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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라 Apr 17. 2020

#2. 지옥 같았던 새벽 라이딩

동이 트기까지 5시간, 70km의 한강 하트 코스를 완주하자!

이번 글은 The Weeknd의 Blinding Lights를 들으며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 지난 줄거리


  드디어 생애 처음으로 자전거를 구매한 저는 자전거를 처음 타는 사람들이 겪는다는 안장통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을 거칩니다. 안장통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무렵, 겁도 없이 무모한 자전거 라이딩을 감행합니다...




#2. 한강 하트코스, 동이 트기 전까지 완주하자!


* 패드 바지 테스트를 핑계로 새벽 라이딩에 나서다


실제로 원숭이처럼(?) 주황색 패드 부분이 밖으로 나오진 않고, 뒤집어서 입습니다 ^^


  충격과 공포의(?) 안장통은 생각보다 별것 아니었습니다. 매일 조금씩 자전거를 타다 보니 고통에 익숙해졌다고나 할까요? 처음에 고통이 10이었다면, 지금은 2~3 정도로 느껴집니다. 고통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닌데, 그리 신경 쓰일 정도로 아픈 건 아닌 셈이죠. 오히려 나중에는 매일 자전거를 타는데도 고통이 점점 사라져서, 회복이 고통을 넘어서는 상황이 왔습니다. 안장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완전히 사라지려면 몇 달은 타야겠죠...?


  게다가, 자전거를 타는 친구의 추천으로 아주 좋은 제품을 찾았으니... 바로 '패드 바지'입니다. 엉덩이와 전립선 부위에 두텁고 부드러운 패드가 봉제된 속바지인데, 가격은 배송비를 포함해서 겨우 7,500원입니다. 낮에 자전거를 타고 오긴 했지만, 새 제품이 자신을 사용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데 어떻게 외면하겠습니까?


  안장통도 다 극복했겠다, 심지어 패드 바지까지 도착했겠다, 도저히 자전거를 타지 않고는 못 배길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며칠 동안 계속 똑같은 한강 자전거길만 돌다 보니, 이제는 새로운 곳을 다녀오고 싶은 욕구도 솟구칩니다.


대략 80km의 거리를 동이 트기 전까지 달려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인터넷을 뒤져보니, 아주 재미있는 코스를 하나 찾았습니다. 이름하여 '한강 하트코스'. 이름부터 재미있지 않나요? 모양이 마치 하트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하트코스인 모양입니다. 완벽한 하트 모양은 아니고, 약간 찌그러진 하트 모양이 더욱 웃깁니다. 거리는 대략 70km인데, 저희 집에서 출발점까지의 왕복거리가 10km가 조금 넘으니, 다녀오면 대략 80km 정도 되겠네요.


  저 하트코스를 찾았을 당시가 대략 밤 11시 반, 일자로는 자전거를 산 지 정확히 6일이 넘어가던 날입니다. 그동안 가장 길게 자전거를 타본 거리는 30km. 코스에 대한 설명을 보니, 초심자들이 처음으로 하는 장거리 라이딩 코스로 추천한답니다. 흠...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일단 기초 체력은 다른 사람한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안장통도 적응했고, 심지어 패드 바지까지 있습니다. 게다가 저는 넘치는 게 시간이라, 밤에 자전거 좀 탄다고 일상에 지장이 가지도 않습니다.


  길게 고민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집안을 열심히 뒤져서 건전지 몇 개를 챙기고, 편의점에서 산 물과 간식을 챙길 가방을 챙겼습니다. 집에서 뭔가를 고칠 때 쓰는 작업용 장갑과 외투를 걸치고, 자전거를 들고 당장 집 밖으로 향했습니다.


  초심자를 위한 '하트 코스'니까, 저도 사랑을 담아(?) 가볍게 타 주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몰랐습니다. 저 하트 모양이 몇 시간 후 고통으로 일그러진 저의 심장을 의미하는 것일 줄은....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저는 7일의 자전거 경력에서 가장 긴 코스인 80km를, 그것도 새벽에 돌기 위해 호기롭게 집을 나섭니다.



* 목표는 동이 트기 전까지! 첫 번째 목적지인 '안양천 합수부'


새벽의 자전거 도로는 조용하고 쾌적해서 속력을 내기 좋습니다.


  밖은 제법 쌀쌀한 날씨였습니다. 매일 낮에만 자전거를 타서 몰랐는데, 일교차가 제법 심했습니다. 편의점에서 물 몇 병과 모자란 건전지 몇 개, 간식으로 먹을 초코바 몇 개를 산 뒤 코스 출발지가 될 동작역으로 향했습니다.


