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은 핵잠수함을 갖고 싶어 했나
지난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별안간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해 주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바이든 정부를 향한 끈질긴 로비가 있었고, 노무현 정부 때는 미국의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개발을 진행하다 실패한 적도 있었을 만큼 한국 정부는 오랜 기간 핵잠수함 보유를 숙원 사업으로 여겨왔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핵잠수함의 기술적 특징과 전략적 가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선 핵잠수함의 가장 큰 기술적 특징은 '무제한 잠항'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승무원들의 체력이 허용하는 한 90% 이상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는 경우 사실상 선체의 내구연한인 30년 간 핵연료를 교체할 필요가 없어 이 기간 내내 작전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특징은 잠수함의 최대 전술적 가치인 '은밀성'을 극대화합니다. 심해에 깊이 잠항하면 현재 인류의 기술력으로는 사실상 탐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상에서는 공기가 매질인 것과 달리 수면 아래에서는 밀도가 높은 물이 매질이기 때문에 전파의 산란을 고려하면 심해까지 탐지 거리가 닿지 않는 탓입니다. 핵잠수함은 배터리 충전을 위해 주기적으로 수면 위로 부상해야 하는 디젤 잠수함과 달리 이론상 영구적으로 잠항한 상태로 항해할 수 있어 이러한 '은밀성'이 특히나 두드러집니다.
이러한 '극대화된 은밀성' 덕분에 핵잠수함은 설령 본토가 공격받아 초토화가 되어도 작전 능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핵잠수함에 SLBM 등을 결합해 적대국의 본토에 탄도미사일을 날릴 수 있다면, 사실상 '완전한 2차 반격 능력'을 갖게 되는 셈이 됩니다. 만일 중국이 한국에 전략핵무기 공격을 감행하여 지상에 있는 한국의 모든 군사 자산이 무력화된다고 하더라도, 이 핵잠수함에서 탄도미사일을 여전히 발사할 수 있는 한 중국은 반드시 한국의 보복을 맞게 됩니다. 즉 핵잠수함의 최대 전략적 가치는 '완전한 2차 반격 능력'에 있는 셈입니다.
트럼프는 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했나
외견상 이재명 대통령이 핵잠수함을 언급한 직후에 트럼프가 승인을 한 것처럼 되었지만, 사실은 사전에 의제 조율과 내부 검토가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주제를 회담장에서 불쑥 꺼내는 것은 대단한 외교적 실례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의전에 만전을 기한 이재명 정부가 그러한 시도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형태로 승인이 난 것은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가 중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 주변국들에게 지극히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가 즉흥적이고 별생각 없이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이번 핵잠수함 승인 결정도 그런 트럼프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사안의 중대성을 감추려 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재명 대통령의 제안을 듣고 트럼프가 몇 주 간 진지하게 숙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주변국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이것이 마치 미국의 중대한 군사 전략적 결단으로 비쳐 한미 모두에게 부담스러워졌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이면에서 어떤 손익계산을 했길래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것일까요?
①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의 영향
미국의 조선업은 현재 거의 사장된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런 미국 조선업을 부활시키고 해군의 군함 건조 계획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기 위한 기반을 다질 모멘텀을 마련하려 한국과 '마스가'를 체결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마스가'로 해군을 재건할 계획을 살펴보니 한국의 조선 기술로는 수상함 건조와 유지 보수는 가능한데 핵잠수함 건조 및 유지 보수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한미 실무진들은 발견했을 것입니다. 미국은 디젤 잠수함 없이 60여 척의 핵잠수함만 운용 중이기 때문에 한국이 핵잠수함 관련 건조 및 유지 보수 역량이 없다는 것은 '마스가'를 체결한 현재, 미국의 안보에도 문제가 된다고 미국 정부는 판단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조선업 역량을 보유한 한국에게 핵잠수함 기술을 넘겨주면서 핵잠수함 보유 또한 허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배제된 것인지 의문스러울 수 있는데, 일본 사회는 아직도 핵무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매우 짙은 사회입니다. 이전에도 자민당 정권 시절에 미국이 주일미군에 핵무기를 배치하려다 큰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마찬가지로 핵연료를 무기화하는 핵잠수함 또한 우익을 제외한 일본 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는 일본의 정치인들 또한 미국에 대해 핵잠수함 보유 로비를 한국보다는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평화헌법 위배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입니다.
