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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선택하는 일

by 경희
집을 선택하는 것은 매일 보게 될 풍경을 선택하는 일이기도 하다

_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p.193, 하재영 저, 라이프앤페이지



# 밴쿠버


영어 연수로 한 달 동안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였다.

1층은 함께 사용하는 부엌과 거실이 있고, 2층과 3층은 방과 욕실이 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발코니가 있는 방에 묵었다. 의자 하나를 겨우 놓을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지만 여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정이 많이 들었다. 햇빛을 쬐며 요거트와 과일 등으로 간단하게 차린 아침을 먹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았다. 낮에는 긴장을 풀고 나른함을 한껏 즐겼다. 밤에는 내려앉은 어둠을 이불 삼아 그 포근함으로 나를 북돋아주었다. 발코니는 내가 나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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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투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너무 마음에 들어서 짐을 대충 풀어놓고 구경에 나섰다. 무엇보다도 커다란 창 너머로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여서 좋았다.

광장은 시시각각 다른 풍경을 보여주어 그 재미가 쏠쏠하였다. 여느 공원에서 볼 수 있듯 할아버지들께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체스를 두고 계신다. 마켓이 열린 날에는 물건을 파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으로 활기를 띤다. 노상 카페도 하나 있었는데 아침이면 카페 직원이 의자를 꺼내며 분주히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엄마는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전날 나랑 다투고 속상했던 마음을 달랬다고 하셨다.

계절마다 다채로운 옷을 입은 나무가 물들이는 광장은 이곳 사람들과 또 어떤 빛깔을 빚어낼지 궁금해졌다. 여기에서 한 달을 머물러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 계획도 없이 당장 여행을 가게 된다면 여기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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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Marquês) 광장


# 몬테풀치아노


부엌에서도, 욕실에서도, 방에서도 창 너머로 드넓은 평원이 펼쳐진다.

몬테풀치아노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에 저 평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눈으로만 담았던 곳으로 간다는 게 마냥 설레고 신이 났다. 전망이 탁 트인 들판에 앉아 간식을 먹고, 벌러덩 누워서 노래도 들었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유유자적 평화로운 시간을 만끽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엄마가 놀라며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흰 동그라미 하나가 깡충깡충 뛰더니 이내 덤불 사이로 사라졌다. 노루의 엉덩이였다. 갑작스러운 노루의 등장에 우리는 아이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림 같은 풍경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걷다가 사이프러스 나무와 집이 사이좋게 마주한 사이로 노루 두 마리가 뛰어가는 모습을 마주쳤다.

멀리서 보기만 할 때는 몰랐던 보물들이 가까이 들여다보니 반짝이며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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