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3
It happend. It can happen again. That's the core of what we have to say.
그 일은 일어났다. 그 일은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 프리모 레비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는 대표작 '이것이 인간인가'를 통해 아우슈비츠에서 있었던 비인간적인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렸다. 나치정권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을 위한 추모관이라 할 수 있는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입구에는 프리모 레비의 위와 같은 말이 크게 적혀있었다. 이 말은 베를린이, 그리고 독일이, 아래에서 살펴볼 수많은 장치들을 통해 현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베를린에서 유명하다는 이곳저곳을 다니며 일주일 정도를 보낸 뒤, 도대체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분명 한국에서 유튜브와 블로그 등에서 '베를린 여행'을 검색하면 온통 '힙스터', '편집샵', '골동품 마켓', '감성카페' 등으로 가득했는데, 정작 힙스터 동네에서는 불쑥 안네 프랑크의 집이, 요새 가장 힙하다는 편집샵이 있는 건물 입구에는 유대인 희생자를 기리는 표식이, 골동품 마켓을 찾아 내린 역에는 나치정권에 의해 희생당한 성소수자 추모비가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아무리 안 보고 싶어도 반드시 보게 만드는 것. 그래서 절대 잊을 수 없게 하는 것이 이 도시의 목적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중 관광객으로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홀로코스트 추모관 앞의 거대한 관 모양의 콘크리트 조형물들이다.
희생당한 유대인을 기리기 위해 높이도 크기도 다른 관 모양을 택했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이 2,711개의 추모비가 설치된 1만 9073m²(축구장 2.6개 크기) 부지가 있는 장소가 어디인가? 베를린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브란덴부르크문 바로 옆, 국회와 미국대사관이 자리한 곳. 사실 한국으로 치면 광화문 광장 같은 도심 한 복판의 이 넓은 땅을 오롯이 추모를 위해 쓴다는, 그래서 베를린을 찾은 모든 사람들이 과거 독일이 저지른 만행을 생각하게 한다는 이 조금도 경제적이지 않은 이 결정은 독일의 역사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베를린이 전후 수십 년 간 고심하여 구성해 놓은 여러 장치들을 이렇게 파편적으로 보기보다는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베를린 역사 가이드와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독일인 파트너와 결혼해 베를린에서 15년째 살고 있다는 가이드님은 베를린의 역사관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을 거의 해결해 주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독일인들은 학교에서 끊임없이 (거의 세뇌에 가깝게)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에 대한 교육을 받는데, 그 교육의 핵심은 ‘우리가 전쟁을 일으켰고, 우리가 사람을 이렇게 죽였고, 그 결과 도시가 이렇게 되었다. 이 사실은 절대 부인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전범국가 일본에 의해 식민 피해를 입은 한국인으로서, 매번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려는 일본의 태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베를린에서 세계대전이나 분단, 유대인학살과 관련된 수많은 전시는 시대별로, 그리고 동구권 서구권 별로 비교를 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나치의 지배와 세계 대전의 전과 후가 너무나 달랐고 또 분단으로 인해 동서로 나뉘어 다른 문화를 갖게 된 탓이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독일의 과거에 대해 제삼자적 시각을 갖고 있는 서술과 설명이 새로웠다. 그것은 과거를 부정하거나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토록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던 당시의 독일과, 지금의 우리는 다르다'는 차원의 제삼자적 시각이었다. 과거를 완전히 인정하되 철저히 단절하고 과거와는 다른 미래로 나아가는 느낌이랄까.
세계 2차 대전 후 폐허가 되었던 독일은 이제 유럽 GDP의 약 1/5을 차지하는 유럽 최대의 경제규모를 가지고 유럽의 정치와 경제 전반에 주도권을 쥐고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 중심에 있는 베를린은 예술과 문화에 대한 지원 역시 아끼지 않아 이제 유럽에서 가장 힙한 도시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놀라운 일이다.
로마, 피렌체, 빈을 거쳐 베를린에 왔다. 새로운 곳을 방문하고 새로운 음식을 먹고 새로운 사실과 역사를 알게 되는 그 모든 경험이 좋았지만, 베를린만큼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도시는 없었다. 거쳐온 도시들보다 좋았다는 뜻도 아니며, 내가 살고 있는 서울보다 좋다는 뜻도 아니다. 여행기 초반에 이야기했듯이 마침 고대(로마)-중세(피렌체)-근대(빈)-현대(베를린) 각 시대별 유럽역사의 중심이 된 도시들을 거치는 여행이 된 만큼, 각 도시들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쳐온 도시들 중에는 과거의 영광을 최대한 그대로 보존하며 관광산업을 중심으로 시간이 흘러도 조금도 변하지 않는 도시들이 있었던 반면, 베를린같이 한 세기 안에 엄청난 변화(혹은 발전)를 한 도시도 있다. 단순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베를린에서의 시간은 한 국가가 과거를 대하는 태도가 지금 각 국가의 위상, 미래의 모습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기에 충분했다.
