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우(畏友)의 위스키 선물

by 심지훈

대전서 공직생활을 하던 아내와 연애할 때 우리 커플의 오작교 역학을 해준 이가 중고교 동창 박위현이었다. 위현이는 우리 라온이와 동갑인 딸 수아를 두고 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동양생명에 입사해 보험업을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사교성이 좋고 리더십이 좋았던 위현이는 동창생 여럿을 고객으로 두었다. 내가 영남일보 재직시절 대구로 와 내 보험도 설계해줬다. 내가 3년전 신문사를 그만두고 가계빚을 청산하고자 개인연금 적금 보험 등을 일거에 정리할 때도 위현이가 설계해 준 종합보험만큼은 손을 대지 않았다. 친구의 의리를 쉽게 져버려서 되겠나 싶어서였다. 내가 사는 둔산동 위쪽 도안동에 살면서 한 달에 한 번 우리집으로 와 밥도 먹고 차를 마신지는 비교적 근년의 일이다. 보험 처리할 일이 있으면 위현에게 늘 부탁했고 바쁜 중에 매번 처리를 해주니 식사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울리던 친구 대부분이 대전으로 진학했다. 나만 홀로 대구로 내려갔다. 대학 1학년 땐 대전에서 더러 놀았다. 그때 위현이는 술을 하지 않았다. 소주 1잔만 마셔도 얼굴이 불거졌다. 술은 체질에 맞지 않다고 들은 기억이 있다. 나는 그리 위현이는 비주사파인 줄로만 알았다. 대전서 10년을 살면서도 나는 위현이에게 술을 권한 일이 없다.

그 위현이가 어제 내게 느닷없이 위스키를 한 병 사주겠다고 했다. 월평동 신선태(동태의 일종) 맛집에서 점심을 하고 부근 이마트 트레이더스 1층 스타벅스로 차 한잔하러 가면서였다. 술도 못하는 친구가 술을 사준다니 신통해서 쳐다봤다. 코로나 팬데믹 때 위스키를 시작했단다. 아마도 코로나로 영업에 직격탄을 맞아 마음고생이 심했기 때문이 아닐까 내심 짐작했다. 창고형 할인마트 이마트 트레이더스에는 십수 종의 위스키가 진열돼 있고, 위현이는 족보 꿰듯 위스키를 일별하며 간단한 설명을 이어갔다. 싱글 몰트, 버번 오크, 셰리 오크 같은 용어부터 위스키 브랜드를 줄줄이 읊었다. 그러더니 ‘발베니 더블우드 12년’을 낙점해 이걸 마셔보라고 했다. 위스키는 잔에 30% 정도만 따라 입술을 살짝 적시며 향을 즐기면 좋다고 했다. 병을 따 콜크(Cork)로 공기가 들어가면 더 맛있다고 했다. 위스키를 온더록(On the rocks)으로 마시는 건 다금바리를 팔팔한 활어로 먹지 않고 죽은 선어로 먹는 것과 같은 거라 했다.

나는 양주에는 문외한이라 집에 와 발베니 더블우드 12년산을 찻장에 진열에 놓곤, 내 비서 AI 양에게 물었다. 순식간에 답변을 내놨다. 참 좋은 세상.

“이 제품은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인 더 발베니 더블우드 12년산입니다.

두 가지 오크통(전통적인 버번 오크와 셰리 오크)에서 숙성하는 ‘캐스크 피니시’ 기법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습니다.

부드러운 바닐라 풍미와 셰리, 꿀 향이 특징이며, 위스키 입문자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알코올 도수는 40%이며, 용량은 700ml 기준 가격대는 약 9만 원에서 17만 원 사이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향은 과일, 셰리, 벌꿀, 바닐라 노트가 있으며, 맛에서는 견과류, 계피, 셰리, 스파이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발베니의 라벨에는 두 개의 오크통이 그려져 있다. 위현이는 버번 오크와 셰리 오크에 각각 12년간 숙성시킨 뒤 맛을 고르게 하려고 둘을 섞은 것이라 했다. 또 코로나 땐 이걸 사려고 오프런까지 생겼고, 그땐 13만원까지 치솟았다고 했다. 블렌디드와 싱글 몰트의 차이도 알려줬다. 발렌타인 30년산이 대표적인 블렌디드인데, 위스키 애호가들이 그중 좋아하는 맛을 내기 위해 숙련된 ‘빌리 워커(커피의 바리스타를 뜻하는데, 위스키를 개발한 위스키계의 아버지 빌리 워커가 곧 위스키 전문가를 통칭하는 용어로 굳어진듯)’가 여러 증류주를 섞은 것이고, 싱글 몰트는 한 증류소에서 100% 맥아 보리만을 사용해 만든 위스키라고 했다. 그런데 이 발베니는 특이하게도 캐스크 피니시 기법으로 제조한 거라 했다. 한 블로그를 보니 “발베니는 버번 오크와 셰리 오크 두 가지 통에서 숙성돼서 그런지 단맛과 묵직한 풍미가 균형 있게 조화롭습니다”고 시음기를 남겼다.

