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답에 거실에 병풍을 쳤다. 이 병풍으로 말할 것 같으면 50년 묵은 자수병풍이다. 골동이라 해도 좋고 엔틱 가구라 해도 좋다. 안목에 따라 민속유산이랄 수도 있다. 자수 뒷면에 이 작품의 이력이 세로로 정갈하게 쓰여 있다. ‘자수병주 안경좌 一九七四年七月.’
1974년 7월에 안경좌라는 여인이 만든 자수병주인 것이다. 자수(刺繡)는 옷감 헝겊 등에 색실로 그림 글자 무늬 따위를 수놓는 걸 말한다. 병주(倂奏)는 주로 국악에서 음색이 비슷한 2개의 악기로 편성되는 연주 형태를 뜻하는데, 이 경우 6폭짜리(220×160) 병풍에 비슷한 꽃나무수를 놓았다는 뜻이겠다.
이 병풍을 소장한 건 2주전 주말 저녁답이었다. 당근마켓에 ‘나눔’으로 나온 걸 내가 바로 가져왔다. 집사람은 난색을 표했다. “얼마나 보기 좋은데. 낮에 혼자서 구경하다가 자기 퇴근할 무렵에는 접어서 안 보이는 곳에 잘 둘게.” “그러면 좋아.” 그렇게 50년 된 자수병풍은 내 소장품이 됐다. 며칠 거실에서 펼쳐 보기도 하고 식탁 뒤에 둘러쳐 감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병풍이란 것이 특성상 펼쳐놓고 지내야 여러모로 편리한 것이어서 금세 성가셨다. 게다가 아파트란 공간은 접었을 때 높이 160cm에 폭 40cm짜리 병풍을 간수할 곳이 마땅치 않다. 45평 확장형인 우리 집도 병풍 들일 공간이 마뜩찮긴 마찬가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우리 라온이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라온이 책상을 들이기 위해 2주전 주말에는 라온이 방 2층 침대를 큰방으로 옮기고 큰방 작은 침대를 라온이 방으로 옮겼다. 이어 지난 주말에는 라온이 방 책장과 거실 책장을 정리했다. 팔 건 팔고 나눌 건 시원하게 나눴다. 토요일 아침 먹고 시작한 일은 일요일 오후까지 이어졌다. 이첨저첨 정리가 끝날 즈음 거실 바닥에 깐 4단짜리 소음방지용 매트 하나를 가로에서 세로로 놓고 라온이 쓰던 낮은 책상을 옮겨다 맨바닥에 놓았다. 소파와 책상이 마침맞게 잘 맞았다. ‘정리의 여왕’ 아내의 손길이 닿고 보니 진작 이렇게 놓고 쓸 걸 싶었다. 나도 아내도 아이들도 모두 만족한 신학기 배치였다.
아침나절 식탁에 앉아 책을 보다 문득 나무 바닥과 소파 쪽으로 눈길이 갔다. ‘저 상태면 소파를 앞으로 약간 빼고 벽과 소파 사이에 병풍을 질러도 되겠는데.’ 어차피 병풍 감상은 전면 감상이 아니라 적당히 하단이 가려진 채의 상단 감상이 그중 좋다. 병풍이 ‘가리개’의 다른 이름인 것만 봐도 적나라하게 보는 물건이 아니라 적당히 보는 물건이렸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병풍을 가져다 펼쳤다. 보기에 참 좋았다. 오른쪽부터 매화-목련-나팔꽃-동백-국화-단풍이 고풍스레 자태를 드러냈다. 매화는 대나무와 조화를 이뤘고 목련은 학과 어우러졌다. 나팔꽃은 줄기와 잎 자체로 완성됐다. 동백에는 자그마한 자색나비가, 국화에는 노랑나비가, 단풍에는 참새가 날아와 앉았다.
나는 그 여섯 꽃과 나무와 곤충과 새를 등지고 앉아 차를 마시고 술도 마셨다. 너무나도 즐거운 나머지 아내에게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며 민원(?)을 넣었다. “이대로 3월까지만 지내면 안 될까?” 아내는 “좋다”고 답해 주었다. 물론 사족이 따랐다. “2월에 접어도 좋다”고도, “3월을 넘기면 안 된다”고도 언질 주었다. “알겠노라”고 했다. 나는 그리 50년 전 안경좌 할머니와 다담(茶談)을 나누고 주담(酒談)을 나눴다.
이 병풍 뒷면 가운데 4폭엔 ‘국문학의 국보’ 무애 양주동 박사님의 ‘어머니 마음’이 정갈하게 쓰여 있다. 안경좌 할머니가 직접 쓴 것인데 할머니 호는 ‘호곡’이다. 그 시절 호까지 있는 것으로 봐서 한글서예가거나 뼈대 있는 집안의 규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보고 있으면 온화한 기운이 느껴지는 ‘어머니 마음’ 면이 더 마음에 든다. 이 면은 라온이 바론이 인성교육용으로 사용하려 한다.
나는 세상 자식 양육의 모든 공은 세상 어머니들에게 공히 돌아가야 마땅하다고 보는 쪽이다. 아버지는 그저 존재할 뿐. 어제도 거실에서 피자를 시켜먹으며 라온이에게 말했다. “라온이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야?” 눈치 빠른 라온이가 말했다. “당연히 엄마지!” “그렇지! 세상 모든 남자는 겉으로는 자기 부인을 사랑한다지만 속으로는 자기 엄마를 제일 사랑한단다. 이번 설에 경주 가서 외할아버지한테 여쭤보렴. 외할아버지도 아빠와 같은 답을 할 거다. 너도 그래야 한다. 나중에 장가가서도 엄마한테 잘해라.”
오늘은 달뜬 마음에 한 글 더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