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 '슈퍼위크'에서 읽어야 될 것은
현재 상황
한국 시간으로 31일 목요일 오전 3시에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 발표가 있었습니다. 결과는 4.25∼4.50% 수준의 현행 금리 동결이었습니다.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위원이 2명 있었지만 관세 충격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가격에 아직 반영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파월 의장의 신중론이 관철되면서 트럼프가 고대하는 금리 인하는 당분간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9시 30분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발표가 있습니다. PCE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달리 소비 품목별 가중치를 유동적으로 조정하여 대체효과를 비교적 잘 반영하고, 개인이 직접 지불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용주나 정부가 지불하는 것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의료비 비중이 높은 특징이 있습니다. 언론과 대중이 CPI에 더 크게 반응하는 것에 비해 연준은 CPI보다 PCE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지표로 더 중요하게 활용합니다. 즉 미국의 관세 충격이 미국의 물가 지표에 얼마큼 반영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오늘이라는 것입니다.
'슈퍼위크'라는 말이 이것 때문만으로 쓰인 것은 아닙니다. 8월 1일에는 미국 실업률 발표가 있고, 매그니피센트7(M7)으로 불리는 미국 초대형 기술주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아마존, 애플이 이번 주에 2분기 실적을 공개할 예정이거나 이미 공개했습니다. 그야말로 미국 증시를 결정짓는 중요 변수들이 정신없이 쏟아지는 한 주 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S&P500이 몇 주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긴 하지만 증시를 중장기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시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장기채 금리는 오래전부터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예고해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추가적인 쇼크까지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관세발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가 서서히 감지된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10년 만기 미국 채권 금리는 상승
연준은 지난 2024년 9월부터 12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총 100bp씩 금리를 인하했습니다. 하지만 10년물 금리는 오히려 급등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9월 16일 10년물 금리는 3.62%였습니다. 연준이 9월 18일 0.50%포인트 금리 인하를 발표하자, 10년물 금리는 10월 31일까지 4.29%까지 상승했습니다. 그럼에도 연준은 11월과 12월에 다시 각각 0.2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인하했고, 10년물 금리는 1월 14일 4.79%로 정점을 찍게 됩니다.
이런 10년물 금리 폭등은 2024년 하반기 물가 상승과 관련이 있습니다. 10월까지 정체되던 CPI는 11월 0.3%, 12월 0.4%, 1월 0.5% 상승했습니다. 물가를 충분히 잡지 않고 섣부르게 금리를 인하한 것이 화근이었던 것입니다. 이후 CPI는 다시 잠잠해지는 듯하다가, 관세 충격을 동반한 것인지 2025년 6월에 들어 다시 0.3%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 흐름이 계속 이어질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인 PCE가 바로 오늘 밤 9시 30분에 발표되는 것입니다.
10년물 금리가 중요한 까닭은 이것이 시장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통상 안전자산으로 간주되는 미국 국채의 금리는 인플레이션 상승이 우려되는 국면에서 상승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인플레이션율을 뺀 값인데, 명목금리가 그대로인 한편 인플레이션율이 오르면 자연히 실질금리가 낮아지는 효과가 생기기에 국채 시장 투자자들은 더 높은 명목금리를 요구하게 되는 결과로 채권 금리가 상승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무디스 신용등급 강등에서도 봤듯이 최근 벌어지는 장기채 금리 폭등 현상은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 운용에 대한 우려도 일부 섞여있고 이외에도 채권 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많기 때문에 10년물 금리 상승이 오롯이 시장의 인플레이션 우려를 반영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준이 2024년과 같은 금리 인하에 나선다면 시장은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관리할 의지가 없다고 해석하고 기대 인플레이션율을 높여 실제로 물가 상승이 일어날 개연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인플레이션 압력의 여파는 증권 시장까지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경제 성장이 아닌 관세로 인해 유발된 인플레이션이 소비자의 구매력을 약화시키면 이로 인해 고용지표까지 악화될 수 있고, 그렇다면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소비와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 현재와 같은 S&P500의 신고가 경신은 지속가능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히려 뼈아픈 조정과 폭락을 대비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이미 S&P500의 예상 수익률과 10년물 금리의 차이로 정의되는 주식 위험 프리미엄은 마이너스입니다. 이는 위험한 주식 투자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사실상 아무 리스크 없이 채권 이자를 받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으로, 현재 주식 시장이 과열되었다는 강력한 증거 중 하나입니다.
