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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스테이블 코인은 페트로 달러 시스템이 될 수 없다

by 삼중전공생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란



암호화폐는 실물자산과 연동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본질적으로는 그 가격의 변동을 예측하기 까다로운 투기성 자산입니다. 때문에 교환가치를 지닌 화폐로서의 기능을 거의 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암호화폐를 실물자산에 연동시킨 것이 자산 담보 암호화폐(Asset-backed Cryptocurrency) 혹은 자산 담보 토큰 크립토입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입니다. 대략적인 구조는 이렇습니다. 만일 암호화폐를 달러에 연동시키고 싶다면, 1코인을 발행할 때마다 1달러만큼의 미국 단기채를 매입하는 겁니다. 1코인이 시장에 돌아다니다가 발행처에 돌아와서 코인 소유자가 달러로 다시 바꿔줄 것을 요구하면 매입했던 1달러만큼의 미 단기채를 팔아서 1달러 현금을 되돌려주는 것입니다.


즉 1코인은 사실상 1달러만큼의 미국 단기채인 셈이고, 단기채가 화폐의 옷을 입고 시장에 돌아다니는 것이 됩니다. 하필이면 단기채인 까닭은 단기채가 가격변동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금리에 따라 가격이 크게 변하는 장기채는 1코인에 정확히 1달러만큼을 연동시키기 까다롭습니다. 가령 1코인을 돌려받고 발행처가 1달러를 돌려주기 위해 장기채를 팔았더니 채권 가격이 하락해 0.9달러만 받을 수 있었다면, 발행처는 0.1달러만큼을 손해 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 이런 스테이블 코인은 굳이 왜 써야 할까요? 현재로서는 현금도 대부분 전산화되었기 때문에 개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전자결제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테이블 코인은 구조상 거래 시 은행의 전산시스템을 거칠 필요가 없기 때문에 24시간 자유롭게 수수료 부담이 거의 없이 국경 간 송금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스테이블 코인은 향후 발달할 디지털 자산 생태계에서 유동성 높은 교환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상당합니다. 즉 디지털 자산을 보유하거나 거래하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스테이블 코인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자산에 관심이 없는 개인들도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기껏해야 소액을 거래하는 개인들은 기존 현금의 수수료나 유동성 문제가 체감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개인들의 돈을 모아 큰돈을 굴리는 핀테크 금융기관들은 거래 효율성 증진을 위해 개인들에게 이런저런 방식으로 스테이블 코인의 활용을 강제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핀테크 기업들이 금융공학 지식을 쥐어짜 냄에 따라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암호화폐 특성을 이용해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을 텐데, 다가올 미래사회에서 이런 금융 서비스에서 소외되고도 자산 증식을 도모하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 미국 국채의 새로운 수요처로 등극하나


암호화폐를 실물자산에 연동하는 것을 페깅(Pegging)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현존하는 자산 중에 가장 범용성이 좋고 안전한 자산은 다름 아닌 달러입니다. 원유 스테이블 코인, 금 스테이블 코인, 심지어 미술품 스테이블 코인까지 가능하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이 달러 스테이블 코인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시중에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 유통되고 디지털 자산 생태계가 성장함에 따라 달러 스테이블 코인 발행량이 늘어나면, 자연히 여기에 1대 1로 연동된 미국 단기채 수요 또한 폭등할 개연성이 있습니다.


미국의 재정적자가 심각하고 국가채무가 역대 최대치를 갱신하더라도 어쨌거나 미국 정부에 돈을 계속 빌려주고 채권을 새로 사줄 사람만 있다면 미국은 파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트럼프가 대규모 감세안으로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자신만만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재정적자가 늘어나고 이자 상환 부담이 가중돼도 단기채를 더 발행해 메우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스테이블 코인 덕분에 단기채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은 포스트 페트로 달러 시스템인가


위 영상처럼 이러한 '거대한 채권 수요처의 부상'이라는 측면을 부각해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 새로운 '페트로 달러 시스템'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페트로 달러 시스템은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는 금태환 제도를 포기한 미국이 이후 원유를 달러로만 결제하도록 하여 미국 달러 수요를 지속적으로 창출한 사건을 말합니다. 미국의 군사력을 이용해 이란으로부터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의 안보를 지켜주는 대가로, 이들 국가가 원유를 판매할 때는 달러로만 결제대금을 받도록 하는 약속을 받아낸 것입니다.


