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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건 Aug 22. 2018

전자책은 PDF가 아니다

[업 에세이] 콘텐츠 플랫폼 마케팅

지하철에서 종이 책 읽는 사람을 가끔 만난다. 정작 나는 무거워서 잘 들고 다니지 않는다. 사각사각 소리 내며 책장 넘기는 모습 보면 괜히 반갑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뉴스 보거나 카페 같은 커뮤니티에 들어가거나 동영상을 본다.


최근엔 블루투스 기능을 활용한 선이 없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사람을 많이 본다. 처음엔 선 없는 이어폰이 어색했지만 보다 보니 익숙해진다. 와이어리스(wireless) 이어폰으로 양손의 자유를 얻었다.


손은 두 개다. 손을 쓸 수 있는 범위는 물리적으로 한정된다. 책이나 신문 같은 매체는 양 손을 다 써야 한다. 스마트폰은 한 손만 있으면 된다. 다른 한 손은 거들뿐이다. 블루투스 이어폰은 양손을 자유롭게 한다.


물리적인 조건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 달라진다. 이를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이라고 한다. 정의는 이렇다.


사용자가 어떤 시스템, 제품 혹은 서비스를 직간접적으로 이용하면서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총체적 경험. 단순히 기능이나 절차상의 만족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지각 가능한 모든 면에서 사용자가 참여, 사용, 관찰하고 상호 교감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가치 있는 경험이다. 긍정적 사용자 경험의 창출은 산업 디자인, 소프트웨어 공학, 마케팅 및 경영학의 주요 과제이며 이는 사용자의 니즈(needs)의 만족, 브랜드의 충성도 향상, 시장에서의 성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주요 사항이다. (TAA정보통신용어사전)



UX는 IT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UX는 프로덕트의 성패를 좌우한다. 애플이 현재 최고의 글로벌 IT 기업으로 성장한 이유 중 하나로 편리한 UX 설계를 꼽는다. 직관적이고 단순한 UX로 ‘터치 스크린 방식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산업군을 개척했다.


역으로 UX 고려 없이 단순하게 전달 매체의 전환만 이뤄진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책에 담긴 콘텐츠를 그대로 모바일 화면에 담는다고 모두 전자책이 되는 건 아니다. 책은 양손을 활용하는 매체고, 스마트폰은 한 손을 주로 활용하는 디바이스(device)다. 전혀 다른 UX다.


모바일 시대가 됐고, 많은 콘텐츠가 디지털화(digitization) 되고 있다. 가장 흔한 실수는 UX의 고려 없는 1차원 디지털화다.


신문의 PDF(Portable Document Format, 이동 가능 문서 형식)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단순히 스캔 떠서 서버에 올려놓는 방식이다. 이용자는 손가락으로 확대-축소를 해가며 읽어야 한다. 이리저리 위치도 조정해야 한다. 몇 번 읽기를 시도하다가 이내 포기한다. UX를 고려하지 않는 전형적인 디지털화 방식이다.


전자책도 마찬가지다. 아직 많은 전차책이 단순 PDF다. 그대로 스캔 떠놓는다. 작은 화면으로 보면 가독성이 떨어진다. 책에 담긴 콘텐츠와 모바일 콘텐츠의 호흡이 다른데 같은 호흡을 요구한다. 마라톤 선수는 100m 달리기를 할 수 없다.


앱북 프로젝트의 전자책 실패 경험


2014년 모바일이 한창 뜨던 시기, ‘앱북’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앱 형태의 책을 만들어 판매하는 모델이다. 한 권의 책 형태로 앱을 출시했다. 30쪽 정도 맛보기 무료 콘텐츠 제공했다. 31쪽부터는 돈을 내야 볼 수 있는 모델이다.


