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여행기 08 : 체팔루
시칠리아 체팔루는 1,000년 전 세워진 대성당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고 대성당에서 시작되는 메인 도로는 마을의 동쪽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메인 길을 중심으로 빵집, 기념품샵, 카페, 레스토랑 등의 상점들이 있었고, 길 사이사이에 작은 골목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마을의 건물들은 굉장히 오래되어 허름한 모습이었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겉보기와 다르게 굉장히 깔끔했다.
대성당 옆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굽이진 골목 안의 상점들은 한산했다. 간간이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길을 걷고 있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을 뒤로 우뚝 솟은 산의 입구에 다다랐다. 입구에는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고 그 옆에는 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계단을 오르자 그 남자는 우리에게 말했다.
"공원에 올라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해요. 내려올 때 다시 나에게 이 티켓을 보여줘야 하고요."
“왕복 2시간이면 올라갈 수 있어요.”
산에 오르면 경치가 좋다며 티켓 구입을 권유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아름다운 체팔루를 내려다볼 수 있다는 말에 바로 티켓을 구입하여 산을 오르기로 했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지만 산에 먼저 올라가는 것으로 급하게 계획을 변경했다. 산에 올라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는 샌드위치를 사기 위해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입구 근처의 카페에서 큼지막한 샌드위치 2개 포장하여 산을 올랐다. 간간이 자리 잡은 나무들 사이로 듬성듬성 선인장들이 있었다. 나무가 많지 않은 길은 황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얼마나 올랐을까 산 중턱에 위치한 성곽에 도착했다. 오랜 시간 체팔루를 지켜온 성곽으로 울퉁불퉁한 돌 사이로 흙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오렌지 빛의 마을과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성곽에 앉아 마을과 바다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샌드위치를 먹었다.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하는 점심이었다. 체팔루는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처럼 오렌지 빛깔의 건물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냈다. 작은 마을과 낮은 산이었지만 아기자기한 도시는 체팔루만의 매력을 갖고 있었다.
다시 산길을 내려오며 보이는 마을을 바라보고 있으니 1,000년이란 오랜 기간 이곳을 가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낡았지만 오래된 건물들을 보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했다. 물질적인 부로 대표적인 것은 부동산, 어떤 사람이든 넓고 높으며 새로 지은 집에서 살고 싶어 하는 곳이기도 하다. 좁고 구불진 골목길이 불편할 만도 하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건물을 부수거나 새로 짓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변하지 않은 이 도시를 내려다보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내 집 마련에 온 힘을 다하는 우리 세대는 하루아침 사이에 달라지는 아파트 가격을 보며 좌절한다. 아파트는 세세한 부분까지 관리사무소와 경비실에서 해결해 준다. 깔끔한 주변 환경에 길도 쭉쭉 뻗어 있으며 주차장도 잘 갖추고 있다. 또 곳곳의 CCTV는 안전을 보장해 준다. 하지만 주택가의 환경은 이보다 못하다. 주택가에 가면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 어두운 밤이면 때론 무섭거나 골목골목 버려진 쓰레기 때문에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또한 주차할 곳이 없어 길을 헤매는 일도 허다하다. 그 흔한 CCTV도 많은 골목들을 모두 지켜 주진 못한다.
주택가의 회색 시멘트가 깔려 있는 작은 골목길들을 예쁜 색색의 보도블록이 설치되고, 작은 공터에 나무 한그루와 벤치 하나를 놓이고, 동네 주민이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공원이 생긴다면 좋을 듯하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와 꽃과 풀이 곳곳에서 마을을 밝혀준다면 어떨까? 회색의 시멘트 길이 아니고 예쁜 색색의 블록 길에 꽃과 나무를 보며 걸을 수 있는 동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의 골목을 잇는 작은 집들이 생기를 얻어 예쁜 집들이되어 가고 살기 좋은 동네가 되어가는 것을 바라본다. 작은 마당에는 강아지와 아이가 뛰어놀고 작은 마당에서 커피 한잔 할 수 있는 작은 집이라면 좋을 것 같다. 내 아이들이 집 앞 길에서 체팔루에서 느꼈던 감정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