맥아와 보리가 다르다는 것도, 온더락의 어원도 처음 알았다. 역시나 1등 비서 AI 양의 금세 답을 주었다.

“맥아와 보리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맥아는 보리의 싹을 틔운 후 건조된 것으로, 주로 맥주 제조에 사용됩니다. 맥아는 보리의 전분을 당으로 전환시키는 효소를 가지고 있어 알코올을 생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보리는 맥아 제조에 사용되지만, 보리 자체는 맥주 제조에 필수적이지 않습니다. 보리는 다양한 요리에도 사용되며, 영양소를 제공합니다.”

“온더락은 위스키를 얼음 위에 따라 마시는 방법을 의미합니다. 이 용어는 과거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차가운 돌 위에 위스키를 부어 마셨던 방법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즉 ROCK은 ‘바위’를 뜻하며, 여름철에 뜨거워진 위스키를 식히기 위해 사용된 것입니다.”

‘문화박물지’ <이규태 코너>(전 22권) 색인에서 ‘양주’와 ‘위스키’를 뒤졌다. 어떤 문화적 맥락이 있나 궁금했다. 이 책은 40년 전 우리네 문화 토양을 전방위로 다룬 것인데, 색인을 보면 해당 문화의 당시 강쇠(强衰)를 쉬이 파악할 수 있다. 내가 소장한 15권 중 양주, 위스키 조는 4째권뿐이었다. 그러나 무척 흥미로웠다.

“위스키나 소주 같은 독한 술은 떠돌며 사는 동적(動的)인 이동 변혁사회에 즐겨 마시고, 와인이나 막걸리 같은 순한 술은 한 곳에 박혀 사는 정적(靜的)인 정착‧안정사회에서 즐겨 마신다고 한다. 빅토리아 왕조의 영국사람들이 해적들이나 마시는 독한 럼주를 선호했던 것은 그때가 바로 왕성한 해양식민 시대였기 때문이요, 루이 14세 왕조의 프랑스사람들이 순한 와인을 선호했던 것은 안정된 농경생활을 배경으로 예술이 꽃피기 시작한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서부개척 시대에 선호했던 미국사람들의 위스키와 서부시대가 끝난 후에 선호했던 위스키의 주정도수(酒精度數)를 비교해본바 15~20도나 낮아졌다는 연구도 있다.
따라서 어떤 나라에서 어떤 시기에 어떤 술을 즐겨 마시느냐로 그 시기가 이동‧변혁‧불안의 동적 시기인가, 정착‧보수‧안정의 정적 시기인가를 가름하는 문명의 척도로 삼기도 한다.”(1986.2.14. 위 책 ‘막걸리 文明論’ 중)

이 이론을 바탕하면 비주류파 위현이가 코로나 팬데믹 국면에 주사파에 든 것이나 발베니를 사겠다고 오픈런이 펼쳐진 것 등은 코로나 시기가 극치의 변혁과 불안의 동적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주사파 중에도 막걸리파인데 보수와 안정의 정적 시기에 있는 게 맞지 싶어 용하다 싶다.

내친김에 양주 판매량 추이도 AI 양에게 물었다.

“양주 판매량 추이에 따르면, 2023년에는 양주 판매량이 2022년 대비 16.1% 증가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양주 소비가 증가하고 있는 증거로, 특히 20~30대를 중심으로 자신에게 맞는 술을 찾기 위해 다양한 주종의 술을 먹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하이볼의 주재료인 양주 판매량도 2022년 대비 2023년에는 16.1% 증가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AI 양은 아직 문화적 소양은 갖추지 못한 듯싶다. 비서는 문화적 소양이 필수인데.
/심보통 202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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