당시 앱 비즈니스가 크게 성장하고 있었다. 전자책 시장이 막 태동하던 시기였다. 스마트폰이라는 가벼운 디바이스로 책의 콘텐츠를 보여준다면, 종이책 시장 수요의 일부 흡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처음 내놓은 앱북은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 프로야구 시즌 전 각 팀의 주요 선수들에 대한 강점-약점 등을 객관적으로 분석한 리포트다. 메이저리그에선 대중화됐고 많은 야구팬들이 자발적으로 찾아보는 콘텐츠다. 우리나라에선 이제 막 알려지던 시기였다. 열성 야구팬들은 스카우팅 리포트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야구 볼 때마다 책 찾아보는 번거로움을 줄여주고 싶었다. 궁금한 선수가 있다면 언제든 앱북을 구동, 선수를 검색으로 찾아보게 했다. 최신의 데이터를 연동해 보여주는 장치도 만들었다. 시나리오를 촘촘히 짰다.


몇 십만 원의 매출을 냈다. 예상치보다 적었다. 실패였다. 몇 가지 요인이 있었다. 우선 스카우팅 리포트 수요가 적었다. 야구 좋아하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데이터를 체크하면서 야구 보는 적극적 팬들만 스카우팅 리포트를 찾아봤다. 응원하고 즐기는 걸 좋아하는 팬들은 데이터에 큰 관심 없었다.


골수팬들은 이런 공식 출판 형태보다 커뮤니티의 정보를 더 신뢰했다. 커뮤니티엔 나름의 고수들이 있었고 이들의 끈끈함을 고려하지 못했다.


가장 큰 실패 요인은 책에 담긴 콘텐츠를 거의 그대로 앱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모바일 UX를 고려하지 않았다. 궁금한 선수를 한 명씩 검색해 찾아보게 한다는 UX 설계를 했다. 이런 니즈가 있는 이용자면, 차라리 포털에서 그 선수를 검색해보는 게 더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스카우팅 리포트는 보통 시즌 전 선수들의 장단점을 두루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조망하는 용도로 쓰인다. 이런 점을 고려해 UX를 설계했어야 했는데, 검색용으로 설계했다. 결국 실제 검색 서비스에 밀려 활용성이 떨어졌다.


또 한 가지 간과했다. 남성은 모바일 콘텐츠에 돈을 많이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콘텐츠 유료 결제 비율을 성별로 분석해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많이 지불한다. 사전 데이터 분석이 부족했다.


이후 실패 요인을 분석해 다른 앱북을 냈다. 데이터 분석을 했고, 모바일 호흡에 맞게 UX도 설계했다. 30~40대 여성 타깃의 요리 레시피 앱북을 출시했다.


짧은 호흡의 모바일 검색에 밀리지 않으면서, 종이책의 긴 호흡과 차별성을 두는데 집중했다. ‘신혼부부를 위한 국수 요리’ 등으로 테마를 세분화했다. 한 테마엔 7~8개의 레시피를 담았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호흡으로 구성했다. 수백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성공까진 아니지만 나름 선방했다.


짧은 경험이지만 배운 점이 있다. 1) 모바일에 맞는 호흡 2) 적절한 테마 3) 타깃 설정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콘텐츠 유료화는 정말 어렵고, 전차잭은 더 어렵다’는 결론으로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카카오페이지의 전자책 성공 경험


지난 7월 14일 유시민 작가가 ‘썰전’ 하차 계기를 밝혔다. "2년 전부터 한계 느꼈다 “고 전했다. 실시간 검색어에 ‘유시민’ ‘썰전 하차’ 등이 올랐다. 하루 종일 화제였다.



유시민 작가의 심경 고백, TV 토크쇼가 아니었다. 신문 인터뷰도 아니었다. 카카오페이지가 주최한 ‘라이브 토크쇼’였다. 카카오페이지는 웹소설 웹툰 유료 플랫폼이다. 유시민 작가는 최근 ‘역사의 역사’를 출간했다. 역사책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플랫폼에 등장해 심경 고백 했다.


