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서울대 문용린 교수의 <지력혁명>을 잠시 읽었다. 부제가 ‘평범한 사람도 비범한 성취를 가능케 하는’이다.
첫 페이지 첫 번째 서평에 “재능의 실현 가능성은 인간의 노력과 수련으로 결정된다. 그러므로 재능있는 사람도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재능도 꽃피우게 되고 제 살길도 열리게 된다(한준상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목이 눈길을 잡는다.
참 좋은 말이다. 그러나 우리네 현실이 어디 그런가. 어떤 일을 실현하려고 이상한 재능을 연마하고 발전시키는 사람들은 이 나라에 너무 흔하다. 그리 이상한 재능을 꽃피워 제 살길을 열어가는 것이다. 교육자의 교조적 언설이 뒤틀려 사회에 투영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게 이 나라의 민낯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공히 사기공화국이다. 사기를 치고도 떵떵거리며 잘사는 나라다. 사기를 쳐야만 부자가 되는 나라다. 죄를 지어도 처벌이 솜방망이라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고착화된 나라다. 그러니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의식 없는 자들은 갖은 정보, 갖은 망(網)을 이용해 더 크게 더 많이 먹고도 부끄러운지 모르고 고개를 빳빳이 쳐든다.
이런 실상은 다름 아닌 검사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김웅의 책 <검사내전> 글머리에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다.
김웅에 따르면 이 나라에는 한 해 24만 건의 사기 사건이 발생한다.(2018년 기준) 2분마다 1건씩 사기가 벌어진다. 사기로 인한 피해액이 매년 3조원이 넘는다.
사기꾼은 어지간해서 죗값을 받지 않는다. 사기꾼이 구속될 확률은 재벌들이 실형을 사는 것만큼이나 희박하다. 설사 구속되더라도 피해자와 외상합의(합의금 일부만 주고 나머지는 나중에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를 하거나 할인합의를 하면 구속적부심(피의자의 구속수사가 합당한지를 법원이 판단하는 절차, 구속된 피의자는 검사가 기소 제기를 하기 전까지 누구도 청구할 수 없다)이나 보석으로 쉽게 풀려난다.
재판 중에서도 피해자 일부에게 합의금을 주는 조건으로 위증을 교사하곤 한다. 그래서 무죄로 빠져나오기도 쉽다.
수사나 재판을 받을 때 중병이 드는 것은 재벌이나 정치인에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원래 이 기술은 사기꾼들이 만든 것이었다. 자신이 병들지 않으면 가족 중에 누구 하나라도 죽을병에 걸린다. 이 병이 신기한 것은 영어의 몸에서 풀려나면 저절로 낫는다는 점이다.<검사내전, 19쪽>
계속해서 김웅에 따르면 이런 천혜의 환경 조성으로 우리나라 사기범의 재범률은 77%에 이른다. 처벌을 받은 사기꾼 10중 8명은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는 뜻이다. 사기범의 55%는 5개 이상의 전과를 가지고 있다.<위 책, 20쪽>
김웅의 결론은 명료하다. “재범률이 높은 것은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고, 사기가 넘쳐나는 이유는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자 레다 코스미디스와 존 투비의 ‘배신자 인지 능력’을 들어 김웅의 진단이 이어진다.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사기꾼에게 응당한 처벌이 가해진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지닌 배신자 인지 능력(*)은 법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바로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불신이다.”<위 책, 21쪽>
*사회적 교환 상황에서 규범을 어기고 남을 속이는 배신자를 탐지하는 인지적 알고리즘이 존재한다는 이론.
이 진단에 대한 결론은 비극적이다.
“사법 제도가 극적으로 개선되지는 않을 테니, 이 배신자 인지 능력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매정한 말이지만, 각자가 알아서 사기를 피해야 한다.”
그러면서 김웅이 덧붙이는 한마디는 충격적이다. “옛말에 ‘도둑놈은 한 죄, 잃은 놈은 열 죄’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기꾼은 이 나라 법으로는 단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나라 현실에선 당한 놈이 등신이니 알아서 잘 피하란 말이다. 이게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 하는 조언(?)이다.
우리는 ‘윤건희(윤석열과 김건희) 케이스’에서 과연 무엇을 바룰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재명의 8.15 특별사면 건에서 과연 무엇을 바룰 수 있을 것인가.
늘 그랬던 것처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뉴스에 욕하거나 통쾌해하는 선에서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 아닌가.