  서울의 새벽은 정말 마법과도 같은 시간입니다. 사방이 불빛으로 가득하지만, 사람 한 명 없는 조용한 거리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은 사람에게 집중력을 불어넣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자전거를 몰면서 간단히 몸상태를 체크해봤습니다. 추운 날씨 탓인지, 손이 시리고 콧물을 훌쩍거리게 되는 것만 빼면 나머지는 모두 괜찮았습니다. 시리던 손도 자전거를 좀 타다 보니 몸에 피가 돌아서인지 곧 괜찮아졌습니다.


현재 시각 00:38, 이곳을 해가 뜨는 06:00까지만 돌아오면 됩니다.


  드디어 출발점이 될 동작대교의 노을카페 앞에 도착했습니다. 인증샷을 찍다가, 재미있는 생각이 났습니다. 출발할 때 사진을 찍고, 도착한 뒤에 똑같은 위치에서 똑같은 방향으로 사진을 찍어보는 겁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은 시간을 비교해보면 얼마나 걸렸는지 더욱 정확하게 알 수 있겠죠? 그렇게 저는 기념비적인 사진(?) 한 장을 찍고는, 고민 없이 자전거 페달을 밟아 첫 번째 목적지인 '안양천 합수부'로 향합니다.


밤에 보는 만개한 벚꽃은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안양천 합수부까지의 길은 약 10km로, 길가에 아름답게 핀 벚꽃들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주행할 수 있었습니다. 거리도 짧거니와, 지나가는 사람이 정말 가뭄에 콩 나듯 없는 수준이라서 본격적인 주행에 앞서 몸을 풀기에는 최적의 길이었습니다. 중간에 멈춰서 사진도 참 많이 찍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밤이라서 사진들이 마음에 드는 것이 몇 장 없더군요... 그렇게 가볍게 페달을 돌리며 안양천 합수부에 도착했습니다.


한강의 야경에 감탄하며 몇 분 앉아있으니, 추위가 엄습해옵니다.


  합수부에 도착해서 목을 축이고, 첫 번째 초코바를 하나 뜯으며 이따금씩 지나가는 행인들을 구경했습니다. 그렇게 잠깐 쉬던 도중에, 배낭을 메고 자전거를 탄 사람 둘이 제 앞을 지나갔습니다. 친구와 함께 부산의 낙동강 하굿둑까지 이어지는 자전거 종주길을 나선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봤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빠른 시일 내에 국토종주길에 오르기로 하자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렇게 몇 분 쉬니, 슬슬 야간 라이딩의 첫 번째 위기가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로 '추위'입니다. 자전거를 타면 몸에서 자연스럽게 땀이 흐르는데, 밤은 기온이 낮아서 땀이 금방 식어버리는 겁니다. 땀이 식으면서 체온이 급격히 내려가고, 다시 체온을 올리기 위해 몸의 에너지가 급격히 소모되면서 다시 체온이 내려가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죠. 잠깐 서서 물 몇 모금 마시고 쉬었을 뿐인데, 몸이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합니다.


  움직여서 몸을 데우기 위해, 다음 목적지를 정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제 10km 정도는 별로 힘들지도 않으니, 조금 더 길게 타보는 겁니다. 마침 자전거길이 바뀌는 '인덕원역' 인근까지의 거리가 약 25km로 적절하다고 판단, 바로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밟습니다.


  본격적인 추위와의 사투의 서막을 알리는 페달링이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돌기 시작합니다. 오로지 살기 위해...



* 안양천에서 학의천까지, 얼어 죽지 않으려면 밟아라!


안양천을 지나면 보이는 고척 스카이돔에서. 추워 죽을 것 같아도 사진은 남긴다!


   안양천 합수부를 떠나, 본격적인 안양천 라이딩에 나섭니다. 본래 안양천 자전거길은 폭이 넓지 않아서, 사람들이 많은 주간에는 속력을 내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하지만 새벽이 되면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마음껏 속도를 내는 것이 가능합니다. 잠깐 멈춰서 사진을 찍을 때를 제외하면, 떨어진 체온을 올리기에는 최적의 라이딩 구간입니다.


'댄싱'은 자전거 급가속을 위한 기술입니다.


  이럴 때 마음껏 시도해볼 수 있는 기술이 있는데, 바로 '댄싱'입니다. 자전거 안장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격렬하게 페달링을 하는 겁니다. 체중을 실어 페달을 밟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달리거나 오르막을 오를 때 적절한 방법입니다. 평소 사람이 많은 자전거길에서는 빠르게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기에, 이 기회를 살려 한 번 해보기로 합니다. 어릴 때의 기억을 되살려, 개미 한 마리 없는 길고도 긴 안양천을 빠른 속도로 돌파해나갑니다.


