 마흔줄에 이르러 다시 곁에 두었다. 아이가 태어나니 지구가 아프다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기후위기가 엄청나다는 소식도 들렸다. 게다가 내 업무 포지션은 재택(在宅)이었고, 겨울이면 차 건전지 방전이 월례행사처럼 잦았다. 해서 차를 팔고 자전거를 들였다. 그리고 이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차를 팔고 자전거를 산 선택은 대전의 모습을 다각도로 볼 수 있는 전기가 됐고, 착한 가격에 숱한 책을 서재로 들일 수 있는 나이스한 계기도 됐다. 지구를 아끼고 기후위기에 일조하는 건 누가 알아주든 말든 내겐 작은 보람이자 기쁨이다.


8년 탄 자전거는 이제 뒷바퀴가 닳고 닳아 위태로워 보인다. 브레이크 패드는 브레이를 잡을 때마다 끽끽 요란하게 소리가 나 직접 교체했다. 브레이크 패드를 교체하다가 자전거에 호기심이 동해 변속장치 이것저것을 만지다 먹통을 만들어 본격적인 자전거 연구에 들었다. 다시 정상으로 돌리는데 수일이 걸렸지만, 장력을 조절하고 앞뒤바퀴 변속장치 정도는 손쉽게 고칠 수 있게 됐다. 그리 라온이 24인치 자전거도 뚝딱 손을 봐줬다.


올가을 라이딩이 유독 기억에 남는 건 아홉 라온이와 갑천 라이딩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라온아, 어때? 여긴 전혀 다른 세상이지?” “응!” “아빠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너는 모를 거다. 짜식, 이제 진짜 응아야.”


라온이는 헉헉대며 왕복 10km 생애 첫 라이딩을 무사히 마쳤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한밭수목원 포토존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뒤편엔 영문간판 ‘Daejeon is U’가 라온이를 듬직하게 받치고 있다. 그 너머엔 아빠의 추억이 담긴 93대전엑스포의 상징 한빛탑이 부자를 가만히 보고 있고.


나는 라온이에게 두 바퀴 안장 위 가을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대전 대동맥 갑천을 달리고, 부러 시내를 관통하는 초밥집을 향해 달렸다. 수시로 아파트 공원에 나가 함께 놀았다. 하루하루의 변화가 가장 드라마틱한 계절이 가을임을 안장 위에서 감상하자는 심산이었다.


라온이는 그 뿌듯함을 안고 매주 화요일을 도서관 가는 날로 정했다. 아빠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도서관을 간다. 하교 땐 아빠가 부러 라온이 자전거를 타고 가서 인계한다. 그러면 또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다.


이것들은 내가 11년 전 자전거를 곁에 두지 않았다면 모두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자전거는 내게 귀한 것들을 참 많이도 주었다. 새봄이 오면 뒷바퀴부터 바꾸어겠다.

/심보통 2025.11.26.


*라온이는 보조바퀴 달린 네 발(18인치)을 타다 곧장 24인치에 올라 30초 만에 두 발 타기에 성공했다. 보통 부모들은 아이 안전을 생각해 20, 22인치를 사준다. 자전거 애호가인 나는 24인치를 타도 무방하다는 걸 안다. 그리고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금방 자란다는 것도 안다.


라온이는 이웃 형이 타는 작은 자전거(20인치)를 보고 무척 뿌듯해했고 하늘을 날 듯 기뻐했다. “신기하다”를 연발했다. 4학년 이웃 아이도 2학년 라온이를 가끔 신기하게 바라본다. 내 유년을 돌이켜봐도 아빠가 탈법한 큰 두 발을 성공한 것은 유별난 성장 같아 도드라진 추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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