윤건희 케이스에서 김건희의 숱한 의혹들이 실제로 밝혀진다 해도 국정농단과는 무관한 저잣거리 잡범들의 사기행각에 불과할 것이다. 돈 기술을 부려 많이 먹고 크게 먹는 건 결국 돈으로 대부분 막거나 죄를 확 줄일 수 있다.(유전무죄!) 그게 이 나라 현실이다.
조국과 윤미향, 은수미 등의 사례처럼 김건희도 솜방망이 처벌로 옥에서 풀려나 무슨 일이냐는 듯 가래침을 뱉고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마치 세상이 자기 발아래 있다는 듯 행세하며, 무려 전직 영부인 대우를 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김건희로선 손해볼 게 없는 장사를 이미 다 한 셈이다.
정권이 바뀌면 윤석열은 특사로 방면될 것이다.
이것이 인간 사회 한계일 수도 있다. 아니, 대한민국의 한계일 수도 있다. 나랏일 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사기든, 횡령이든, 공금유용이든, 감금폭행이든 범죄경력 몇 개는 가져야 한다. 그들에게는 그게 훈장이다.
도덕과는 무관하게 패를 잘 지으면 승승장구한다. 설령 중간에 자빠지고 고꾸라져도 그건 재수가 없는 것이기로, 비싼 변호사 붙여서 보석이나 가석방으로 풀려나면 된다. 아니면 대통령 사면복권 찬스를 쓰면 된다. 그리 거리를 유유히 활보한다.
이재명 편이 되면 유죄가 무죄가 되고, 복권까지 이루어져 다시 국회의원이 되고, 차기 주자로 대선 레이스도 펼칠 수 있다. 운이 아주 좋으면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윤석열 편이 돼도 사정은 비슷하다. 누가 흑이고 누가 백인지를 가릴 처지가 못 된다. 가리려는 자가 나쁜 자다.
윤석열의 아버지 고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 나라 통계학을 창시한 분으로, 학자로서뿐 아니라 인품도 훌륭하다고 정평 났는데, 아들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서는 하늘이 무너질 듯한 얼굴을 하고 앉았었다. 이 사태를 어쩌면 자기 아들을 너무도 잘 아는 아비는 예견했던 모양이다. 하늘에서 그 아비는 지금쯤 피눈물을 흘릴 것이다. 다리몽둥이 분질러 인간 못 만든 게 천추의 한(恨)일 것이다. 어머니는 취임식에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미는 진작에 아들과 연을 끊었다는 게 복수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독한 한마디 더 보태고 싶지만 참겠다.
<지력혁명> 다른 서평에는 이리 써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길을 학부모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강점을 더욱 강하게 신장시키고 약점을 보강하여 진정한 전인교육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강점이 사기, 횡령, 공금횡령, 폭행강금의 능력이라면 어쩔 텐가. 그리 범법을 일삼고 법을 희롱하며 법망을 요리조리 빠져나가 성공가도를 달리면 어쩔 텐가.
사기꾼 하나 감옥에 쳐넣는데 온 나라가 떠들썩해서는 내실이 없고 전망이 없을 것이다. 욕하거나 통쾌해하거나 그정도로 또 한바람 지나가는 듯싶다. 그러는 중에 또 한 번 기분 나쁜 바람이 몰아친다. 여(與)에서 부는 바람이나 야(野)에서 부는 바람이나 불쾌하긴 마찬가지다.
그 바람 먹으며 사는 게 소시민들인데, 원래 공해의 주범은 척결대상 아닌가. 그 척결대상이 자기가 낸 바람은 1등급 청정바람이라고 태연자약하게 말한다.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인데, 이미 오염된 소시민들도 많다. 편을 갈라 척결대상을 대신해 싸우고 다른 한편에선 그러려니 한다. 도덕적 해이가 이루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나라다.
아침부터 만4세 바론이가 엄마 앞에서 한글 실력을 선보인다. 또랑또랑하게 한글을 읽어보인다. 글자를 읽을 수 있다는 건, 기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아빠 마음은 다르다.
‘바론아, 글자 너무 빨리 배우지 마라. 배우려거든 천천히 제대로 배워라. 글자 그거 아주 무서운 거다. 글자가 뇌리에 박히면 인간은 말장난을 시작한다. 그 말장난이 여사가 된 채로 어른이 되면 이상한 사람 된다. 어른들이 곧잘하는 게 아와 어의 장난이다. 글자는 네 순수한 결정을 갉아먹는다. 바론아, 글자 너무 빨리 배우지 마라.’ 아빠가 이 아침 해주고 싶은 말. 착잡한 아침. 광복 80주년 하루 전.(25.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