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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의 착각

by 심지훈

어제 점심때의 일이다. 아내가 퇴근이 좀 늦는다고 했다. 수요일 라온이 학교생활 설명회 참석을 위해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차원인 모양이었다. 라온이 태권도장을 보내고 바론이를 데려오기로 했다. 날씨가 좋아 오랜만에 세발자전거를 가지고 바론이 하원을 도왔다. 돌아오는 길에 이전에 살던 아파트단지에 들어서자 가방을 멘 채 자전거를 타고 다가오던 남자아이가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초등 2~3학년쯤으로 보이는 아이의 인사에 내가 아는 아이인가 하고 한참을 쳐다봤다. 그 아이도 나를 바라보며 지나갔다. 다섯 살 바론이가 말했다. “저 형아 인사를 크게 잘하네.” “바론이도 인사를 잘해서 선생님들한테 칭찬받고 친구들 앞에서 인사하는 걸 보여줬지? 저 형아가 인사를 크게 하니까 보기 좋아 안 좋아?” “좋아.” “맞아. 인사는 저 형아처럼 바론이처럼 크게크게 하는 거야.” “응. 나도 안다고.”


오후 6시, 라온이가 태권도장에서 돌아올 시간. 마침 바론이가 응가가 마렵다고 했다. 내심 잘 됐다 싶었다. 어제부터 태권도장을 걸어서 혼자 가겠다고 선언하고 실제 그리한 라온이에게 “태권도장에서 돌아오면 바로 씻자”고 하자 유쾌하게 “알겠어!”하고 답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 바론이가 먼저 샤워하고 라온이가 이어 샤워했다. 아내가 퇴근한 건 오후 6시 30분쯤이었다. 저녁으로 삼겹살을 먹기로 했다. 아내는 아빠가 구워달라 했다. 자기는 먼저 씻겠다고 했다. 씻고 된장찌개를 끓이겠다고 했다. 이때만 해도 집안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산통이 깨진 것은 밤 9시쯤이었다. 라온이가 엄마가 정해놓은 ‘하루 숙제’를 한다고 제 방에 들어갔다. 라온이 옆에는 엄마가 과외선생마냥 앉았다. 이날 따라 엄마가 좀 밍기적거린다 싶었다. 아빠는 저녁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 전에 바론이가 인천 사촌누나들이 보고 싶다고 해 영상통화를 할 때도 라온이만 숙제하다 나와보고 엄마는 라온이 방에서 카톡을 하는 건지, 동영상을 보는 건지, 아니면 라온이 준비물을 챙기는 건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간간이 애들 대화에 참견하는 육성만 들려올 뿐이었다. 형수 보기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가 라온이를 짜증투로 불러들였다. 숙제를 마저 하라는 게 이유였다. 시곗바늘은 밤 9시를 향하고 있었다. 숙제한답시고 방에 들어앉으면 1시간 30분~2시간을 잡아먹으면서 저녁 먹는 내내 그리고 그 이후에도 밍기적대며 유튜브를 보도록 했다. 천상 설거지를 맡아야 했다. ‘이렇게 해서 바론이를 언제 재우누.’ 끓이겠다는 된장찌개도 헛말이었다.


낮에 바론이 데리러 어린이집을 갔더니 오후 4시인데 방금 일어나 비몽사몽인 듯 얼굴은 퉁퉁 부어 뚱하게 아빠를 쳐다봤다. “바론이 자다 깼니? 얼굴은 왜 이리 부었대?” 선생님이 말했다. “네. 아버님. 바론이 자다가 방금 일어났어요. 오늘은 바론이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도 힘들어해서 다시 재웠어요.” 토요일 일요일 형 일정에 따라 움직인 게 제 딴에는 힘이 들었나 싶어 짠했다. “바론아, 오늘은 일찍 자자.” “응.”


