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후기는 빨리 올려야 된다. 밍기적거리며 일주일이 넘어가니 메모해놓은 글을 봐도 뭔 소린지 모르겠는....^^;;; 그리하여 이번 후기는 이 책을 읽고 내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과 모임 당시에 회원들이 했던 말들 중에서 기억에 남아있는 것들을 얼기설기 엮어 쓰는 수밖에 딴 수가 없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꽤나 베스트셀러였다. 제목으로는 철학책인 것 같은데, 본격 철학책이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많이 팔릴리가 있나 싶었더니, 역시나 자기계발서였다. 인사관리와 컨설팅을 주로 하는 일본인 저자가 일을 하면서 뽑아먹은 동서고금의 철학자들의 주장을 50개로 압축해 정리해놓은 책이다. 본격 철학책보다 읽기 쉽고,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부분들을 잘 골라 설명하고,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해놔서 인기를 끈 것 같다.
르 상티망, 앙가쥬망, 휴리스틱, 파라노이아, 스키조 프레이아, 악마의 대변인, 게마인 샤프트, 공정사회,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반증가능성 등 어려운 단어가 한가득 나오는데, 그걸 다 소화하기 쉽도록 잘 요리해서 건네준다. 플라톤에서부터 최근의 경제심리학자까지 다 아우르지만 저자가 중요하게 반복하는 이슈가 몇가지 있다.
인사 관리를 맡은 사람이라 그런지 성과급으로 능력의 최선을 끌어내고 혁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그 첫번째. 그걸 위해 예고된 대가, 스키너의 심리실험, 인지부조화 현상에 대해 설명한다. 이 부분에 대해 회원들의 의견이 갈렸는데, 성과급을 주지 않기 위해 사측의 음모가 아닌가 하는 사람과 실제 성과급 적용을 위해 매번 자기평가를 할 때마다 얼마나 모욕적인지에 대해서 경험해본 사람의 의견이 갈렸다. 어쨌든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돈은 아닌 것 같다. 인지부조화가 결국 몰입(미하이 칙센트 미하이의 그 몰입)에 까지 이르면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몰입의 즐거움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이는 내가 왜 돈도 되지 않는 블로그를 15년째 하고 있는가에 대한 확실한 설명이 된다. ㅎㅎㅎ
사람은 자유보다는 권위에 복종하는 존재라는 주장이 두번째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앙가쥬망, 리바이어던이 전부 그런 사람의 속성을 파헤친 철학이고, 이는 바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밀그램의 실험으로 넘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회의에서든 악마의 대변인이 필요하다. 다행히 하나 희망적인 것이 있다면 그렇게 권위에 복종하고 몰려가다가도 작은 반대만 있으면 바로 정신차린다는 것.
그 다음으로 사람에게는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가 필요한데, 게마인샤프트의 역할을 예전에는 촌락공동체가 했고, 산업사회에선 기업이 했으며, 앞으로는 SNS와 커뮤니티(즉 두번째 명함)가 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흥미로웠다. SNS에는 확실히 예전 촌락공동체와 같은 따뜻함과 인간적인 무언가가 있다.
그 외에 책모임에서 회원들이 공통적으로 마음에 들어했던 부분은....
혁신은 뭔가 시작함으로써 시작되는 게 아니라, 그 전의 상황이 종료되는 것으로 시작된다는 레빈의 해동-혼란-재동결 개념. 이에 대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현재 혼란의 단계를 걷고 있는 우는 크게 공감했고, 예전에 카피일을 하다가 번역일로 넘어가면서 주변의 우려와 스스로의 두려움을 겪었던 영 또한 공감했다. 나도 최근 9년간 하던 강의를 그만두었는데 역시 새로운 시작은 종료에서 시작된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그건 이런 뜻이죠?"하며 들은 말을 요약하는 버릇에 대해서도 은과 내가 스스로를 반성하며 앞으로는 그러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고 느꼈다. 그렇게 요약해버릇 하면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없게 된다.
분열증과 편집증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는 이론도 흥미로웠다. 둘 다 자아정체성이 과도해져서 생기는 병인데, 파라노이아는 자신의 겉모습 자아를 지키기 위해, 스키조는 자신의 속자아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지는 증상이라고 한다. 일드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때론 도움이 된다]가 바로 이 속성을 따서 지어진 제목이 아닌가 싶고, 대체로 도망치면서 살아온 책모임 멤버들에게는 꽤나 위로가 되는 이야기였다. 도망치기 위해선 그 자리에 머물러있는 것보다 훨씬 큰 용기가 필요하다니 말이다.
광은 이 책을 [지대넓얕]과 비교하면서, [지대넓얕]이 훨씬 낫다고 했다. 흐름이 없고 띄엄띄엄하며 흐름을 모르겠다고 했다. 서문에 이 책은 철학사의 흐름대로 서술하지 않는다고 나와 있는데 굳이 그걸 원한다. 뭐 이런 독자도 있으니까. 그에 비하면 경은 서문이 너무 좋았는데, 그 멋진 서문에 비하면 내용이 초라하다고 했다. 과히 실용적이지 않았고, 다만 대학 교양 철학 수업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유명 연예인들이 물의를 빚었을 때 SNS 댓글에 '좋은 게 좋은 거지' '이 정도로 뭘 그러냐'는 식의 댓글이 달리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그게 바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영은 1년에 한번쯤 자기계발서를 읽는데, 그렇게 읽은 책이라 좋았다고 한다. 특히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일수록 인맥이 좁다는 부분이 크게 위로가 됐으며, 앞으로 인맥 좁아질까봐 강박적으로 연락하고 만나는 일을 줄이겠다고 했다. 은은 목차 보고 책 읽는 걸 좋아하는데, 이 책은 소제목들이 너무나 좋아 목차 보고 골라보는 맛이 있었다고 했다. 이제껏 생각하는대로 살았다기 보단 사는대로 생각해온 타입인데, 많은 것들에 무관심했던 이유가 르 상티망 때문이라는 걸 이 책을 읽고 알게 됐다고 한다. 사람들이 하자고 해서 줄줄 끌려왔고, 그러다 보니 책모임 회장까지 맡게 되었다. 사는대로 생각하는 것이 장점이 아닌가 싶다.
포는 이 책에서 철학 무기 50가지를 뽑은 이유는 한때 일본에서 유행했던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되는 50가지 일들] 같은 책들을 따라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며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가장 마지막 챕터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나도 일본인들이 쉽게 풀어쓴 개념서 중에는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2019년 9월 21일 (토)
디어라이프
참가자 7명(우, 영, 경, 광, 포, 은,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