② 북한의 핵잠수함 보유 가시화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로 인해 가장 자극을 받을 국가는 북한입니다. 북한은 현재 핵잠수함 보유를 국책 과제로 밀어붙이면서 러시아와 밀접하게 접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때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가 승인이 난다면 러시아로서는 북한에게 핵잠수함 관련 기술을 넘겨주지 않을 명분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양국이 핵잠수함 보유 승인을 공식화한 것은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핵잠수함 기술 공여가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과 관계없이 상당히 진척되어 있거나 이미 진행 중이라는 첩보를 한미 정보 당국이 입수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일 북한이 핵잠수함을 보유하게 된다면 한국의 대잠 능력 또한 크게 보강되어야 합니다. 수상에서 잠수함을 탐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데다 핵잠수함은 디젤 잠수함 보다 속도도 3배가량 빠르기 때문에 핵잠수함은 핵잠수함을 통해 견제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입니다. 그렇다고 미 해군의 핵잠수함이 서해나 동해에 상시 주둔하고 있을 수도 없으니 정세상 어쩔 수 없이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를 승인해 줄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었을 것입니다.
③ 한국의 미국에 대한 군사적 의존도 심화
미국의 핵잠수함 관련 핵심 기술을 이전받아 핵잠수함을 건조하게 된다면 한국은 앞으로 핵잠수함 건조와 유지 보수 등에 있어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미국이 특정 부품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 기술적 문제가 생길 수 있는 한국의 핵잠수함은 사실상 미국의 완전한 통제 아래 있게 됩니다. 핵잠수함과 같은 국가 전략 자산이 미국에 크게 의존하는 것은 그만큼 한국의 미국에 대한 의존도 심화를 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이미 충분히 미국에 의존적이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한층 더 미국에 의존적이도록 만들어 두면 유사시에 중국 등 적성국을 편들기는커녕 중립을 유지하기도 어렵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이렇게 미국이 한국의 핵잠수함에 대해 일정한 지분을 갖게 되면 미국은 한국 핵잠수함의 작전 현황이나 위치 등을 공유할 것을 요구할 명분도 쥐게 됩니다. 즉 이 말은 미국은 자국의 비용 없이 사실상 중국의 코앞에서 핵잠수함을 상시 배치해 활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메리카 이외에 지역에서 사용하는 국방비를 줄이고 동맹국들에게 미군의 부담을 분산하려는 트럼프의 방향과 큰 틀에서 일치하는 정책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미국이 '기술을 공유'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
미국과 영국은 핵잠수함 연료로 90% 이상의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HEU)을 사용합니다. 핵연료를 30년 간 교체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무제한 잠항이 가능해지는 이점이 있지만 핵잠수함의 사용 후 연료를 재처리하면 곧바로 무기급 플루토늄 등을 추출할 수 있다는 위험성 때문에 그 기술의 이전은 AUKUS의 호주를 제외하고는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져 왔습니다. 참고로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무장이 초임박했다고 난리를 떨며 이란의 수뇌부를 몰살하고 미국에 핵시설 초토화를 부탁한 때가 이란의 우라늄 농축이 60%에 이른 때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핵잠수함 관련 기술을 한국에 이전한다는 것은 이러한 HEU를 연료로 하는 핵잠수함 관련 기술이 넘어올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즉, 한국은 핵잠수함을 보유하는 대로 무기급 플루토늄을 축적할 수 있는 '잠재적 핵보유국'이 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미국이 이러한 사용 후 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할 재처리를 허락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핵잠수함의 운용 효율을 높이기 위해 재처리 후 발생한 플루토늄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핵잠수함 운용이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여하간 이러한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을 비축하는 국가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은 핵보유에 성큼 다가섰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국의 핵에너지 관련 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핵보유까지는 기술적 난관이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실현하게 하는 물리적인 설비와 재료의 확충에 시간이 걸릴 뿐이라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핵잠수함의 가장 큰 전략적 가치는 '완전한 2차 반격 능력'에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2차 반격으로 날아오는 미사일이 현무와 같은 평범한 전술 탄도미사일이라면 2차 반격 능력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약간의 피해만 감수한다면 한국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핵잠수함은 핵미사일 탑재로 완성됩니다. '2차 반격'이 자국의 영구적인 초토화를 의미하게 된다면 그 어떤 국가도 한국을 군사적으로 시험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핵잠수함 개발에 그렇게 목말라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20년 전만 해도 한국이 핵잠수함을 보유하는 것을 미국이 허락할 일은 결단코 없다고 다들 믿어 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국제 정세는 충분히 바뀌었고 불가능할 것만 같던 핵잠수함 보유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핵무기 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어떻게 잘 설득해 본다면 핵무기 보유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 모릅니다. 그리고 진정한 핵잠수함의 활용을 위해서 핵무기 보유는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또 다른 숙원 사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