때문에 세계 각국은 자국의 산업 유지를 위한 원유 구입을 위해 상시 달러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특히 달러 자산 중에서 유동성과 안정성이 가장 높은 미국 국채 보유를 강요받게 된 것입니다. 또 유일한 원유 결제 수단으로써 달러는 그 가치가 떨어질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구조를 갖게 되었고, 이런 안정성 덕분에 세계 무역에서도 달러가 통용되게 되어 미국이 기축통화국으로 등극할 수도 있게 된 것입니다.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자 세계 각국 정부는 자국의 외환시장에 개입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으로써도 달러가 필요하게 되었고, 이는 앞선 요인에 더해 추가적인 세계 각국 정부의 미국 채권 매입 유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스테이블 코인과 페트로 달러 시스템은 '거대한 채권 수요처 창출'이라는 측면에서는 얼핏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 동영상과 같은 이러한 비유는 완전한 오류입니다. 페트로 달러 시스템의 본질은 '막대한 채권 수요의 발생' 그 자체가 아니라 '달러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냈다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은 분명 거래 효율성을 증진시켜 주는 측면에서 유용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달러 기반 자산을 보유하고 사용할 의사가 있는 사람에게나 유용할 뿐입니다. 즉 달러 스테이블 코인은 달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미국 채권을 구입하게 하는 효과를 낳을 뿐, 페트로 달러 시스템처럼 달러를 굳이 쓸 까닭이 없었던 사람에게 달러를 써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류를 감수하고 무리한 비유를 하자면, 달러는 원유에 페깅 된 일종의 코인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전기차 시대가 다가오고 산업사회가 저물면서 석유에 대한 수요도 감소하는 시점에 트럼프 행정부는 달러를 다른 산업 필수재에 페깅 하지 않고, 그 실물자산 토대를 상실한 달러에 달러 스테이블 코인을 페깅시켜 신규 미 국채 수요처를 확보하고 지속적인 재정적자 확대 기조를 이어나가겠다는 것입니다. 이건 말 그대로 모래성 위의 모래성이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사기입니다. 이렇게 되면 달러는 그야말로 사람들이 많이 쓰기 때문에 많이 쓰는 자산이 될 뿐, 달러를 써야만 하는 그 어떤 필연적인 이유도 있지 않게 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쩌다 한번 내부적 요인이든 외부적 충격으로 미국에 금융위기가 닥치게 되면 달러에 대한 신뢰도 말 그대로 모래성처럼 몽땅 와르르 무너지게 되고, 달러를 필연적으로 보유할 필요가 없어진 경제 주체들은 쏟아지는 미 채권 물량을 받아내지 않고 던지기만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미 채권 금리가 폭등하게 되면, 빚으로 빚을 갚던 미국의 경제구조는 더 이상 지속불가능하게 되고 미국은 파산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즉 미국 패권시대의 종말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


문명이 유지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딱 두 가지로 '식량'과 '에너지'입니다. 한 국가가 식량을 독점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에너지를 독점하는 것은 비교적 가능합니다. 산업사회의 주요 에너지원은 석유였습니다. 하지만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고 핵에너지 기술이 발달하면서 장기적으로는 핵융합 발전이 미래사회의 에너지 공급방식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핵융합 발전을 위해 요구되는 자원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달에 있는 헬륨-3입니다.