그 일을 낮에 아내에게 카톡으로 먼저 일러주고 저녁 먹으면서도 이야기 해주었는데 ‘대단한 과외선생’ 아내는 무심했다. 국어 연산 사고력 도형 영어 5개 문제집을 풀게 하는 데 혈안이 된 것이다. ‘과외하는 엄마’와 ‘설거지하는 아빠’ 사이에서 바론이는 방황했다. “아빠, 같이 놀자.” “엄마, 같이 놀자.” 바론이는 30분간 아빠를 찾았다가 엄마를 찾았다. ‘무슨 대단한 공부를 한다고. 막둥이부터 챙겨야 할 것 아니야. 그럴 거면 좀 서두르던지. 오늘은 애들이 6시 30분 전에 샤워까지 마치지 않았나. 시간을 얼마나 벌었는데, 벌어줬는데. 애들이 사촌누나들과 통화할 때는 형수와 조카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면 좀 좋아. 혼자서 방에서 뭘 하기에. 그러면서 사사건건 참견은. 어이구 인간아, 인간귀신아.’


설거지를 마칠 즈음 나는 기어이 폭발했다. 이제부터는 아내를 잡을 일은 없다. 대화 되는 라온이와 말귀가 너무 잘 나 있는 바론이와 직접 이야기하면 된다. “바론이는 뭐하고 싶어?” “그림 그리기.” “넌 저기 엄마한테 가. 넌 엄마가 필요한 나이야.” “알겠어.” “심라온, 넌 이리와. 아빠 옆에 앉아봐.” “응.” “라온아, 너 낮에 태권도장 가면서 아빠랑 뭐라고 약속했니.” “…” “유튜브 30분 봤으니 도장 다녀오면 바로 씻고 유튜브는 안 보기로 했지?” “응.” “그런데 너 도장 다녀와서는 뭐라고 했어? 30분만 더 보고 숙제를 다 하겠다고 했지?” “응.” “그런데 왜 그렇게 시간을 질질 끌어. 놀 때는 놀고 할 때는 해. 그리고 너가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해. 벌써부터 그런 공부 안 해도 돼. 너 지금 학교에서 점심 먹을 때 젓가락질 돼?” “아니.” “젓가락질도 안 되는 녀석이 무슨 국어고 연산이고 영어야. 그건 차차 하면 돼. 너 오늘 아침에 13층 할아버지한테 인사 잘한다고 칭찬받았지?” “응.” “기분 좋아 안 좋아?” “좋아.” “학교에서 친구들이 왜 혼나. 선생님 말 안 듣고 마음대로 뒤돌아본다고 혼나고, 친구 얼굴 때린다고 혼나지?” “응.” “라온이는 선생님한테 왜 칭찬받았어? 눈 감으라고 할 때 눈 일찍 감으니까 칭찬받았지.” “응. 점심 먹고 줄서 있을 때 선생님이 눈감으라고 해서 눈감으니까 잘했다고 칭찬받았어.” “그래, 그런 거야. 지금 너가 해야 할 일은 선생님 말씀 잘 듣기, 아침에 8시 30분까지 등교하기, 점심시간 20분 안에 밥먹기, 젓가락질 잘하기, 책상정리 잘하기, 똥오줌 잘 가리기. 이게 네가 해야 할 기본이자 전부야. 너 주말에 과학수업을 두 개나 받지. 그거 왜 받니?” “엄마가 하라고 해서.” “뭐? 엄마가 하라고 해서?” “응.” “그럼 국어 연산 영어는 왜 해? 그것도 엄마가 하라고 해서?” “어떤 건 하기 싫어.” “뭐가 싫어?” “받아쓰기.” “그럼 승마는?” “엄마가 하라고 해서.(일요일에 가보니 승마는 초등 3~4학년은 돼야 할 만한 것이었다.)” 졸도할 답변이 이어졌다. “라온아, 하기 싫은 일은 하기 싫다고 말해. 그래야 엄마도 알아. 지금 가서 엄마랑 이야기해.” “바론이는 이제 아빠랑 놀자. 이리와.” 라온이와 엄마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대화를 나눴다.(*)

*라온이의 본심이 무엇인지는 유보하는 게 좋겠다. 다시 심중을 헤아려보는 게 좋겠다는 의미다. 아이의 말뿐 아니라 인간의 말은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하기 마련이다.