  사실 저렇게 자전거를 타는 것은 엄청난 체력 소모를 필요로 합니다. 단지 빠른 속도만을 위해서라면, 굳이 댄싱을 하지 않더라도 적당히 빠르게 달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저의 목적은 단 하나, 추위를 잊는 것입니다. 날씨도, 가지고 있는 물도 죄다 차갑기만 하니 몸의 체온이 빠르게 손실됩니다. 당장 체력을 빼앗기더라도 추위를 잊기 위해서는 강제로라도 열을 올려야 합니다.


  자전거 핸들을 짚고 일어나, 격하게 몸을 흔들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주변의 풍경들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차가운 새벽 공기가 몸을 스쳐 지나갑니다. 이내 귓가에 돌던 차 소리마저 없어지고, 사람이 거의 없는 학의천 구간에 진입하게 됩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멈췄던 몇 번이 엄청난 패착이었습니다...


  사실, 학의천 구간에 들어오기 전부터 저는 이미 광명과 안양 등을 지난 셈입니다. 즉, 서울을 벗어난 겁니다. 학의천 구간에 진입하면 '적막'과의 사투가 시작됩니다. 이제는 추워서 땀도 흐르지 않고, 이따금 보이던 사람도 없습니다. 여기서 저의 이번 여정에서 했던 최악의 선택이 벌어집니다. 바로 '사진 찍기'입니다.


  지나왔던 기록을 남기기 위해, 남는 게 사진인데 그게 왜 문제가 되냐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당시의 기온이 3도 남짓, 체감온도는 영하였다는 것입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춰서는 중간중간의 정차가 라이딩의 흐름을 잘라먹는 최악의 수가 되고, 몸의 체온은 이미 바닥을 향했습니다. 좀 전까지 열심히 댄싱을 하며 올렸던 체온이 몇 번의 사진에 몽땅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와중, 저는 큰 사고가 날 뻔했습니다. 맞은편에서 오던 라이더와 충돌할 뻔한 것입니다. 자전거에 전조등과 후미등을 장착했던 저와는 달리, 그 사람은 자전거와 옷이 온통 검정이라 제 눈 앞까지 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 자전거가 내뿜는 불빛을 봤다면 분명히 본인이 피했어야 할 텐데, 그러지 않은 것입니다.


그 자전거 운전자의 정신 나간 행동은 총 세 가지였습니다.


1. 새벽 라이딩임에도 자전거 조명을 설치하지 않았다.

2. 그렇다면 벨이라도 울렸어야 하는데, 벨도 울리지 않았다.

3. 게다가 역주행 중이었다!


  황급히 차체를 돌려 어렵게 자전거를 회피하고, 거의 넘어질 뻔한 상태에서 오른쪽 다리를 축으로 자전거를 한 바퀴 돌리며 겨우 낙차를 면했습니다. 순간 입에서 욕이 나올 뻔했고, 황급히 그 자전거를 찍기 위해 카메라를 돌려 찍어봤지만 카메라의 초점은 빗나가고 그 자전거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후였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황급히 카메라를 돌려봤지만, 이런 사진만 남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습니다. 긴 시간 정차한 탓에 온 몸에 한기가 엄습해옵니다. 저녁을 컵라면으로 해결한 탓인지 갑자기 배도 고파옵니다. 사고의 위험에서 탈출한 뒤 긴장이 풀리니 온 몸의 감각이 고통을 일깨워주기 시작합니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에너지 보충 겸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곳을 찾기로 했습니다.



* 목적지는 동작역, 단숨에 돌파하자!


인덕원역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던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하나 먹었습니다.


  학의천 자전거길에서 양재천 자전거길은 이어져 있지 않습니다. 양재천 자전거길을 가기 위해서는 학의천 자전거길을 빠져나와 과천대로를 타고 과천 정부청사 지하철역까지 이동해야 합니다. 과천대로는 별도의 자전거길이 없고, 새벽에도 차량 통행이 제법 많은 곳입니다. 하트코스에서는 일종의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인 것 같습니다.

  마침 좋은 타이밍이라 생각한 저는 에너지 보충과 체온 회복을 위해 편의점에 들러 도시락을 하나 먹기로 했습니다. 도시락을 먹으면서 지나왔던 라이딩 복기도 해볼 겸, 몇 가지 지난 순간들을 되짚어봤습니다. 다음에 있을 장기 라이딩에 적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남은 거리를 무사히 돌아가기 위해, 스스로와 몇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우선, 사진을 최대한 찍지 않는 겁니다. 멈춰서 몇 초만 쉬어도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쉼 없이 페달을 밟아보기로 합니다.


