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보다 적나라한 르뽀
<고기로 태어나서>는 뛰어난 글솜씨를 자랑하는 (일종의) 르뽀라이터 한승태가 직접 양계장, 양돈장, 개농장에 취직하여 일한 경험을 써내려간 우리 시대 가축들의 고난기이다. 이 책의 앞 10여장만 읽어도 우리는 계란이나 치킨을 예전과 같은 눈길로 보지 못한다. 뒤의 양돈장, 개농장 역시 마찬가지다. 먹기 위해 기르는 가축에 인간들이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그에 따라 어떤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는지, 어떤 다큐나 영화보다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우리는 좀 덜 먹을 필요가 있으므로, 밥을 먹는 누구에게나 이 책을 추천한다.
책의 내용 자체가 매우 충격적이므로 일단 어떻게 읽었는지 먼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은 :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불쾌했다. 내가 좋아하는 고기가 이토록 비인권적으로 비위생적으로 함부로 다뤄진다는데 충격 받았다. 이렇게 인상쓰며 본 책은 오랜만이었다. 읽다 너무 숨이 막혀 중간에 책을 덮기도 했을 정도로 힘들었다.
영 : 닭 부분만 읽었는데도 작가가 글을 정말 잘 쓴다고 느꼈다. 단톡방에서 했던 말처럼 새롭고 놀라운 책이었다.
우 : 닭 부분을 읽는데 처음에는 속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인간이란 적응의 동물인 건지, 다 읽고 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 치킨 먹었다.
광 : 다른 분들에 비해 여기 나오는 내용들을 실제로 경험한 것도 있고 좀 면역력이 있는 상태에서 읽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동물 보다는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진 : 나도 일하는 분들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이제까지 알았던 농촌은 완전히 이미지였구나, 한가롭고 정겨운 것만 생각했는데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 나에게는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설마 저럴리가 없어 하는.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죄책감도 많이 느꼈다.
이 : 내가 잘 보는 종류의 책이 아니라서 한달 내내 붙들고 읽었다. 작가가 글을 굉장히 잘 쓴다. 내가 독립하면서 제일 잘한 건 복지란을 사 먹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포 : 하수구의 뒷면을 보는 재미라고나 할까? 너무 적나라해서 짜증났다.
정 : 작가의 글이 은유의 글과 닮았다고 느꼈다. 음식물 쓰레기를 동물이 먹을 거라고 생각한 적 없었는데, 개농장으로 보내진다는 게 충격이었다. 그 썩은 걸 누군가 먹는다는 게...
옥 : 어릴 때 닭잡는 것도 보고 친구 아버지가 개농장도 해서 좀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충격이었다. 작가가 너무 용기 있어서 부담스럽달까? 영화 '옥자'보고 고기 안먹는 사람들이 속출했는데, 그 사람들은 이 책 보면 안될 듯.
이 과정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할 때 기준이 '동물이 먹을 수 있는가'라는 사실이 언급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수채바구니를 털어 넣는 건 안된다, 왜냐하면 세제가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양계장 다큐 이야기도 나왔는데, 이 책은 어쩌면 다큐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적나라하게 현실을 보여준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다큐에서는 병아리의 목을 비트는 손의 느낌이나 4마리가 함께 들어가 날개뼈가 부러지는 장면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밀양에서 노지에 닭을 놓아 기르는 은의 부모님 농장에서 크는 닭들은 얼마나 축복받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700마리를 기르다 비좁아 보여 200마리로 줄이셨다는 그 닭의 달걀 껍질이 일반 달걀 껍질과는 비교도 안되게 매끌매끌 단단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필 그날 우리는 그 달걀을 받았네)
다음으로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무엇이었냐는 발제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병아리 덩어리 (다들 고개 끄덕끄덕), 목을 비틀었는데도 안죽어서 패대기 치는 장면, 개 2마리를 전기로 죽일 때의 농장주의 태도, 어미 돼지가 의식도 없이 새끼를 밟아 죽이는 장면 등이 언급됐고, 특이하게도 '신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며 나를 만들었어'라는 대사에 울컥 얹힌 회원도 있었다.
이름 붙여놓은 닭이나 키운 닭을 잡아먹은 경험들이 나왔고, GMO고기와 가짜계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다음으로 동물 말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에 대한 인상적인 이야기는 무엇이었냐는 질문이 나왔다.
정 : 저녁 밥 먹으려고 밥 차려놨는데 사장이 똥 안에 들어가서 주워오라 하고, 그걸 박차고 나가 해고된 뒤 엉엉 우는 장면. 나도 경험해본 장면이라 얹혔다.
이 :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혐오가 재생산된다는 말.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잘해주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게으르다, 별로다 하는 부분.
우 : 평소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말해왔는데, 이 책 읽으며 그게 위선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옥 : 소시지를 여자들에게 갖다주는 부분.
광 : 어쩐지 '고기로 태어나서'의 마지막편은 사람일 것만 같다.
진 :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아버지만 해도 공장에 외국인을 고용하는데 아버지도 똑같은 소리를 한다. 이 일들을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우리가 하지 않으려고 하니 외국인들이 와서 하는 거 아니냐.
정 : 이 일과 최근 제철소 취재 등을 통해 남자들의 노동이 대단히 위험하고 힘들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읽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 책 읽어보라고 권하기도 하고, 치킨을 일주일 간 안 먹기도 했다. 비록 그 채식이 몇날 가지 않았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고 먹는 것과 알고 먹는 것은 다를 것이라 생각(물론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만)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2019년 8월 31일(토)
<고기로 태어나서> (한승태 | 시대의창)
참석자 : 은, 옥, 진, 영, 우, 포, 광, 정, 이 (총 9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