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토스카나 2 토스카나를 완성하는 숙소들
"숙소 도착 전 약 10분가량의 험한 오르막길이 있습니다. 오는 길이 험하니 작은 자동차는 접근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혹시 오는 도중 문제가 생기면 연락해 주세요. 바로 내려가 도와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로마를 떠나 토스카나로 가기 전날, 휴대폰 화면에 이런 메시지가 떴다. 토스카나 첫 번째 숙소의 주인이었다. 어차피 자동차로 갈 건데 뭘 이런 걸 걱정한담? 그런데 '걱정 마세요'라는 문장 때문인지 계속 걱정이 된다. 심지어 기세 좋게 빌린 렌터카가 수동에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인 탓에 걱정이 깊어진다. 뷰가 좋은 곳에 가고 싶다고 고집을 부린 바람에... 혹시 우리 차가 못 올라가면 어떡하지?
소도시 탐방의 첫 목적지였던 오르비에토 Orvieto를 한 바퀴 돌아본 뒤, 교황님이 즐겨 드신다는 화이트와인 한 병을 사서 심호흡을 하고 숙소로 향해본다.
주인장이 경고한 오르막길 전에 2KM 넘게 늘어선 사이프러스 나무 가로수길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영화에서만 보던 그 길쭉한 나무들을 양쪽에 두고 한참을 운전하다 보니 그가 말한 공포의 오르막길이 나왔다. 선팅도, 블루투스도, 내비게이션도 없는 수동차지만 다행히 힘이 좋아 무난하게 꼬불꼬불 오르막을 넘어 대망의 첫 숙소에 도착했다.
로마에서 출발해 분명히 끝도 없는 평원을 가로질러 왔는데, 마지막에 오르막길 10분을 올랐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멋진 뷰가 펼쳐질 줄이야. 숙소 앞에 펼쳐진 것은 이탈리아 중부에서도 중심에 위치한 트라시메노 호수다. 바다 같은 호수.
해가 지고 호수 위로 찾아든 밤하늘은 '푸른'이 아니라 '파란', 정말 진하게 파란 밤의 색깔이었다. 저녁에 근처 다른 소도시에서 식사를 할 예정이었지만 이 호수 뷰를 보고 계획을 틀어 숙소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조식을 하는 장소에 식탁 네 개 정도를 둔 단출한 식당이지만, 음식의 구성과 퀄리티는 로마의 어느 식당들보다 훌륭했다. 내게 공포의 메시지를 보냈던 주인장 Carlos가 직접 서빙을 하며 음식, 와인 하나하나를 정성껏 설명해 준다.
하루 종일 숙소 주변을 정성껏 정비하는 가족들과 친해질 즈음 떠날 날이 왔다. 체크아웃을 하며 물어보니, 숙소를 오고 갈 때마다 지나가는 사이프러스나무길은 과거 이 지역의 영주가 자신의 저택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장식하기 위해 만들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이라 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길을 떠나 진짜 토스카나 주에 입성해 두 번째 숙소로 향한다. 두 번째 숙소는 오로지 그의 동물사랑 때문에 가게 되었다. 한국에서 함께 숙소를 찾아보던 중, 그는 ‘동물이 많다’는 숙소 설명에 꽂혀 다른 곳은 더 이상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로 멧돼지, 십 수 종류의 닭, 돼지, 강아지, 고양이, 말이 넓은 숙소 부지를 그냥 슬렁슬렁 돌아다니고 있다. 숙소 주인장 소유의 올리브밭에서 만드는 올리브유를 마음껏 쓸 수 있도록 한 덕에 간단한 재료를 사 와서 샌드위치 등을 만들어 먹기 좋았고, 무엇보다 매일 아침 손수 구워주는 파운드케이크가 포함된 조식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매 숙소마다 꼭 하루씩은 온전히 숙소를 즐기는 시간을 두었다. 각자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그냥 호수를 바라보거나 동물들이랑 노는 그런 시간. 그러다 본 영화 ‘Eat, Pray, Love’ 속에서 지금 이 상황에 딱 맞는 표현을 발견했다. Dolce Far Niente -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달콤함'이라는 이탈리아 표현이다.
주인공 리즈는 이혼 등 힘든 일을 겪은 뒤 평생의 로망이었던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위해 로마에 온다. 친구에게 배운 이 표현이 늘 완벽해 보이는 삶을 위해 노력해 온 자신에게 위로가 된다고 생각했는지 영화 속에서 여러 번 되뇐다. 쫓기듯 살던 일상을 멈추고 시작한 이 여행에서조차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쫓기듯 여행한 내게도 위로가 되는 표현이었다.
우리가 이번 여행에서 그토록 찾았던 이 달콤함을 완성해 준 것은 토스카나의 숙소들이었다. 6일간의 꿈같은 시간, 특히 아침마다 누군가가 정성껏 만들어 주는 조식을 먹는 호사를 부린 시간은 아쉽게도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다.
ps. 지금도 한국에서 그저 쉬고 싶은 날 주문처럼 읊어본다. 돌체파르니엔테, 돌체파르니엔테.
토스카나 생각을 하면서 감상에 젖은 내 산통을 깨는 그의 한 마디. “사실은 그냥 놀고 싶다는 말 아니야?”
맞는데, 그래도 이탈리아어로 하면 멋지잖아.
* 숙소에서 토스카나의 달콤함을 완성하고 싶다면…
이탈리아에서 농가와 민박을 함께 운영하는 형태의 숙소를 ‘아그리투리스모, Agriturismo’라고 한다. 농업(Agricultura)과 관광(Turismo)의 합성어다.
이 ‘아그리투리스모’라는 단어를 쓰기 위해서는 * 농업을 주로 하는 사람이 부업으로 숙소를 운영하는 것이어야 하고 * 숙소에서 사용하는 식자재 중 일정 비율을 농장에서 직접 생산한 제품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등의 엄격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리가 방문한 곳들은 모두 사장님이 직접 생산한 올리브유와 와인, 계란 등을 자랑스럽게 선보인, 이 인증을 받은 곳들이었다. 위치도 뷰도 시설도 음식도 훌륭했기에 자신 있게 추천한다. 단, 렌터카가 충분히 튼튼하다는 전제 하에!
1. Agriturismo Di Colle In Colle
페루자, 오르비에토, 코르토나 등으로 이동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자체 비스트로를 운영할 정도로 음식에 진심이니, 꼭 한 번쯤은 호수뷰를 바라보며 디너까지 하길 추천한다.
열정 넘치는 사장님은 한국인이 자신의 숙소에 찾아왔다는 점을 신기해했고, 지금도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2. Agriturismo Sole
시에나, 몬탈치노, 몬테풀치아노, 아레초 등으로 이동하기 좋다.
위에서 말한 동물의 천국. 불쑥불쑥 나타나는 동물식구들에 놀라지 말 것!
사장님 가족들이 매일 아침 손수 문 앞까지 조식을 배달해 준다. 이미 한국사람들 사이 많이 알려진, 그만큼 검증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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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변호사커플, 때로는 집 안까지 타인의 삶을 가지고 들어오는 우리가 오로지 ‘우리’를 위해 보낸 66일의 기록. 같은 곳의 기억을 한 명은 글로, 한 명은 사진으로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