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이 웰다잉이다
되돌아보는 시간
환갑이란 말은 육십갑자(六十甲子)가 한 바퀴 돌고 다시 자기가 태어난 간지의 해로 돌아온다고 해서 쓰는 말이다. 옛날처럼 장소를 빌려 손님을 초대해서 흥겹게 먹고 노래하며 환갑을 축하하는 일이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나도 환갑잔치할 계획은 없었지만, 그 해를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60년의 삶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한 해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꺼내서 버릴 것은 버리고 보관하고 싶은 것은 남겨놓으며 방마다 정리하느라 며칠이 걸렸다. 살아온 날이 제법 길어 가진 게 많아서 그렇기도 했지만,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로 회상에 빠져 더 그랬다.
십 년마다 한 번씩 이런 시간을 가져야겠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버려 단출하게 살아가면 좋겠다.
죽음에 대해서도 준비할 수 있다면 조금씩 해놓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요즘 60세는 죽기에 이른 나이겠지만 아쉬워할 정도의 나이는 아니다. 죽음이 마냥 멀리 있지 않다. 살아갈 날이 산 날보다 짧은 것은 거의 확실하니 대비하는 게 잘하는 일 같았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서 웰다잉(Well Dying) 강의를 들었다.
웰다잉 준비 열 가지
웰다잉은 평소에 죽음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서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편안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준비할 사항으로 열 가지를 꼽아놓았는데 이 중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미리 해둔다면 남겨진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일을 줄일 수 있겠다.
1.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계획하는 마무리 노트
마무리 노트는 엔딩 노트라고 해서 책으로 나온 것도 있었다. 자신이 사망하거나 질병으로 인해 판단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상실했을 때를 대비해 미리 희망 사항을 적어둘 수 있다.
따로 노트에 적지 않았다면 가족과 미리 이야기를 나눠 놓도록 한다. 그래야 가족이 당사자 대신 힘든 결정을 할 수 있고, 그 결과가 사망으로 이어지더라도 죄책감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 말하기 거북한 부분이 있어도 건강할 때 해놔야 한다.
2. 삶을 정리하는 유언장 작성
유언의 방식은 다섯 가지(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받아쓴 증서)가 있는데, 글로 쓴 유언장에는 작성 일자, 주소, 성명, 날인이 있어야 하고 자필로 작성해야 법적으로 효력이 있다.
3. 사전연명의료 의향서 작성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는 회복 가능성이 없을 때 연명의료 행위(인공호흡장치)를 받지 않겠다고 미리 밝혀 놓는 것이다. 등록기관은 검색해서 찾을 수 있는데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가능하고 노인복지관이나 보건소에서도 가능한 지역이 있다. 이 의향은 언제든지 변경이나 철회할 수 있다.
4. 연명의료 계획서 작성
말기 환자나 임종을 앞둔 환자가 연명의료를 중단하겠다고 하면 담당 의사가 연명의료 계획서를 작성한다. 이 또한 변경과 철회를 할 수 있다.
5. 사전 장례 의향서
사전 장례 의향서에는 장례에 관해 자기 뜻을 밝혀둔다. 부고 범위, 장례 방식과 장소, 매장 방식 등 당부사항을 미리 적어놓아 자신이 장례식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장례를 간소하게 해도 본인의 의견이었으므로 가족들은 덜 부담스러울 것이다.
지금까지는 죽음에 대한 대책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더 잘 살기 위한 활동으로 볼 수 있겠다.
6. 건강 검진
질병을 예방하여 건강하게 지내기 위해 챙겨서 검진한다.
7. 버킷 리스트 작성
버킷 리스트는 가족, 취미, 관계, 재정, 여행, 미용 등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작성한 표이다. 목표 기한을 적고 달성 여부와 달성 연도도 표시할 수 있도록 한다. 리스트에 있는 항목들을 하나씩 이루어가며 성취감을 느껴 더 만족스러운 삶이 될 것이다.
8. 인생 곡선 그리기
인생 곡선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경험을 수치화하고 미래의 모습을 예상하는 그래프이다. 가로축에는 나이를, 세로축에는 경험했던 일이 긍정적이면 위로, 부정적이면 아래로 각각 100점을 최고점으로 해서 점수로 표시한다. 이 점들을 이어주면 인생 곡선이 된다.
이 그래프에서 변화의 주기가 있는지, 굴곡의 깊이가 어떻게 변했는지, 부정이 긍정으로 변할 때 요인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9. 자서전 쓰기
자서전을 쓸 때도 인생 곡선은 도움이 된다. 어떤 이야깃거리를 고르고, 어떤 흐름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갈지 결정하기가 쉬워진다.
10. 묘비명 쓰기
묘비명 쓰기는 자신의 삶을 대표하는 표현을 찾아내는 작업으로, 그 글에 적합하게 살려고 자기 삶에 더 집중하게 된다.
열 개라서 많은 것 같지만 막상 그렇지도 않다. 연명의료 계획서는 임종을 앞둔 입원환자가 아니면 해당하지 않으니 아홉 개인 셈이다. 마무리 노트와 사전 장례 의향서는 따로 써도 좋지만 하나로 작성해도 되겠다. 유언장 쓰기에 어려운 문제는 없겠고,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만 기관에 가서 등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아래 다섯 항목과 관련해서는 여러 차례 해볼 기회가 생긴다. 건강검진은 2년마다 하고 있고, 버킷 리스트와 인생 곡선은 교육 프로그램에 종종 포함된다. 요즘은 자서전 쓰는 교육도 많다. 길이에 부담이 없다면 자유롭게 쓰면 되겠다. 사람 따라 다르겠지만 내겐 묘비명이 간단하면서도 제일 어렵다.
웰다잉=웰빙
웰다잉을 준비하기 위한, 이 열 가지에도 죽음과 삶을 위한 활동이 같이 있듯이 웰다잉은 웰빙이라고 했다.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면 남아있는 삶을 더 아름답게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잘 살아야 잘 마무리할 수 있다. 그래서 웰빙을 웰다잉이라고도 하겠다.
마지막 순간을 평온하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죽음도 삶과 마찬가지로 공부와 연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