여전히 한국에서 '베를린 여행'을 검색하면 힙스터 카페와 식당, 힙스터 편집샵들이 주를 이룬다. 나도 힙한, 감성 넘치는 카페들이 좋다. 유럽에서 그런 바이브를 원한다면 베를린을 찾는 게 맞다. 거기에다 ‘베를린이 왜 힙스터 도시가 되었을까?’라는 질문이 더해지면 좋겠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도시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싼 임대료와 기회를 찾아 지금의 힙한 베를린이, 또 그 가난했던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며 지금의 다양성 넘치는 베를린이 만들어졌다는 배경을 이해하면 좋겠다. 그러면 분단의 흔적을 찾아, 유대인 추모를 위해 방문한 베를린에서 마주치는 힙한 카페와 편집샵들이, 혹은 반대로 그런 카페를 찾아간 곳에서 마주치는 역사의 흔적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을 것이다.
* 베를린이 나치와 유대인 학살을 기억하는 법을 알고 싶다면...
1. 유대인 희생자 추모비 Holocaust Mahnmal
베를린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 바로 옆, 축구장 2개 너비의 공간에 설치된 2,711개의 회색 콘크리트 무더기를 눈치채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크기도 높이도 다 다른 관 모양의 이 조형물은 나치정권에서 살해당한 6백만 명의 유대인을 상징한다. 콘크리트의 숲에 들어가서 걷다 보면 내 키보다 더 높은 조형물들 속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이렇게 이 숨 막히게 울적한 조형물 사이를 직접 걸어보며, 만져보며, 사람들은 나치정권 하에서 여기에 있는 추모비들의 2,000배에 이르는 유대인들이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정사각 모양의 추모비 숲이 시작하는 부분의 콘크리트 조형물들은 높이가 낮아 사람들은 그곳에 걸터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 추모비를 돌아본 뒤 다리가 아파진 사람들은 잠시 앉았다가 이것이 희생자들이 갖지 못했던 관을 상징한다는 생각에 금세 일어나게 된다.
2. 유대인 박물관 Jüdisches Museum Berlin
베를린에서 유대인 관련한 단 한 군데의 장소를 방문할 시간만이 허락된다면 이곳이다. 과거 법원 건물을 확장한 바로크 양식의 박물관과 1989년 장벽이 무너진 해 세계적 공모전을 통해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건축한 새 박물관 두 개가 각기 너무 다른 스타일로 우리를 맞이한다.
망가진 다윗의 별을 상징하는 구불구불한 새 유대인 박물관을 걸으며, 관람객은 건축가의 의도대로 유대인이 겪은 고난의 여정을 조금이나마 체험하게 된다.
새 유대인박물관의 전시는 세 축으로 나뉜다. '홀로코스트의 축', '연속의 축', '망명의 축'. 이 중에서 가장 강렬하고 직관적인 곳은 홀로코스트의 축이다. 관람객들은 한없이 높은 천장의 닿지 않는 곳에 조그맣게 나 있는 창문을 통해서야 지금이 낮임을 알게 된다. 바닥에는 죽어간 유대인을 상징하는 1만 개의 얼굴모양 쇠가 널려져 있다. 관람객들은 누구나 이 작품 위를 걸어 볼 수 있지만, 부딪히는 쇳소리가 비명소리 같아 각오가 필요하다.
3. 공포의 지형학 박물관 Topographie des Terrors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이곳은 나치 정권이 자행한 공포 정치를 기록한 박물관이다. 독일의 비밀경찰 게슈타포, 중앙안보국과 히틀러의 친위대 본부가 있었던 자리에 이제는 그들이 반나치세력에 대한 고문, 그리고 유대인에게 행한 학살의 행적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원래의 본부는 대부분 철거되었지만 일부 철근 등이 남아 당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박물관은 내외부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 외부 박물관에서 당시 나치가 유대인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를 체계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절멸'하려고 했던 시도를 보았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각 사회에서 배척되는 이들이다. 우리가 방관하고 있는 각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박해가 고삐 풀린 권력과 만났을 때 어떤 결과를 낳을지 상상해 볼 수 있다.
-----------------------------------------------------------------------------------------------------------------
동갑내기 변호사커플, 때로는 집 안까지 타인의 삶을 가지고 들어오는 우리가 오로지 ‘우리’를 위해 보낸 66일의 기록. 같은 곳의 기억을 한 명은 글로, 한 명은 사진으로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