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쩍 뛴 국채 금리, 떨어진 엔화 가치
다카이치 총재는 아베 정권 시절부터 '재정 비둘기파'로 불렸습니다. 경제 성장을 위해 정부 부채를 감수한다는 것인데, 이에 따라 진행된 각종 산업 정책 보조금이나 공공 사업에 차입금을 쏟아붓는 정책은 지금에 와서는 그 효과가 미미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다카이치 총재가 그때와 똑같은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따라 확장적 재정 운용이 확실시되자 시장은 즉각 반응했습니다. 일본의 40년물 국채 금리는 한때 0.17%(17bp) 상승해 3.55%에 달했고, 10년물 국채 금리는 2008년 이후 최고치인 1,68%를 경신했습니다. 향후 있을 추가 국채 발행에 따라 고금리 국채 매물이 쏟아져 현재 자신이 쥔 국채의 가격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국채 딜러들이 선제적으로 내다 판 결과입니다.
한편 지난 6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 환율은 일시적으로 1달러=150엔 중반 대를 기록하면서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급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까닭은 2022년 이후 한때 4%를 찍을 정도로 악화되어 온 일본의 인플레이션 때문입니다. 확장적 재정 운용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다카이치 총재의 금리 인상에 대한 부정적인 메시지 등에 반응하면서 당국의 인플레이션 관리 의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며 엔화 약세가 연출된 것입니다.
이는 단기적으로 수출 기업들에게는 호재입니다. 일본의 대표적 수출 기업인 도요타 등 자동차 기업들의 주가가 뛰었고, 국방 장비와 건설 관련 주식들이 덩달아 오르면서 닛케이 지수는 5% 대 급등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통상 인플레이션에 비해 임금상승률이 경직적임을 고려하면, 높은 인플레이션율은 서민들의 실질임금 하락으로 이어져 내수 경기 침체를 유발할 가능성이 큽니다. 닛케이의 반등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인플레이션에 신음하는 일본 서민
산업 정책 보조금이나 공공 사업 명목 혹은 국방비 지출 확대 등으로 확장적 재정 운용을 이어나가면 시장에 돈이 풀리면서 통화 가치는 더욱 하락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더욱 심화되면 일본 서민 경제는 파탄날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인플레이션을 관리하기 위해 기준 금리 인상 및 엔화 절상을 통한 수입 물가 관리를 시도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다카이치는 모두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다카이치가 총재로 당선되자 시장은 10월 28~29일에 열릴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금리 인상이 결정될 확률을 기존 60%에서 24%로 크게 낮췄습니다. 다카이치가 공개적으로 일본은행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발언하고 다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다카이치는 일본은행의 공개시장조작을 통한 환율 정상화에도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엔화 약세를 유도해 수출 기업의 가격경쟁력 확보를 도와야 한다는 것인데, 하지만 이렇게 되면 엔화의 구매력이 떨어져 수입 물가가 더욱 높아지는 결과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다카이치가 바보 같은 경제 정책을 주장하는 이유
아베 정권 때부터 다카이치가 뿌려온 각종 보조금이나 공공 사업 등은 일본 내 지역사회와 경제 분야 곳곳에 이해관계자들을 만들었습니다. 지역 정치인, 기업, 관료 등으로 얽힌 이 보조금 수혜 집단들은 일종의 기득권이 되었고, 각 지역구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키우게 됩니다. 다카이치가 재정 적자를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이들에 대한 보조금 등을 줄이게 되면, 이 보조금 수혜 집단을 지역 뿌리조직으로 두고 있는 자민당 내부로부터의 즉각적인 반발을 피할 수 없을 공산이 큽니다. 이런 식으로 자민당이 자신의 통제권을 완전히 이탈하는 날이 온다면 다카이치는 총리에서도 총재직에서도 내려올 수밖에 없고 정치 인생도 마무리하게 됩니다.
즉 다카이치가 실제로 경제 문외한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그녀는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입니다. 노령 연금과 지역사회 보조금은 일본의 정부 부채의 가장 심각한 주범이지만, 동시에 자민당이 지지층을 관리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자민당이 자신의 집권을 영속시키는 대가로 발행한 막대한 정부 부채는, 현재 일본의 청년들이 세금으로 상환해야 될 부담으로 오롯이 전가됩니다. 결국 어떻게 보면 다카이치는 자신의 정치 생명과 자민당의 집권 영속을 위해 자국 청년들의 미래를 헐값에 팔아치우고 있는 셈인 것입니다.
다카이치 정권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다카이치 총재가 인플레이션이나 막대한 정부 부채 관리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그녀의 인터뷰 등을 통해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는 기준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데, 이는 단기적으로 경기 위축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갓 총리가 되어 의욕적으로 일을 할 타이밍에 기준 금리 인상으로 지지율이 한풀 꺾인다면, 조기 레임덕뿐만 아니라 정권 수명 단축까지도 우려해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다카이치 개인으로서는 바라지 않는 바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플레이션을 방치하거나 심지어 부추기려는 지금의 다카이치 노선이 정권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되는가 보면 그것도 아닙니다. 높은 인플레이션은 가계의 실질임금을 줄이는 효과를 낳습니다. 단기 임금경직성 또한 문제이지만,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령층은 고정적인 연금 소득으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이들의 실질소득 또한 낮아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는 다카이치가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생활 수준 향상'과 전혀 딴판인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카이치가 일본 우익들의 기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이 정권 또한 얼마나 오래갈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권 초기에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해 지지부진한 지지율을 유지하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에 의해 내각불신임을 맞고 조기 총선 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일본 언론을 살펴보니 입헌민주당을 자민당 연정에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이 보이던데, 민주당이 제정신이면 자민당과 영합하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다카이치의 對한국 스탠스가 강경 우파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닐 수 있겠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생각보다 일찍, 아마도 이재명 정부 임기 안에 또 찾아올 수 있는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이 얼마나 무너질지 그리고 고이즈미 신지로는 과연 그때까지 살아남아 차기 일본 총리가 될 수 있을지가 더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이재명 정부가 다카이치의 對한국 적대 정책에 크게 과민반응할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반일 정서를 부추겨 정국을 전환하거나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꼼수를 쓸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