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서의 문학
황정은의 소설 '디디의 우산'은 한국소설가 50인이 뽑은 2019 올해의 한국소설이다. 빨간 책 안에는 'd'라는 작품과 '아무 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작품이 실려 있는데, 둘은 각각의 개별적인 작품이다. 연작소설이라기도 단편소설집이라기도 모호한 그런 작품집이다. 왜 이 두 작품이 나란히 <디디의 우산>이라는 작품집에 묶였는지를 물었더니, 발제자가 조사를 해왔다.
교보문고의 황정은 인터뷰를 보면 원래 단편 'dd의 우산'이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그 작품의 주인공이 d와 도도였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디디를 죽여 '웃는 남자'라는 작품을 썼고, 그것을 중편으로 개작한 게 바로 이 작품집에 실린 'd'다. 'd'는 방안에 갇혀있던 d가 세상으로 나가는 이야기였고, 그렇게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일으킨 혁명을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나를 생각하다 보니 '아무 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가 나왔다고 한다.
Q 이 책을 읽고난 소감, 총평
윤 _ 1년전 트위터에서 알게 되어 그때부터 읽고 싶었다가 이번 기회에 읽게 되었다. 발제 책을 고를 때 <대도시의 사랑법>과 <디디의 우산> 중 한권을 선택해야 했는데, 처음 읽을 때는 <대도시의 사랑법>을 할 걸 잘못 선택했다 싶었다. 그러다 다 읽고, 자료를 찾아보고 하면서 좋아졌다.
우 _ 국제영화제의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 보는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d'에서 할매들이 반지하의 d에게 음식을 건네주는 장면 같은 게 딱 그렇다.
은 _ 주인공에게 이름이 없고 d라고 하니까 알파벳에 집중이 되어서 환기시키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옥 _ 사람이 살고 싶지 않을 때의 상황을 잘 나타낸 작품이다. 택배기사, 세운상가 등 가본 곳에 대한 느낌이 좋았고, 감정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담아내어 좋았다. 마지막 연결 지점도 좋았다.
달 _ 운동권이나 집회 같은 것에 내 경험을 대입해 읽었다. 또렷하게 설명은 못하겠지만 작가가 자기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그게 장단점이 있다. 이 시대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런 책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 _ 읽고 나면 잔상이 남는 것 같은 소설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보는 느낌도 들었다. 꼭 배나 창고 안처럼 갇혀 있으면서 옮겨다니는 느낌이랄까?
이 _ 소설보다는 르포같은 느낌이었다. 용산참사 미사에도 참석했고, 세월호 때 광화문에도 가봤고 했기에 그 느낌을 알 수 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느낌인데, 거기서 봤던 피흘리는 대자보, 눈물조차 말라버린 유가족들의 얼굴에 d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포 _ 소설이라지만 에세이처럼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이게 요즘의 대세인가 싶기도 하다. <82년생 김지영>도 르포에 가깝지 않나? d의 동선이 나의 동선과 겹쳐서 버스, 집, 동네 같은 게 다 아는 곳 같았다. 심지어 d가 어느 집에 살았을지까지 알 것 같았다.
정 _ 소설가들이 좋아한 소설이라고 해서 궁금했다. 주인공 이름에 알파벳 나오는 거 좋아하지 않아서 한번 읽다 그만두고 반납하기도 했다. 다 읽고 나면 소설가들이 좋아할만 했구나 싶다. 등장인물 중에는 김소리가 좋았다. 현실에 밀착한 인물이고, 내가 잘 모르는 인물이기 때문에.
Q 주인공의 이름은 d이고, 나머지 인물들은 성까지 붙여서 세자를 다 쓴다. 왜 그랬을까?
우 _ 하찮은 존재라는 느낌을 주려고?
영 _ 죽은 사람과 살아있는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세자가 다 나오는 사람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이고, d는 dd가 죽은 뒤에는 거의 죽은 상태였으니까 d라고 하지 않았을까?
달 _ d와 dd는 친밀한 느낌이 든다.
이 _ 특정되지 않아서 더 이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았을까? 나는 d와 dd가 남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동성관계일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정 _ 나는 당연히 동성이라 생각했고, 이성이든 동성이든 그렇게 아사무사하게 써놓은 게 싫었다. 세자가 다 나오는 인물도 남녀를 전복(여소녀가 남자라든가)시키는데 이런 것들도 싫었다. 가르치려는 느낌이 들어서.