카카오페이지는 베스트셀러 서비스 강화의 일환으로 7월부터 캠페인 ‘페이지를 펼치다’를 진행하고 있다. 유시민 작가의 신간 ‘역사의 역사’를 디지털 독점 공개하고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7월 한 달간 총 9개 챕터로 구성된 도서의 한 챕터를 전 국민에게 무료 선물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또 7월 한 달간 카카오페이지 앱에서 유시민 작가의 8부작 인터뷰 영상을 단독으로 공개했다  카카오페이지 오피스에서 북 토크 행사를 진행했고 이를 라이브 영상 중계했다. 썰전의 하차 이유는 이 행사에서 밝혔다.


모바일 플랫폼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이용자들이 베스트셀러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 종이책을 단순히 디지털 단행본 형태로 제공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읽고 보고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경험을 제공한다.



웹툰과 웹소설로 시작했던 카카오페이지는 최근 영화와 일반 도서까지 서비스 영역을 넓히고 있다. 카카오페이지의 하루 결제액은 무려 6억 원을 육박한다. 최고 8억까지 매출액 기록한 적도 있다. 올해 연간 매출액은 2000억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누적 매출 1억 원 이상을 내는 작가가 767명에 이른다.


카카오페이지가 처음부터 잘 됐던 것은 아니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하루 매출액이 2000만 원도 안됐다. 2013년 기사의 일부다.


출시 전부터 출판사, 기획사, 잡지사, 교육업체 등 창작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카카오 페이지’. 창작자들은 카카오 페이지가 ‘카카오톡’이나 ‘카카오스토리’, ‘카카오톡 게임하기’의 뒤를 잇는 새로운 성공신화가 돼주길 바랐다. 하지만, 출시 후 3개월 만에 창작자들은 카카오페이지에 ‘실패’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2013년 7월, 카카오페이지에 기대를 품고 콘텐츠를 만들던 일부 창작자는 카카오페이지가 개편되기 전까지 콘텐츠를 추가로 올리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카카오페이지는 공중에 붕 뜬 상태다. 콘텐츠 유입과 구매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카카오페이지는 실패를 딛고 콘텐츠 유료 플랫폼의 강자로 떠올랐다. 모바일 이용자의 철저한 UX 분석이 있었다.


일정 시간 기다리면 유료 콘텐츠를 무료로 볼 수 있게 하는 ‘기다리면 무료’, 스마트폰 액정에 맞게 콘텐츠 길이와 호흡을 쪼개는 ‘분절’, 수시로 카카오페이지 캐시를 증정하는 룰렛 형식의 이벤트 ‘캐시 뽑기’가 카카오페이지의 대표적인 기능이다.


게임 산업에서 힌트를 얻어 ‘애니팡’을 벤치마킹했다. 이용자들이 유료와 무료의 경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게 중요했다. 이를 위해 '기다리면 무료' 시스템 도입했다. 애니팡에서 일정 시간을 기다리면 게임 플레이를 할 수 있는 '하트'를 받는 것처럼 웹툰, 웹소설 등의 콘텐츠도 일정 시간 기다리면,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했다.


‘모바일에 맞는 분절’ 전략도 주효했다. 모든 콘텐츠를 모바일 소비 패턴에 맞게 나눴다. 게임의 1판처럼 짧은 호흡으로 줄였다. 스마트폰 액정에 맞게 콘텐츠 길이와 호흡을 쪼갰고, 기존의 웹툰 한 편보다 더 짧은 길이로 조정했다. 책 한 권을 20~30편으로 쪼개서 판매했다.


수시로 카카오페이지 캐시를 증정하는 룰렛 형식의 이벤트도 진행했다. 개별 사용자가 어떤 작품에 관심이 있다는 걸 데이터로 확인했다. 해당 콘텐츠를 추천하면서 ‘무료 캐시를 줄 테니까 한 번 더 봐라’는 식으로 사용을 유도했다.


카카오페이지는 앞으로 출판 업계와 더 많은 캘리버레이션(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모바일 UX를 철저히 분석해서 얻은 노하우, 실패에서 얻은 경험은 전자책 시장에 진출하려는 출판사에 좋은 인사이트가 될 것이다.


과거의 실패 경험을 통해 느낀다. 현재 카카오페이지의 성공 사례를 보며 배운다. 전자책은 PDF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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