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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Apr 09. 2019

오타 수두룩했던 팬클럽 회보

“사람들은 우리가 서태지와아이들 덕분에 컸다고 알고 있지만, 실은 Ref 팬클럽 덕분에 유명해진 거야. 이렇게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데가 없거든. Ref 팬클럽 보고 우리한테 일을 맡기는 연예인들이 많으니까.”

사장님이 그런 말을 공공연히 할 정도로 Ref 팬클럽은 유명했다. 회비를 내면서 팬클럽에 가입해 있는 사람들이 2천명이 넘었다. 요즘 글로벌로 뻗어있는 BTS의 아미와 비교하자면 새발의 피도 안되겠지만, 당시만 해도 그 정도면 전국 최강의 규모였다. 

Ref 팬클럽의 회장은 꽤나 유명했다. Ref 팬클럽은 군대와 비슷하다는 말이 떠돌 정도로 팬클럽문화가 수직서열화되어 있었는데, 그 정점에 회장이 있었다. 팬클럽과 함께 일을 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일을 시키면 잘 했고, 우리가 신경 쓸 일 없게 처리했으니 똘똘하고 마음에 드는 학생이었지만, 그의 눈에 들지 않은 다른 팬클럽 회원들 입장에선 싫었을 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팬클럽이 뭐라고 거기서 서열 정하고, 언니들 말 안들으면 줄빳다를 맞느니 했는지 기가 막히지만, 당시 소문은 그랬다. 그래서 Ref 팬클럽은 줄도 잘 서고, 응원도 조직적으로 한다고 했다.


하여튼 그 팬클럽의 회비를 우리 회사가 받았으므로 그만큼의 보답을 해야 했다. 그 보답이 바로 팬클럽 회보 발송과 1년에 2번 있는 팬미팅이었다. 다른 연예인들도 회보를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Ref 팬클럽은 회보를 만들었다. 기수별로 한두 번의 회보를 만들어 발송했다. 처음 회사에 들어가 회보를 보고 좀 놀랐다. 초등학교 벽신문 수준의 회보라, 이걸 보고 애들이 돈 낸 거 아까워하면 어쩌나 싶었다. 그래서 나름 잡지처럼 코너를 만들고, 원고를 써서 볼만하게 만들었다.


나도 카피라이터로서 신입이었지만 디자이너들 역시 신입들이었다. 

한 명은 서태지와아이들의 열성팬으로 일을 도와주다가 정직원이 된 케이스로, 손으로 그리는 그림(일러스트)을 무척 잘 그렸는데 컴퓨터 편집에는 문외한이었고, 또 한명은 학원에서 속성으로 몇 달 공부하고 와서 편집을 하는 디자이너였다. 원고를 아래아한글 파일로 넘겼더니 그걸 프린트해서 붙여놓고, 맥(MAC) 자판으로 다시 쳤다. 그러니 옮기는 과정에서 오타가 엄청 발생했다. 아무리 봐도 파일 째로 넘겨 거기서 변경하는 기술이 있을 것 같은데, 그도 몰랐고, 나도 몰랐다. 우리 중 그런 기술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엔 인터넷도 없었기에 그걸 어디 물어보거나 검색할 수도 없었다. (나중에 잡지를 시작하고 나서야 txt파일로 넘기면 바로 변환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교정지가 나왔는데, 오탈자가 엄청났다. 나는 사장님께 오타 수정해서 다시 찍자고 말했지만, 디자이너 출신의 사장님은 색깔이 이상하면 모를까 글자 몇 개 틀린 걸로는 교정지 다시 뽑기 곤란하다고 했다. 국문과 출신의 자존심으로 불을 뿜으며 내 의지를 주장했지만, 사장님이 됐다는데 뭘 더 어떡하겠는가? 교정지 뽑는데도 돈이 든다는데. 나는 자리로 돌아와 혼자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렇게 나온 회보를 접어서 봉투에 넣고, 주소 붙여서 우편으로 보내는 것까지가 우리의 일이었다. 2천 명에게 회보를 보내기 위해 반나절 정도 팬클럽 아이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 봉투를 접고, 풀을 칠하고, 주소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일사분란하게 진행됐다. 

원래는 알바를 고용해 돈을 주고 시켜야 하는 일이지만, 팬클럽 회원들은 앞다투어 이 일을 하겠다 했고(서로 오겠다며 경쟁도 치열했다), 회사에선 따로 인건비 들일 필요 없이 짜장면과 탕수육 값만으로 반나절 만에 일을 처리할 수 있었으니 아이들을 자주 불렀다. 주말에 남아서 이 아이들을 감독하며 같이 일을 하는 것도 담당자의 몫이었다.


그렇게 회보가 팬클럽 회원들의 주소로 배달되었고, 회보를 받은 아이들은 무척 좋아했다. 이전까지 오던 회보와 수준이 다르다며, 아주 재밌다며 좋아해주었다. 오타가 많았지만 아이들에게 오타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리 오빠 얼굴 잘 나오고, 읽을거리 많으면 장땡이었다. 그렇게 나는 생경하던 팬클럽 문화에 점점 익숙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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