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여행기 6 : 시칠리아 체팔루
체팔루는 시칠리아 북쪽 가운데 위치한 곳으로 조용하고 작은 관광도시이다. 팔레르모에서 기차를 타면 1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으로 영화 '시네마 천국'의 배경지로도 유명했다. 다음 목적지는 자연스럽게 팔레르모 근처의 체팔루로 정했다.
몬델로에 다녀온 후 자전거를 타고 팔레르모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걸어서 돌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편했고 많은 곳을 볼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하게 빵과 시리얼을 먹고 숙소 현관 앞에 세워둔 자전거를 반납하기 위해 대여소로 향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던 길을 걸어서 돌아오려니 뭔가 섭섭했다. 체팔루에 가기 위해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왔다.
첫날 공항에서 타고 온 기차에서 내렸던 중앙역을 향해 다시 걸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의 낯섦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편안한 이 도시가 좋아졌고 아쉬운 마음이 꽤나 쌓였다. 체팔루행 기차가 곧 출발했고 바다를 따라 난 기찻길 위로 기차가 달렸다. 창문으로 아름다운 파란 바다가 스쳐 지나갔다.
곧 체팔루 기차역에 도착했고 캐리어를 끌고 역을 빠져나왔다. 기차역은 신시가지와 구시가지 사이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미리 예약해 둔 숙소는 구시가지의 대성당 근처였다. 지도를 보니 기차역에서 꽤 먼 거리에 위치해 있어 한참을 걸어야 했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우린 동네를 구경하며 숙소까지 걷기로 했다. 기차역을 빠져나와 언덕길을 따라 조용한 길을 내려가자 큰 길이 나왔다. 큰길을 따라 마트, 정육점, 제과점 등 많은 상점들이 있었고 가게와 길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빵가게에서는 빵을 고르는 사람들이 줄을 섰고, 정육점에는 인상 좋은 주인아저씨가 고기를 썰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빵과 고기를 사서 집으로 향하는 듯했다.
구시가지에 들어서자 전혀 다른 분위기의 길이 펼쳐졌다. 오래된 건물과 길 사이로 예쁜 상점들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길 위에는 철 지난 크리스마스 전구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상점들을 지나 조금 더 오르자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길이 나왔고 골목 사이사이에는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와 빵가게, 과자가게가 있었다. 그 길의 끝에 체팔루 대성당이 있었다.
체팔루 구시가지는 오랜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켜왔다. 12세기 세워진 체팔루 대성당은 멀리서 봐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오래전에 형성된 이 도시는 대체로 길이 좁아 작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었다.
좁은 골목길을 헤매어 숙소를 찾았다. 좁은 골목들 사이에서 숙소를 찾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한참을 헤매다 길에서 요리하는 소리를 들었고 실례를 무릅쓰고 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숙소를 찾고 있는데 못 찾겠어서요. 이 주소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
아주머니께서는 지도의 주소를 유심히 보셨다. 그리고 핸드폰을 가지고 와서 번역기를 켰다.
"옆집에 사는 사람이 이 숙소 청소를 해요. 기다려보세요."
옆집으로 간 아주머니는 그 숙소의 관리자를 데리고 나왔다.
아주머니 도움 덕분에 겨우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낯선 일들의 연속이다. 숙소를 못 찾아 헤매는 일은 다반사고, 현지인에게 속아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낯선 곳에서 어리숙한 우리에게 다가와 호의를 베푸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기도 하는 반면 호의를 베푸는 친절한 사람들도 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에게 요리를 하시던 아주머니가 그랬다.
에어비앤비에서 예약한 숙소는 2층 구조로 1층에는 넓은 부엌과 거실이, 2층에는 침실과 화장실이 위치해 있었다. 창문을 열면 아래로 작은 공터가 보였고 오래된 건물들이 숙소를 감싸고 있었다. 짐을 풀고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길을 나섰다. 구시가지 앞의 큰길에서 봤던 상점에 들릴 생각이었다. 오늘의 메뉴는 형의 어머니가 싸주신 김치와 김에 삼겹살과 마늘을 구워 먹기로 했다.
정육점에서 베이컨을 두껍게 썰어 구입하고 큰길에 있는 마트에서는 4유로짜리 와인 한 병을 골랐다. 시칠리아 마트에는 2유로에서 5 유료 정도로 저렴하고 맛있는 와인이 가득했다. 한화로 5,000원 정도지만 맛이 정말 좋은 와인들이었다. 숙소에 돌아와 고기를 굽고 김치에 와인을 곁들였다.
여행을 하다 힘든 날, 몸이 안 좋은 날 가장 생각나는 게 한식이다. 여행을 하면 피자, 파스타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이 널렸다는 것에 기뻐하다가도 몸이 무거운 날에는 한식이 꼭 생각났다. 몸이 무거워지고 화장실도 편히 다녀오지 못하는 그런 날, 한식을 먹으면 모든 게 해결됐다. 그런 날에 한식을 먹고 나면 몸도 가벼워지고 머리도 맑아졌다. 김치와 김은 형의 어머니가 여행을 하며 한식이 그리워진 때를 기억하시고 챙겨주신 것이었다. 그날 저녁 삼겹살, 김치와 김을 먹고 편히 잠이 들었다. 이 날 이후로 김치와 김은 해외여행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