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뒷 Book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요 Jul 04. 2019

열등의 계보

나라가 망하고 큰 형을 공부시키기 위해 하와이로 이민간 1세대 김무 씨로부터 부모가 다 죽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6.25 전쟁 등을 겪으며 실종된 2대 김성진 씨, 혼혈아로 태어나 조폭이 된 3대 김철호 씨, 그리고 이 책을 쓴 4대 김유진 씨로 이어지는 한 집안의 이야기를 경상도 사투리 구술체로 써놓은 소설.



사실 스터디하고 바로 기록을 했어야 했는데, 긴 시간 여행을 다녀오고 다음 스터디까지 하고 보니 기억이 희미해져 이번 뒷북은 발제 내용 중 나의 대답에 기반한 에세이 형식으로 쓸 수밖에 없겠다.

<열등의 계보>는 한경 청춘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작품으로, 20대의 작가가 썼는데 마치 한 평생을 산 듯한 할아버지의 관조하는 듯한 태도와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 문체가 특징인 소설이다. 책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렸다. 좋았다는 쪽들은 여운이 오래 가고, 구비문학 같은 말투가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고 했고, 싫다는 쪽들은 자기 시선보다는 외부 시선을 답습하며, 천명관의 <고래>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따라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싫다는 사람들이 더 많은 책이 아니었나 싶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고래>를 떠올리지 않기란 불가능한데, <고래>가 나중에 나왔다 하더라도 <고래>에 손을 들어줬을만큼 그에 못미치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소설 중에 더 품질이 나쁜 소설도 많기에 20대의 작가가 이만큼 쓰기도 쉽지 않다는 생각을, 창작을 해본 자로써 나는 해본다. 일단 남자들의 병신짓을 이토록 잘 보여주며, 부산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잘 표현했다(P)는 점에서 칭찬하고 싶다. 

최근 개봉하여 화제가 된 영화 <기생충>을 떠올리며 읽은 사람도 있었는데, 밑바닥 인생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묘하게 비슷한 지점이 있었다. 

알고보니 이 작가는 파워블로거로 유명하다고 한다. 신형철의 <슬픔의 공부하는 슬픔>을 자기 블로그에서 대차게 깠다던데, 찾아본다 해놓고 공사가 다망하여 아직 보지 못했다. 



이후 책에 나오는 내용을 토대로 우정과 인생과 열등, 가훈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자신의 우정관에 대한 질문이 나왔는데, 최근 <알라딘>에 푹 빠진 E는 지니와 알라딘의 우정을 시니컬하게 바라본 친구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나 역시 그런 종류의 마상을 입은 적이 종종 있기에 그건 어쩌면 생각이 달라서가 아니라 같은 생각에 대한 이름붙이기(=표현)이 달라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해줬다.

또 염세적이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Y는 상대와의 관계를 항상 100%에서 시작하여 실망할 때마다 퍼센테이지가 깎이고 깎여 그게 0이 되면 끝낸다고 했다. 나도 누군가와 관계를 시작할 때 장점부터 보는 사람인데 그게 좋다고만 생각했지 이렇게 염세적으로 나아가는 출발이 된다고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해 충격 받았다.

친구에게 서운한 것이나 갈등이 생기면 그걸 극복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때문에 서서히 멀어져 관계가 끊어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젊을 때는 실망이나 다툼으로 친구를 잃기도 했지만, 나이 들어서 그런 경우가 줄었다. 돌이켜 보니 그게 기억력의 문제였다. 나이 들면서 누가 못했던 것에 대한 기억도 흐려져서 다시 그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렇게 지내다 보면 "아...얘 이런 사람이었지." 하게 되고, 그런 패턴이 반복된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탄식했다. 니네도 나이 들어봐. 누굴 미워하는 것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단다.

이 책을 관통하는 질문 '그래서 거기 누가 있드냐'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내가 나로 살아왔나, 아니면 누가 살라는대로 살았나의 문제인데, 나는 나로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는 최소한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가 나를 끌어온 생각이었고, 그건 결국 남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말이었다.

이에 대해서 '우리'가 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K가 있었고, '부처가 오면 부처의 조선이 되고..'라는 말이 결국 남의 시선에 얽매이는 국민성을 잘 나타내주는 말이 아니냐는 Y의 말도 있었다.

가훈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었는데, 자수가 수놓아진 '믿음 소망 사랑'이나 아버지가 병원에서 하셨다는 '거짓말 하지 말라'는 가훈이 기억에 남는다. 국민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가훈 써오라면 아빠는 항상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붓글씨로 써주곤 했는데, 천성이 최선을 다하는데 모자란 나는 그 말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수십년이 지나고 보니 울 아빠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결국 가훈이나 좌우명은 자신이 잘 하지 못하는 것을 쓴다는 걸 알게 되었다. 평생 그런 생각 안하다가 자식이 생기고, 학교에 보냈더니 "가훈 써오라는데요."해서 부랴부랴 고민해서 써줬을 그 시절의 아빠가 떠올라 애닯다. 요즘 학교들은 그런 거 좀 안했으면 좋겠네.


어쩐지 성진과 철구를 닮았던 용산전쟁기념관의 조각상


우리 역사의 가장 뜨거운 시대였던 6.25를 관통하는 소설을 토론하기 위해 발제자 E는 용산전쟁기념관 안의 카페를 모임 장소로 택했다. 용산전쟁기념관에 들어섰을 때 바로 보이는 조각이 마치 전쟁 중의 성진과 철구 같지 않냐고 물었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각자의 한 줄

시대에 걸친 인생 도돌이표. 허무함 _ K
시대의 흐름에 어떻게 순응할 것인가? _ P
그기 어디에서 중요한 겁니꺼? 기준은 나로부터. _ Y
열등도 우등도 없는 세상을 꿈꾸며 _ O
열등의 계보 속에도 나는 그 속에 있다 _ E
언젠가 '나'의 삶을 살았다고 말하고 싶다 _ Y
열등이든 우등이든 나는 나의 삶을 살자 _ J
열등의 계보를 끊는 것은 나다. 나의 조선이다. _ Y
용산전쟁기념관 안 라스베이글


매거진의 이전글 직업으로서의 음악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