현재 연구되는 중수소-삼중수소 핵융합 방식은 헬륨-3 핵융합 보다 기술적 난이도는 낮지만 방사성 폐기물 문제가 있습니다. 방사능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보다 더 효율적일 것으로 평가받는 헬륨-3가 궁극적인 핵융합 발전 기술이 도달해야 할 지점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헬륨-3는 지구에는 거의 없고 달에 매장량이 풍부한 자원입니다. 즉 핵융합 발전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달에서 헬륨-3를 채굴해 운송하는 기술적 난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 기술적 난제를 해결할 가장 큰 역량을 가진 국가는 다름 아닌 미국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달탐사 계획인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국가도 미국입니다. 즉 미국은 패권적인 군사력을 통해 중동의 석유 결제 대금을 달러로 강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기술적 패권을 이용해 헬륨-3의 결제 대금을 달러로 강제하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반발하는 국가는 월면 헬륨-3 채굴 프로젝트에서 쫓아내거나 헬륨-3를 팔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독자 기술로 달에서 헬륨-3를 채굴하려고 노력할지도 모르지만, 규모의 경제 때문에 미국과 그 우방국들이 채굴해 온 헬륨-3와 가격 면에서 경쟁이 안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제1세계 국가들 뿐만 아니라 제3세계 국가들도 불가피하게 미국이 채굴한 헬륨-3를 수입해야 할 것이고, 여전히 불가피하게 달러를 보유해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를 갖게 될 것입니다. 개발도상국에서 헬륨-3 핵융합 발전을 대체하고 산업 패러다임을 전환할 차세대 에너지 기술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결론


다소 공상과학 같은 이야기이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달러 스테이블 코인을 '페트로 달러 시스템'에 비유하는 것은 '새로운 미 채권 수요처를 창출'한다는 측면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오류로 보입니다. 그런 측면을 특히 강조하고 싶었을 수도 있지만, 페트로 달러 시스템의 본질을 고려할 때 오해의 소지가 지나치게 크고 중대합니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의 정체와 파장을 놓고 경제 전문가들도 갑론을박 말이 많습니다. 영상에 전문가로 등장한 오건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도 이 코인의 정체를 놓고 고민하는 와중에 페트로 달러 시스템도 떠올려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럴 수는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오건영 단장이 저보다 경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실물경제 흐름을 읽는 감각도 더 훈련되어 있겠지만, 페트로 달러 시스템의 본질을 읽는 각도가 경제학과 정치학에서 각기 다르고 저는 후자에 가까운 입장에서 영상을 보고 좀 다른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저는 이번에도 트럼프 행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미국에서 전기차 보조금을 깎는다고 해서 전기차 시대의 도래가 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선진국을 중심으로 석유 기반 산업경제를 이탈하기 시작하면 페트로 달러 시스템의 근간도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은 페트로 달러 시스템 없이도 미 국채 수요가 지속가능하게 창출될 수 있는 것처럼 잠깐의 환상을 만들어줄 뿐입니다.


트럼프와 베센트 등이 이것이 환상이고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정확히 직시하고 있다면, 지금 트럼프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제가 보기엔 핵융합과 우주항공기술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오바마 행정부 시절 NASA가 화성 탐사를 메인으로 운영되던 것을 달 유인 탐사로 초점을 바꾼 사람이 트럼프였다는 점은 다행인 사실입니다.


하지만 트럼프의 공개발언들을 볼 때 그의 생각이 헬륨-3를 기반으로 한 포스트 페트로 달러 시스템 구축까지 미친 것 같아 보이진 않습니다. 더구나 지금처럼 트럼프가 일론 머스크와 티격태격하며 스페이스 X의 사업에 훼방을 놓을 거라는 둥 협박을 하는 게 아르테미스 계획의 성공적인 완수에 얼마나 도움이 될 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정말 우연히 운 좋게도 트럼프가 핵융합과 우주탐사에 호감을 갖고 있을 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건 대단히 위태로운 불행 중 다행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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