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는 연습

우기지 않는다

by tripall


나이 들면 저절로 지혜로워지는 줄 알았다

사십 세면 불혹(不惑)이라고 했지만, 그때도 여전히 유혹에 흔들리는 자신을 보았다. 오십 세가 지천명(知天命)이라는데 하늘의 뜻을 아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직장 동료의 마음조차 짐작하기 힘들어 인간관계가 늘 난제였다. 이순(耳順)이라는 육십 세도 지났는데 귀가 순해졌는가?

공자는 예순 살부터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고 해서 이순이라고 했다는데, 이순보다는 우이독경(牛耳讀經)에 더 가까운 귀가 돼가는 게 아닌가 싶다. 남의 말을 듣고 그걸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자기가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이 옳다고 우기는 육십 넘은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나이가 들어 그동안 쌓은 경험이나 연륜이 포용이 아니라 고집의 근거가 되었다. 그렇게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고 폭력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기’에서처럼 한정된 경험에서 그것을 평가한다. 장님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보는 것은 ‘지금, 이곳의’ 시점으로 한정된다. 하늘에 존재하는 수많은 별이 낮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거기에 별이 없다고 말하면 거짓이다. 게다가 우리 눈에는 맹점이라는 곳이 있다. 보고 있어도 파악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거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상황의 진실을 온전하게 알려면 자신이 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하면서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고, 자기 말과 다르게 말하는 사람은 틀린다고 단정하기 쉽다.


나이가 들어보니 연륜과 지혜가 동반되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된다. 자신의 한정된 경험 속에서 나이가 들기 때문에 어떤 경험을 했든지 이기적으로 사고했던 사람은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노인이 되는 것이다. 그 경험들을 자신의 시각으로만 평가해 왔기 때문에 관점을 확장하지 못했고, 거기서 지혜를 얻지 못한 채 더욱 외골수가 되는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고집불통 노인이 된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핑계를 댈지 모르겠다. 이것도 아주 중요한 요인이고 개선되어야 할 점이다. 그러나 편협하게 나이 들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는 여지는 언제든 있었다. 자신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이런 고집불통은 자기의 인격을 손상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어 병든 관계를 형성한다.


내가 사는 지역 센터에서 무료로 외국어를 공부하던 때였다. 첫날 수업에 늦게 들어온 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숨소리가 거칠고 나이도 많아 보였는데 공부하려는 자세를 좋게 여겼다. 그런데 첫날부터 외국어 수업은 회화 위주로 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해서 수업 때마다 그 얘기를 반복하면서 수업 진행을 방해했다. 우리는 기초반이었고 학생 중 반은 그 언어를 처음 배웠다. 그 할아버지는 아무도 원치 않았는데 자기가 쉬는 시간에 가르치겠다고 하고 상황은 계속 좋지 않게 진행되어 폐강될 뻔했다.

알고 보니 그분은 다른 기관에서 이미 과목을 폐강시킨 경력이 있었다. 게다가 이 지역에 사는 사람도 아니었다. 아마도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전초전이 있어서 수강할 수 없는 상태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 할아버지는 자기가 한 행동이 관계를 망치고 있다는 걸 몇 차례 겪고서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쉬는 시간에 같이 수업을 듣던 한 남자는 “저렇게 나이 들지 말아야지.”라고 말했다.

내가 틀릴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저절로 지혜로워지진 않지만 내가 늘 옳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완벽하게 하려고 세심한 것까지 챙기는 버릇이 없어진 건 아닌데도 실수가 많아지고 의도치 않게 착각하는 일이 생긴다. 기억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도 있다.

그래서 내가 본 것, 들은 것, 만진 것이라도 다른 사람과 의견이 충돌되면 우기지 않으려고 한다.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으면 확인하면 될 일이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면 그때 가서 알면 되는 일이다. 실제로 그리 중요치 않은 문제인 경우가 많다.

의견이 부대끼는 건 내가 확신하는 만큼 상대방도 확신하기 때문이다. 내가 근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상대방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계속 우긴다면 실랑이가 벌어질 수 있다. 내 기억이 혼동되었을 가능성을 인정하면 웃고 넘어갈 일이 될 것이다. 기억력이 희미해진 그 자리에 그만큼 상대를 용인하는 마음이 자리 잡는다면 나이 드는 게 나쁘다고만 할 수 없겠다.


살아가면서 느끼지만, 세상에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절대, 결코’ 같은 표현은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이런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더 신뢰가 가지 않는다. 과장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일 거다.

우리가 진리라고 알고 있던 것조차 바뀌기도 하지 않는가? 지구가 네모나다고 믿었던 시대가 있었고, 몇 세기 전까지는 천체가 지구 둘레를 돈다고 믿었다. 마찬가지로 지금 진리라고 여기는 사실들이 나중에는 오류로 드러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있을까? 말이 조심스러워진다. 강조하고 싶어 굳이 단정적인 말을 했다면 그 말을 책임져야 하는 게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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