윤 _ 나는 이름부르는 게 하찮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월호에서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는 걸 들으며 운적이 있는데, 이 소설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하나하나 불러주는 느낌. 그리고 d는 서양에서 웃는입 이모티콘이라 웃는입 같다고도 생각했다. (정 _ 나는 dd가 백허그하고 끌어안고 있는 모양 같았다 / 달 _ 웃는입에 백허그...황정은 작가가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작가가 이런 얘기 들으면 되게 좋아할 것 같다.)
Q d는 사물에 온도가 느껴져서 역겨워한다. 온도가 왜 역겨웠을까?
우 _ 유골함에서 느낀 온기를 물건들에서도 느낀 것 아닐까? d는 dd의 유골함을 받으면서 그제야 dd의 죽음을 실감했을 것이다. 그 온도가 잠복기를 거쳤다가 각 사물들에 트라우마로 나타난 것 같다.
영 _ 온기라는 건 살아있는 생명에게 느껴지는 것. 그러므로 d는 살고자 하는 집착에 대한 혐오로 온기를 역겨워한 것 같다.
달 _ 나는 쉽게 생각했다. 연인이 헤어지고 나면 그와 같이 했던 모든 것에서 그 사람을 생각하듯이, d는 dd와 함께 살았던 모든 것에서 dd의 온기를 느끼는 것일듯. dd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데, 뭘 봐도 생각나고. 그러니까 그런 것 아닐까?
Q 이 소설에는 각 세대별 트라우마가 나온다. 나의 트라우마는?
옥 _ 점수매기기를 극도로 싫어한다.
윤 _ ASAP(가능한한 빨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광고회사에서 맨날 듣다보니. 이걸 보면 경쟁에 뛰어들게 하는 모든 것을 싫어한다.
포 _ 남과 비교하는 것.
정 _ 트라우마는 그런 것이 아니지 않나? 나는 어느 밤에 큰일 날뻔 한 이후로 뒤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를 싫어하게 되었다.
은 _ 핸드폰 밧데리가 없어 꺼지는 것. 사랑하는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하필 내 핸드폰이 진동하면서 밧데리가 꺼져버렸다. 그 이후 무슨 일이 있어도 밧데리를 충전해 다닌다.
달 _ 혼자 있을 때 문 두드리는 소리, 핸드폰벨 울리는 소리.
영 _ 닫힌 문. 집에 오면 일단 이방 저방 문 여는 게 일이다. 문 뒤에 누군가 있을 것 같아서 활짝 활짝 열어놓는다.
Q d는 사물의 온기를 싫어하는데,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온도나 냄새가 있다면?
은 _ 식물이 주는 온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집에 스투키와 테이블야자가 있는데 크기는 작지만 생명력이 커서 방 전체에 활기가 돈다.
정 _ 정전기 싫고, 발에 닿는 전기 코드의 감촉 싫다.
영 _ 지하 냄새 싫다. 어떤 카페는 지하에 있어서 냄새 때문에 가기 싫어졌다.
윤 _ 아저씨 냄새 극혐. 어느 날 아버지한테도 느껴져서 싫었다.
달 _ 빈탄 냄새(그런게 있다고 함)가 좋다. 어릴 때 동생이랑 허구헌날 싸웠는데, 엄마가 참다못해 쫓아내면 철문 안에서 동생과 껴안고 있던 체온은 참 따뜻했다.
Q 묵자의 세계라는 말이 나온다. 내가 느낀 묵자의 세계가 있다면?
영 _ 유리가 깨지고 아이가 다칠뻔한 꿈을 꾼 적이 있는데 그때 아이가 놀란 걸 다독이기 보다 "저리가"(물론 다칠까봐 그런 거지만) 했는데, 그게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묵자의 세계가 아니었나 싶다.
은 _ 결손가정에 대한 배려를 가장한 무시랄까? 이를테면 '부모없이도 잘 컸네'라든가 '역시 환경이 중요해' 혹은 '부모가 이혼했다더니 그래서 말이 안통했구나' 같은 것들.
우 _ '일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다수가 하기로 했으면 따라야지' 같은 것들. 원어민 교사의 마약검사가 모욕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전까지는 생각 못했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 당하는 사람은 모욕적이겠구나 했다.
2020년 1월 11일 (2020년 첫모임)
그라운드125
디디의 우산
참석자 : 윤, 우, 포, 옥, 은, 달, 영, 정, 이 (9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