  식사를 마친 뒤, 다시 자전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따뜻한 곳에서 든든한 식사를 마쳤음에도 몸의 체온이 빠르게 올라오지 않지 뭡니까? 아무래도 소화에 에너지가 소모되고, 먹은 것들이 에너지로 전환되려면 시간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답은 정해져 있죠? 스스로와의 약속대로, 쉼 없이 페달을 밟는 것뿐입니다. 추우면 뛰어서 몸을 데우고, 덥다면 시원한 곳까지 뛰는 것. 극한의 상황에서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우선, 차들이 빠르게 달리는 과천대로를 돌파해서 양재천 진입로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정부청사 인근의 도로들은 정말 차가 단 한 대도 없습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과천대로를 지나 정부청사역 인근으로 진입하니, 학의천보다도 더한 적막이 저를 엄습합니다. 이제는 사람도, 차도 없습니다. 그렇게 저는 동작역까지 무정차로, 추위를 이기기 위해 이를 악 물고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기로 했습니다.


양재천 자전거길이 시작하는 곳에서 동작역까지, 쉬지 않고 달리는 겁니다!


  놀랍게도 고요한 적막 속, 자전거길을 따라 속도를 내며 달리기 시작합니다. 손 끝이 시리고, 아무리 달려도 똑같은 풍경만 반복됩니다. 마치 헬스장의 러닝머신을 달리는 기분이랄까요? 그렇게 양재천의 절반을 달릴 무렵, 이제는 다리가 저리고 무릎이 삐걱대고 엉덩이와 허리가 말을 안 듣기 시작합니다.


길고 긴 과천 양재천을 지나, 다시 서울로 진입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이미 너무 먼 길을 왔고, 시간은 새벽입니다. 집에 돌아가려면 무식하게 페달을 밟는 방법뿐입니다. 페달을 밟으려고 나왔는데, 그 때문에 온 몸이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시 페달을 밟아야 한다니... 참 짓궂은 상황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다시 페달을 밟습니다. 오로지 밟고 또 밟는 것뿐입니다.

  이따금 주변을 둘러보면, 멋진 경치가 펼쳐지기도 합니다. 해가 뜬 낮에 왔다면 참 아름다웠을 텐데... 나중에 꼭 다시 오기로 마음을 먹은 뒤, 페달을 밟고 나아갑니다.



* 점점 해가 뜬다! 탄천 합수부를 지나 집으로.


양재천과 탄천이 만나는 지점, 등용문을 지나 다시 한강으로 접어듭니다.


  다리에 감각이 점점 무뎌질 즈음, 양재천이 끝나고 탄천과 만나는 합수부 지점에 도착합니다. 몰랐던 사실인데, 이 곳에 '등용문'이 있더군요. 하지만 관광의 시간 따위는 없습니다. 저는 출발 전에 챙겼던 초코바와 남은 물 한 병을 단숨에 들이켠 뒤, 사진 몇 장을 남긴 후 탄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을 향해 다시 페달링을 합니다.


  한강 자전거길에 다시 들어서니, 좁았던 도로가 순식간에 옆으로 넓어집니다. 시간이 많이 지난 모양인지, 산책을 나온 부지런한 사람들도 더러 보입니다. 좀 전까지 추위와 고독으로 괴로웠던 저는 서울의 불빛과 사람들을 보면서 몸에 마지막 에너지를 불어넣습니다!


잠수교를 지날 즈음 뒤를 돌아보니, 벌서 해가 뜨려고 합니다.


  뒤를 돌아보니, 점점 해가 뜨려고 합니다. 햇빛이 지평선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날이 밝기 시작합니다. 처음 출발할 때 스스로와 했던 '해가 뜨기 전에 도착하자'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저는 서둘러야 합니다. 다행히도, 해가 뜨는 것을 확인한 잠수교 인근에서 동작역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닙니다.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달립니다.


왼쪽이 출발할 때, 오른쪽이 도착한 후입니다. 도착하니 정확히 06:00, 해가 뜨기 직전이었습니다.


  저 멀리, 제가 출발했던 동작대교의 노을카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난 몇 시간, 제가 겪었던 모든 노고가 보상받는 짜릿함과 성취감이 저의 혈관을 타고 돕니다. 드디어, 처음 사진을 찍었던 그 장소에 도착해서 비슷한 구도로 사진을 찍어봅니다. 도착 시간은 정확히 06:00입니다.