세상 엄마들은 참 어리버리하다. 어리버리는 ‘엄마 욕심’에 사안을 또렷하고 명료하게 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참 쓸데없는 일에 목숨을 건다. 지혜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엄마 목표’에 천착한 나머지 조급함의 우를 범한다. 세상 엄마들은 자기는 명문대 근처도 못 가봤으면서 제 자식은 천재로 태어난 양 대한다. 진짜 명문대 나온 엄마들은 애를 잡고 이것저것 시키려들지 않는다. 왜? 공부를 잘하기란 무척 힘들고, 공부머리는 타고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명문대 근처도 못 가본 엄마들도 이 사실을 뻔히 알지만 어리버리해서 매번 까먹는다. 그리고 어쭙잖은 ‘엄마의 정보력’을 절대시한다. 맘카페 정보, 부녀자들 정보를 가지면 가질수록 그 정보에 갇힌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이란 걸 도통 할 줄 모른다. 이른바 ‘헤일로(Halo Effect**)’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저 자식이 공부를 잘했으면 하고 욕심이나 낼 줄 안다. 게다가 반듯하기까지 바란다.

*사견을 깨고 정법을 드러내는 일

**마음에 드는 요인이 하나 있으면 다른 요인을 평가할 때 크게 반영하는 것. 반대의 경우도 해당.


초등학교 입학식 때 만난 같은 아파트 1층 사는 엄마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교육전문가’인 양 굴었다. 초보 엄마아빠 잘 들으시라는 듯 미주알고주알 학원정보를 배설하듯 토해냈다. 짙은 향수내를 풍기며 기계적 정보를 속사포처럼 쏴대는 그 엄마가 내심 한심했다. 고등학생, 중학생 두 아이를 이미 키워봤고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 그 엄마에게 ‘근거 없는 자부심’을 준 것 같았다. 요행히 아내도 그 엄마와는 거리를 둬야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 엄마와 아이는 일주일 내내 노상 지각이다. 첫째의 교육 실패 이유가 능히 짐작됐다. 둘째도, 셋째도 그 미래가 뻔해 보였다.


세상 엄마들이 이야기하는 ‘교육(敎育)’에는 맹점이 있다. 보편적인 교육을 이야기하는 듯싶지만 실상 백이면 백 ‘상위 1% 아이’를 상정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상위 1%는 타고난 공부머리, 부모의 재력, 하고자 하는 의지 등 갖은 요인들이 딱 맞아떨어진 ‘공부 잘하는 아이’를 가리킨다. 흡사 산봉우리만 말하면서 산 전체를 말하는 양 떠벌리는 것이다. 쉽게 말해 의대를 목표로 하는 아이들에 해당하는 얘기를 일반화함으로써 생기는 인지부조화다. 이건 아무나 될 수도, 되려고 해도 안 된다. 엄마의 엉뚱한 욕심 때문에 아이만 엇나간다. 부모의 역할은 인내심을 갖고 충분히 살펴 아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도록 돕는 것이다. 자기 인생도 시원찮게 가꾸는 사람들이 자기 자식 인생을 잘 가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건 그야말로 무지한 데서 생겨난 오만이다. ‘자식 인생을 가꾼다’는 말 자체가 지극한 모순이다. 황당무계한 말이다. 자식 인생은 부모가 가꾸는 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가꾸는 것이다.


아내는 한 10일 라온이 하교를 돕더니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밖에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남자애들은 축구를 해야 잘 어울린다”는 둥 “한밭초 애들은 유독 축구를 많이 한다”는 둥 ‘축구신(神)’에 접신돼 버렸다. 내가 라온이 하교 시간에 가보니 순 거짓말이다. 전교생 중 일부, 그것도 남학생 일부가 축구를 한다. 그것도 30분 뒤면 반수는 학원으로 사라진다. 그건 어느 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엄마들은 참 어리버리하다. 운동장에서 볼 수 없는 절대 다수의 아이들은 축구 말고 다른 놀이나 운동을 즐기고 있을 것이 뻔한데도 엄마들의 시야는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이 전부다. 기가 막힌 침소봉대(針小棒大)다. 게다가 방과후수업이 시작된 입학 2주차부터는 축구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태권도장 1개만 다녀도 일주일에 겨우 1번 정도 축구를 할 수 있다.


