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그러게요..
그렇게 난 임신중독증 '의심' 환자로 퇴원 2주 만에 재입원을 하게 되었다. 세쌍둥이 임신 32주 차였다.
입원을 해서도 단백뇨와 혈압은 정상이었다. 그런데 몸이 자꾸만 부었다. 얼굴이 땡땡해지고 손가락도 퉁퉁 부어 주사 라인을 꽂는데도 크게 고생했다. 다리는 코끼리 다리가 되어갔고 신발이 맞지 않았다. 배는 점점 더 불러왔고 예전에는 새로운 주수마다 몸이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면 입원 후에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몸이 더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몸을 점점 더 가누기가 힘들었다. 나는 아기집 3개 모두 양수가 많은 편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다른 산모들에 비해 배가 더 많이 나와 보였다. 실제로 커튼을 열고 들어오는 의료진들이 내 배를 보고 여러 번 주춤거렸었다.
"어머나.. 산모님 괜찮으세요? 배가.. ",
"제가 본 세쌍둥이 산모들 중에 가장 배가 크신 거 같아요.. 힘드셔서 어떡해요.."
병원 침대에 옆으로 누우면 침대가 가득 찰 정도였으니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몸이 점점 무거워져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35주가 될 때까지 최대한 버티는 것 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었다. 내 마음은 35주 아니 36주까지 악으로 깡으로 버틸 준비가 되었지만 숨 쉬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니, 내 비싼 심장이 걱정되었다. (나는 선천성심장병으로 태어나 개흉수술을 2번을 하였고 그래서 남편과 나는 우스갯소리로 내 심장을 비싼심장이라 부른다.)
의료진에게 요청해 심장초음파를 찍어보기로 했다. 심장초음파를 찍으려면 한 자 세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하고 의료진들은 심장이 잘 보이도록 가슴 주변을 세게 눌러야 하는데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다. 당시 나는 정자세로 누울 수 없었다. 정자세로 누우면 갈비뼈에 있는 아들 둘이 명치까지 치고 올라와서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조금 오버해서 말하자면 아가들이 입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정자세로 누워도 왼쪽으로 누워도 오른쪽으로 누워도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고 계속 헐떡이는 나 때문에 검사를 하는 의료진들도 힘들어했다. 계속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며 걱정해주시는데 이런 몸뚱이로 검사를 받아야 하는 내가 더 미안하고 죄송했다. 너무 힘들어서 줄줄 흐르는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몰래몰래 눈물을 훔쳤는데 이미 눈치챈 선생님이 내 손에 휴지를 쥐어주셨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검사를 마친 선생님은 대체 이런 심장으로 어떻게 세쌍둥이를 임신하고 있는 거냐며 혀를 내둘렀다. 보통 선천성심장병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20대가 되어도 30대가 되어도 소아청소년과에서 진료를 봐야 하는데, 입원했던 병원에서는 심장내과에서 검사를 진행했다. 활로4징의 복잡 심기형으로 태어난 나는 소아청소년과에서는 기적적으로 살아나 정상인에 가깝게 건강하게 살고 있는 사람인데, 심장내과에서 본 내 심장은 살아있는 게 기적인 정도로 보는 것 같았다.
소아청소년과 담당 선생님에게도 세쌍둥이 임신이 무리 없음을 땅땅 인증 받고 세쌍둥이 출산을 결심했지만, 새삼 내 몸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 하지만! 난!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견딜 수 있는 사람이니까 하늘에서 내게 아이 셋을 점지해준 것이 아닐까,
그것도! 무려!
한! 번! 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