답은 고용 지표에 있다
그러니 고용 지표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발표될 PCE를 비롯해 차후 확인될 물가 지표들이 오름세일지라도 미국 경제 성장 자체가 둔화되지 않고 고용 지표가 견고하다면 금리 인하를 유예하면서 물가 잡기를 시도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희망과 달리 미국의 민간 부문 일자리 증가율은 8개월 만에 최저치를 찍었습니다. 고용 시장의 급격한 둔화는 아직까지 관찰되지 않지만 전반적인 약화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인플레이션과 고용 지표 악화가 겹친다면 미국 경기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접어든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할인율 상승에 취약한 기술주와 성장주를 중심으로 조정이 올 수 있고, 전반적인 미국 증시의 횡보 내지는 하향세를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게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우려했던 관세 충격이 현실화되면 지금도 위태로운 트럼프 지지율은 말 그대로 나락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결론
말씀드렸다시피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현재 4%대 중반으로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10년물 금리를 따라가는 미국의 주택 담보 대출 금리도 그만큼 오른 것인데, 기이하게도 미국의 부동산 업체인 오픈도어 테크놀로지스는 지난달 377% 급등했습니다. 부동산을 매입해 되팔아 시세차익을 얻는 구조인데, 이는 당연히 미국의 부동산 시황에 지극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수익모델입니다. 주택 담보 대출 금리가 올라 부동산 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기인 상황에서 이런 기업의 주가가 폭등했다는 것은 현재 주식 시장이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예증하는 또 하나의 좋은 예시입니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8~9월쯤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가시화되면 실물 경기도 침체기에 들어갈 개연성이 크고 주식 시장도 단기 조정을 받게 되리라고 봅니다. 물론 관세로 인한 충격은 일회적이기 때문에 경기가 관세로 인해 지속적으로 적대적인 외부 충격을 받지는 않겠으나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현실화되면 연준의 통화정책 포지셔닝이 대단히 곤란해질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맘때쯤 파월 의장이 퇴임하고 트럼프의 입맛에 맞는 인사가 연준을 이끌어 무리한 금리 인하를 단행하게 된다면, 미국 경제는 상당히 '좋지 못한' 처지에 놓이게 될 여지도 있겠습니다.
경제만 놓고 보면 그런데, 변수가 있습니다. 트럼프는 이미 앱스타인 스캔들로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 정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보통 미국 대통령이 국정 운영이 어려워지는 지지율의 마지노선을 40%대라고 보는데, 트럼프의 지지율은 취임 초인 현재 이미 37%까지 내려앉은 상황입니다. 여기에 경기 악화까지 겹친다면 조기 레임덕 논란도 피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트럼프 같이 예측불가능하고 급진적인 수단을 즐겨 쓰는 인물이 이 난관을 어떻게 돌파하려 할까요?
윤석열이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 때 그걸 믿은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트럼프는 어떤가요? 국방장관을 비롯한 안보 라인을 모조리 예스맨으로 채워놓고 있지는 않나요? 트럼프가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 않지만, 정국이 자기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고 여러모로 궁지에 몰릴 때 '위험한 행동'을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이 될지는 전혀 알 수 없다는 게 트럼프의 예측불가능한 특징이겠으나, 저는 왠지 그 불안한 가능성을 다소 진지하게 평가해야 하는 순간이 조만간 도래할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듭니다.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