나는 라온이 여섯 살 때도 요란스럽게 ‘축구교실을 보내야 하는 게 아니냐’던 아내 모습이 오버랩돼 말해주었다. “자기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잘하는 아이들 얼굴을 한번 찬찬히 살펴본 적 있나? 대체로 야무지게 생겼어. 차돌처럼 단단하게 생겼다고. 어떤 애들은 벌써부터 얼굴에 독기가 서려 있고. 자기는 우리 라온이 얼굴에서 그런 차가움이 나왔으면 좋겠어? 어느 쪽으로 힘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애 관상이 바껴. 교제와 심신수련의 문제라면 태권도로도 충분해.”


아이들은 배움에 있어 두 가지 경향을 보인다. 하나는 부모로부터 배우는 아이다. 우리 라온이의 경우에 해당한다. 라온이는 엄마아빠 말을 잘 듣고 잘 따른다. 둘은 선생님에게 배우는 아이다. 우리 바론이의 경우다. 바론이는 엄마아빠 말보다 선생님 말을 더 잘 따른다. 라온이는 인사하는 법을 아빠에게 배웠지만 바론이는 선생님한테 배웠다.


어젯밤 내처 말했다. “라온아, 아빠는 일찍 일어나지? 라온이가 일어나면 아빠는 서재에 있잖아. 그런데 서재 앞에 화장실을 가면서 아빠를 본체만체하면 되겠니? 내일부터 아빠한테 와서 ‘아빠, 잘 잤어?’하고 인사를 하는 거야?” “응.” 라온이는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서재를 찾아 아빠에게 “아빠, 잘 잤어?”라고 반갑게 인사했다. 아빠도 “응. 라온이도 잘 잤어?”하고 인사했다. “라온아, 이리 와봐. 매일 아침 이렇게 인사하고 아빠하고 세게 안는 거야.” “응.”


라온이는 어제 태권도장 혼자가기에 이어 오늘 아침엔 혼자 등교하기를 선언했다. “아빠가 뒤따라 가볼게.” “아니야. 혼자 갈게.” 아빠는 몰래 따라갔다. 신호등 대기를 잘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후다닥 뛰어갔다. 곧 공원으로 접어들자 13층 할아버지는 3학년 누나(손녀)를 배웅하고 언제나처럼 손체조 중이었다. 라온이는 가던 길을 멈추고 할아버지에게 두 손을 공손하게 배꼽손하고 “할아버지 안녕하세요”하고 크게 인사를 건넸다. 할아버지는 손을 들어 반갑게 인사했다. 역시 우리 심라온!


라온이가 후문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말씀하신다. “남자애라서 빨라요. 벌써 혼자 가겠다고 하던가요?” “네.” “씩씩하네요.” “감사합니다.”


세상 엄마들이 금과옥조처럼 받들어야 할 넉 자가 있다. 지족상락(知足常樂)! ‘지금은 6.25 때가 아니다.’ 평소 내가 즐겨 쓰는 말이다. 지금은 땟거리를 찾아 헤매는 시대가 아니다. 너무나도 풍족한 시절을 저마다 타고났다. 이런 때에 남보다 하나 더 못 가져서 난리블루스라면 그것만큼 멍청한 게 없다. 왜 그리 황금에 욕심을 내는가. 왜 내 자식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공부를 잘해야 하는가. 아이들 공부머리는 엄마를 닮는다고 한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아이 공부머리는 유전적으로 제 부모를, 제 조부모를 닮게 돼 있다. 그런데 세상살이가 어디 공부머리만 갖고 되던가. 세상을 살아보면 공부머리보다 일머리가, 일머리보다 마음머리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정말 모른다는 건가? 이 머리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더 중요한 게 있다. 건강한 신체, 반듯한 정신이다. 이 둘만 건실하면 뭘 해먹고 살아도 산다. 나는 세상 엄마들이 애들 상대로 멍청한 짓거리 좀 작작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관상 수상 족상 중 으뜸은 없다고 했다. 으뜸은 다름 아닌 심상(心相)이라는 게 누대의 지엄한 교훈이다. 인성의 뿌리가 제대로 내리지 않은 채 재능이라는 몸통만 그럴듯하면 그건 동량지재(棟梁之材)될 재목이 아니라 어느 조직 어느 가족 어느 나라의 파국의 주범이 된다.


아내는 라온이 말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밤새 뒤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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