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겨울은 고즈녘했어
친어미가 아닌 새어미의 손을잡고 끌려가다시피 오른산
이제막 7살된 사내아이는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참으며
그리 살갑지 않은 아비와의 만남을 위해
손을 호호 불어가며 고된길을 오르고
있었어
신기도하지
추운겨울인데
산의 나무들은 모두 벗고 있었어
어린아이의 눈에는
그모습이 마치 상식을 벗어난
정신이상자의 모습처럼보였고
불어오는 산자락의 매서운 바람과함께
작은 가슴을 더욱 스산하게 만드는걸 느꼈어
아이의 아비는
다니던 법대를 중도포기하고
갑자기 민속회화의 길로 뛰어들었어
어린아내의 바램과 집안의 기대
어린자식을 부양해야하는 의무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어
그래서 아이의 친어미는 아비와 이별했고
.
.
.
그가 처음본 무량수전의 소박하면서도
빛바랜 단청문양은 단박에 그를 사로잡았고
마침 불전에 단청보수공사를 하던
기술자에게 부탁하여
우리나라 유일의 민속단청기술자 밑으로
제자로 들어간거였지
기기괴괴한 암석들사이로 한참을 걸어오르자
갑자기 평탄한 넓은 마당이 나타났고
아이의 눈에는 거대하게 보이는 솟을대문이
아이를 반겼어
한글도 깨우치지못한 아이의눈에
한문으로 휘갈겨써진 현판의 글자는
마치 상상속의 용의 모습같았지
지금까지 보아왔던 아이의 생활속 굴레를
한참은 벗어난 낯선 풍경에
아이는 본능적으로 지어미의 옷자락을 붙잡고 뒤로 몸을 숨겼어
모두 같은 옷을 입고 모두 머리를 밀어버린
사람들 또한 아이에게는 충분히 두려운 존재였고
이곳에서 일을하고 있다는 아비의 존재가
새삼 거대하게 느껴졌어
사람들이 꽤 많았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곳은 바람불던 산자락 그 치마끝
같던 길보다도 더욱 조용했어
아이가 뒤에서 두려움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미는 마중나온 스님과 합장으로
인사를 나누었어
작은 방안으로 안내가되었고
잠시후 승복도 아닌 그렇다고 꼭집어
한복이라 말하기도 묘한 복장의
아비가 찾아왔지
오랫만의 아비와의 만남
또래의 아이처럼 아비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아이
작은 아이는
이 서먹함이 싫었어
아이의 기억속 아비는 항상 바빴고
눈에는 먼 허공만을 바라보는듯한, 공허함만이
가득했던 다가가 재롱을 피울정도로
온화했다거나 그윽한 정을 느낄만한 눈빛이 아니었어
그래서 아이는 어렸지만
얌전히 아비의 손길을기다릴줄 알았고
형식적인 포옹에 기쁜척할줄도 알았어
아비와 자식이란 속세의 인연의끈이
의무적인 이 만남에 작용했다라는것까진
알수없는 나이였지만
아이는 애써
이 어색함을 이겨내려
창호지를 덧바른 문짝의 댓살 갯수를
막배운 숫자를 이용해 세고 또 세었어
아비는 이절에서 벌써 반년째 작업중이있어
사찰의 모든 건물의 단청을 다시 도색해야하는
고된 작업이었지만
아비는 그저 붓으로 천연물감을 아교에 개어서 천년을 간직한 사찰의 배흘림기둥과
기와를 버티는 상대 가로목등에 바를때면
모든것이 평온해지는 그느낌만이 좋았더랬어
일단의 비구니승들이 방문을 두드렸어
공양이 들어왔고
"아이는 저희가 데리고 있을께요"
비구니의 말에
마침 어색한 아비와의 숨막히던 공간을 벗어난다는 생각에 아이는 처음보는 빡빡머리의 여자들도 신기해서 앙탈없이
따라나섰어
어린 비구니승
그녀는 아이와 곧잘 놀았어
아이는 두려움의 공간이던 산사에서
비구니 여승과 재밌게 놀기시작했어
이모 이모
여승은 그래그래 화답하며 아이의 친구가 되어주었고
오늘은 이모랑자야되
하며 살갑게 굴었어
아이도 오늘은 아비와 새어미의 공간속에
끼어있긴 싫었어
아니 어렴풋이 아이는 그공간은
자기가 있어선 안될곳임을 알았다고나 할까
산사의 밤은 정말 칠흑같았어
아이의 몸은 고된 산행으로 지쳐있었지만
이모라 불렀던 여승의 팔베개로 정말 편안했지만
도통...잠이오질 않았어
이유를 알리가 없는 작은아이는
옆에서 새근대며 잠든 이모의 숨결에
문득 더워짐을 느꼈어
방에는 서너명인가의 여승들이 더 자고 있었어
군불을 지펴놓은 아랫목의 뜨거움은
멀리서 방문한 아이에게 양보되어졌고
아이는 잠도 오지않는 까만밤을 이불을 뒤척이며 이겨내고 있었어
덧문의 창호지를 뚫고 들어오는 달빛에
문득 비구니 여승의 승복사이로 희끄무레한 젖무덤이
보였어
아이는...굶주린거지가 밥을먹듯 허겁지겁
그가슴으로 파고 들었어
그리곤 갓난쟁이처럼 힘껏 젖을 빨기 시작했어
그 가슴은...아이에게 마치 구도와도 같았어
아비와 어미의 정을 그다지 풍족하게 받지못했던 유년기의
아이에게 그것은...천수경이었고
화엄경이었어
비구니도 가만히...산사에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여자라는 상징을 아이에게 허락했어
자장자장....등까지 토닥여 주면서
아이는 그렇게 한참을 젖에서 입을떼지못하다가
까닭모를 눈물을 줄줄 흘렸어
밖에선 마치 환청처럼
독경소리가 들리는듯했어
아제아제...바라아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