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여행기 05 : 시칠리아 몬델로
팔레르모 근처 도시인 몬델로에 가기로 했다. 정보는 거의 없었지만, 여행 책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팔레르모 근교의 아름다운 휴양지.' 그 문장 하나를 믿어 보기로 했다.
몬델로는 팔레르모에서 버스로 한 시간, 자동차로 이 십분 남짓한 거리였다. 작은 어촌마을이던 몬델로는 한때 참치잡이로 생계를 이어왔지만, 어업이 쇠퇴한 뒤로는 황금빛 해변과 맑은 바다를 등에 업고 시칠리아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변신했다.
아침 산책 중 우연히 자전거 대여점을 발견했다. 여권과 신용카드만 있으면 손쉽게 자전거를 빌릴 수 있었다. 20km 거리. 제법 먼 길이었지만, 버스 대신 자전거로 가 보기로 했다. 팔레르모는 큰 도시지만 자전거 도로는 잘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겁이 많은 편이다. 위험한 일은 피하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형은 달랐다. 자전거를 평소에도 즐겼다.
"버스로 가면 재미없잖아."
결국 설득당했다. 다만 초행길이니 천천히 가자고 약속했다.
도시는 차들로 붐볐다. 버스가 뒤에서 경적을 울려댔고, 인도와 도로를 번갈아 오가며 간신히 팔레르모를 빠져나왔다. 곧 영화속 풍경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도시를 벗어나자 건물은 사라지고, 돌산과 초록빛 들판이 이어졌다. 낡은 노란색 집들이 드문드문 서 있었고, 그 뒤로 암석산이 높이 솟아 있었다. 산 아래에는 연둣빛 잔디와 올리브나무가 듬성듬성 자리했다.
길이 서서히 오르막으로 바뀌었다. 몬델로에 가려면 작은 산 하나를 넘어야 했다. 페달을 세게 밟을수록 숨이 차올랐다. 산 중턱에는 넓은 공원이 있었고, 가족들이 공놀이를 하거나 조깅을 하고 있었다. 팔레르모로 들어가는 차들과 몬델로로 향하는 차들이 서로 스쳐 지나갔다. 매연이 코끝에 와닿았지만, 그 공기마저 생생하게 느껴졌다. 가장 높은 지점, 버스 정류장 옆에서 잠시 쉬었다. 형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잠시 숨을 고른 뒤, 우리는 다시 페달을 밟았다.
내리막길은 아찔했다. 울퉁불퉁한 인도에 흩뿌려진 모래 위로 바퀴가 미끄러졌다. 나는 브레이크를 잡았다 풀었다 하며 조심스레 내려갔다. 뒤에서 형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형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하하하, 그래도 꽤 잘 탔어."
평지로 내려서자 긴장이 풀렸다. 양옆으로는 예쁜 2층 주택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멀리서부터 바다 냄새가 희미하게 흘러왔다. 정갈하게 지어진 집들을 지나자, 드디어 해변이 보였다.
몬델로의 바다는 푸르렀다. 고운 모래사장이 길게 뻗어 있었고, 바다 앞 작은 광장을 중심으로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었다. 해변에는 선베드와 파라솔이 늘어서 있었고, 수백 척의 작은 고깃배들이 방파제에 묶여 잔잔한 파도를 따라 흔들렸다.
자전거를 묶고 해변 산책로를 걸었다. 바람은 부드럽고, 파도 소리는 잔잔했다. 커플은 강아지와 함께 걷고, 아이들은 모래사장 위를 뛰었다. 바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해변가에서 악세서리를 파는 노인, 모두가 평화로웠다. 팔레르모의 복잡한 소음은 이곳에선 들리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오자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매연과 경적 사이를 지나며 '버스 탈걸..'하고 후회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한국의 풍경도 물론 아픔답다. 서울은 세계 10대 관광도시로,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매력으로 많은 외국인들이 찾는다. 하지만 나에게 서울은 너무 익숙하다. 오래된 집처럼, 모든 풍경이 이미 손에 익어 있다. 익숙함은 아름다움을 무디게 만든다. 그래서 여행이 필요하다. 낯선 곳에 도착해, 처음 보는 하늘을 올려다볼 때 그 설렘이 다시 나를 살아 있게 한다.
바다 위로 아지랑이는 태양 빛을 볼 때, 아기자기한 간판이 붙어있는 상점들과 마을 건물들 위로 석양이 드리울 때, 보랏빛 하늘 아래 노란빛으로 무겁게 내려앉은 성당을 볼 때 그랬다.
우리는 바닷가가 보이는 레스토랑에 앉았다. 먹물 파스타, 몬델로 피자, 신선한 샐러드, 그리고 차가운 맥주를 주문했다. 푸른 하늘과 같은 색의 바다를 바라보며, 그 순간만큼은 이 세상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