  하지만 저의 라이딩은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다시 집까지 돌아가야 합니다. 끝났다는 안도감에 급격히 식어버린 몸을 이끌고, 7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합니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새벽의 80km 라이딩은 몇 번의 위기상황이 있었지만, 무사히 마무리됩니다.



* 라이딩 복기,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


돌아가는 길의 벚꽃은 저의 무사 귀환을 환영하는 듯합니다.


  집에 돌아와 자전거를 거치하고 곧바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합니다. 샤워를 마친 뒤, 집에 남은 것들로 대충 식사를 마련하여 끼니를 해결하며 라이딩을 확실히 복기해보기로 했지만, 도저히 피곤해서 버티기가 힘듭니다.

  피곤한 탓일까요? 생각이 더 들지 않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든 저는 몇 시간 정도 눈을 붙인 뒤 잠에서 깼습니다.


  몇 시간일까요, 길어봐야 4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자전거를 타는 동안에는 그렇게 힘들었던 하체가 크게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중간중간 수분과 에너지를 적절히 보충했기 때문일까요? 저렴하게 구매했던 패드 바지의 효과도 무시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잠에서 깬 저는 다시 라이딩 복기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라이딩을 하며 느꼈던 것들을 정리해보고, 훗날 국토종주에 참고하기 위함입니다.


1. 야간 라이딩은 변수가 많다. (체온 관리, 사고 위험 등)

2. 안전장비는 필수이다. (특히 헬멧)

3. 효율적인 짐 분배가 필요하다. (자전거에 거치하는 가방이나 물통 케이지 등)

4. 장시간 효율적으로 자전거를 타는 자세를 터득해야 한다. (근육을 골고루 사용하여 피로감을 분산시켜야 함)

5. 남는 게 사진이다. 하지만, 사진에 시간을 많이 뺏기는 것도 좋지 않다


  스스로에 대한 선물의 개념으로, 그리고 나중의 안전한 라이딩을 위해 헬멧을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먼 거리를 이동하는 라이딩에는 생각보다 많은 변수가 도사린다는 것도 큰 교훈이었습니다.

  여러 일수를 소모하는 라이딩에서 내상을 줄이려면 몸의 근육에 무리를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또한 이번 라이딩으로 확실히 느꼈습니다. 평소에 쓰던 학생용 가방으로 라이딩을 했는데, 가방 속에서 물 약 2L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양 어깨와 허리를 짓누르는데, 라이딩 거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누적되는 피로감이 상당했습니다. 가방은 효율적인 자세를 만드는 것에도 엄청난 영향을 줘서, 가급적이면 장거리 라이딩에서 짐은 자전거에 거치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행의 순간들을 남기기 위한 사진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새벽의 자전거길을 질주했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먼 옛날의 꿈 이야기처럼 기억이 날아간 것 같습니다. 중간에 힘들어서 사진 찍기를 게을리 하긴 했지만, 그래도 몇 장 남은 사진들을 보면서 순간들을 기억해봅니다. 아무래도 시간을 크게 소모하지 않는 선에서는 사진을 열심히 찍어야 할 것 같습니다.



* 결국 핵심은 '엔진 업그레이드'


  여러 고민들을 해보지만 결국 최고의 해결방법은 엔진, 즉 제 자신을 단련하는 것뿐입니다. 아무리 날이 추웠다지만 초심자용 코스인 하트 코스를 5시간이 넘도록 달린 것은 자존심에 적지 않은 스크래치를 남깁니다. 아무래도 자전거 타는 요령과 근육 단련은 별도로 필요한 모양입니다... 자고 일어난 뒤의 후유증이 크지 않음에 감사하며, 국토종주를 위한 단련을 위해 계속해서 자전거를 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며칠 더 자전거를 탔습니다. 늘 돌던 한강 자전거길이지만, 새벽 라이딩에서 느낀 부분들을 되새기며 스스로를 단련하기로 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국토종주는 시작도 하지 않았고, 저는 아직 준비가 부족한 모양입니다. 계속해서 저를 단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운동을 하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신체능력 강화에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바로 '운동', '영양', '휴식'입니다. 잘 뛰고, 잘 먹고, 잘 쉬면 몸은 쑥쑥 자라고 강해집니다. 저는 평소에 운동과 휴식은 충분히 취하지만,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영양' 면에서 너무 궁핍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많이 받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전거와 기타 액세서리 지출로 지갑을 잘 달래야 하기 때문에...


  그런 제게 엔진 업그레이드를 위한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아버지의 호출이었습니다.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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